'사육곰을 구조하고,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생츄어리를 만들고자 한다'는 목표 아래 결성된 프로젝트 문 베어는 지난 2021년 이후 햇수로 5년 째 강원도 화천에서 임시보호시설을 마련해 곰들을 돌보고 있다. 당초 15마리로 시작한 돌봄사업은 현재 13마리가 남아 있고, 운영 과정에서 몇몇 사육농장을 인수해 폐쇄하는 등 사육곰의 삶을 보다 평안케 하는 데 진력하는 중이다.
구조된 사육곰 '칠롱'의 이야기
▲칠롱의 방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된 <칠롱의 방>은 프로젝트 문 베어의 활동을 바탕으로, 13마리 곰 가운데 한 마리 칠롱의 모습을 담았다. '칠롱의 방'이란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칠롱이 지내는 공간과 그곳에서 보내는 일상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다. 가만 보면 동물, 그것도 곰 정도 되는 맹수에겐 방보다는 우리란 표현이 익숙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익숙하다는 표현조차도 그에 앞서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고 적었다가 황급히 백스페이스 버튼을 연타하고 말았던 일이다. 쇠창살로 동물을 가두는 우리를 두고 자연스럽다고 적는 인간의 무신경함을 부끄러워하면서.
안두이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아이샤라는 존재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반달가슴곰 칠롱의 일상 위로 내레이션을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한국에서 사육곰이 지나온 역사를 읊어간다. 재산으로, 산업으로, 착취와 폭력의 대상으로 여겨져온 곰의 이야기가 저기 전통시장 약재와 조악한 철창들과 함께 보여질 때 영화를 보는 이는 인간, 그것도 우리가 밟고 선 이 나라의 일면에 참담함을 느낄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쯤 전의 이야기는 그저 지난 옛일로 밀어놓을 수만은 없다. 그건 여전히 칠롱과 같은 곰들이, 사육되다 구조된 존재가 있는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딘가엔 아직 구해지지 못한 곰과 그들이 사육되는 농가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프로젝트 문 베어가 고구마와 밤, 당근을 챙겨주고 방을 청소하며 곰들을 돌보는 과정은 여느 동물원 못잖게 정성스럽고 전문적이다. 여전히 열악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해먹을 매달고 방사장을 꾸려가는 노력은 분명히 그 삶을 전에 비할 수 없게끔 만들어준다.
인간의 폭력, 어디 동물에게 만일까
▲칠롱의 방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폭력은 그저 동물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와 다르다 구분짓는 존재에게 언제든 그와 같은 잣대가 대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가 아이샤라는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이유가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한창 칠롱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 아이샤의 정체를 알린다. 카메라는 갑작스레 화천 생츄어리가 아닌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옮겨간다. 그리고는 '너', '아이샤'를 명백히 지목한다.
화성 외국인보호소는 다분히 상징적 공간이다. 2021년 모로코 출신으로 난민신청을 했던 이가 이른바 새우꺾기, 뒷수갑을 차고 머리보호장비에 발목이 묶이는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던졌다. 독방에 갇혀 사실상 고문을 당한 이가 어떤 잔악한 범죄 때문이 아니라 그저 체류자격을 얻지 못한 때문으로 이곳에 갇혔단 사실은 충격을 더한다. 이 사건이 알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 외국인보호소에선 태국 출신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 또한 독방에서 뒷수갑을 차고 머리보호장비가 채워진 채였다.
구조된 사육곰 칠롱과 한국에서 사육곰이 당해온 착취와 폭력의 역사를 이주노동자며 난민신청자에 가져다 댄 이유는 이쯤에서 명백해진다. 한국이 어떻게 나와 다른 이를 구분 짓고 배제하며 착취하는가. 그건 그저 이성이며 감성의 차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의 여부와는 다른 잣대로 결정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관을 꼽는 것이나, 그렇게 기르던 곰이 굶어 죽도록 방치하는 것, 또 외국인보호소에 든 이를 고문하는 것까지가 도저히 합당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정해진 것이라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
곰과 난민, 두 존재를 엮어낸 이유
▲칠롱의 방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앞의 <생츄어리>가 곰을 비롯해 한국의 야생동물이 처한 상황을 내보이고, 그 부조리한 상황을 자연스레 드러내며, 생츄어리의 필요를 역설하는 정공법을 채택했다면, <칠롱의 방>은 곰과 난민이란 두 존재를 엮어 한국이 타자를 대하는 부조리한 방식을 공략하길 선택한다. 곰의 사정을 난민에게 띄우는 편지에 담는다는 설정이 다소 무리하고 공상적이지만, 동물을 넘어 인간에게까지 폭력을 자행하는 한국의 비인간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야심이 읽힌다. 이 시도가 온전히 성공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의도한 것의 일부는 작용했다 보는 편이 옳을 테다.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안두이 감독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선에 대해 고민했다고 전했다. 안 감독은 "칠롱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를 통해서 증언한다거나 셀프캠으로 자기를 찍는 게 아니고 감독인 촬영자의 프레임을 거쳐 제 존재와 삶이 소개되게 된다"며 "촬영자의 한계, 혹은 그 촬영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만심 같은 게 가감없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객들이 저마다 메타적 인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내레이션을 하는 화자를 허구적으로 설정해서 그것이 일인칭으로 발화를 하는 구성으로 가도록 결론지었다"고 덧붙였다.
곰과 함께 난민을 주요하게 다룬 것에 대해서도 안 감독은 "근본적으로 인간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 밖으로 무언가를 배제시키는 안전에 대한 욕망, 칠롱을 바라볼 때 인간으로서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게 뭘까 고민했다"며 "그런 고민에 깨달음을 주었던 게 미디어나 다른 세상에서 봤던 난민이란 존재여서 함께 다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반짝다큐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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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