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완 <음악이 흐르는 밤에>, 전영혁 <25시의 데이트>. 뻔한 팝이 아닌 새로운 음악에 목 말랐던 1980년대 청춘들에게 단비 같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밤이 오길 기다렸고, 희귀한 음악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 공테이프를 넣었다. 녹음과 포즈 버튼을 동시에 눌러 놓았다가 노리던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포즈를 풀고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다. 영미권 아티스트들은 어떻게든 가수와 곡목을 써넣었다. 유럽권으로 가면 골치 아파진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밴드들은 이름도 길고, 앨범이나 곡명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들리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든 테이프를 다음날 '마이마이'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으면서 행복해 했다. 이사를 하면서 녹음테이프들은 하나둘 씩 사라졌다. 월급을 타게 된 뒤 추억을 되살리며 음반으로 모으게 됐다.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을 좋아하던 50대 마니아들이 공유하는 기억이 아닐까.

이탈리아 밴드와의 만남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Premiata Forneria Marconi, 약칭 PFM). 이 복잡한 이름의 이탈리아 밴드를 접하게 된 것도 성시완과 전영혁 DJ 프로그램에서였다. 아름다운 멜로디, 코맹맹이 보컬, 복잡한 전개, 콘셉트 앨범, 두드러지는 키보드 연주, 바이올린과 플루트 혹은 리코더 연주.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형을 들려주는 밴드였다.

PFM은 1960년대 중반 루치오 바티스티(Lucio Battisti) 같은 이탈리아 유명 아티스트 백업 밴드였다. 밴드 이름은 이 퀠리(I quelli). 멤버는 프랑코 무시다(Franco Mussida, 기타, 보컬), 플라비오 프레몰리(Flavio Premoli, 키보드), 루치아노 도베시(Luciano Dovesi, 베이스, 나중에 조르지오 피아자Giorgio Piazza로 교체된다), 프란츠 디 치오쵸(Franz Di Cioccio, 드럼, 보컬)다. 1970년 밀라노에서 그룹 달튼(Dalton) 출신의 다재다능한 마우로 파가니(Mauro Pagani, 바이올린, 플루트)를 영입하면서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로 개명했다. 당시 킹 크림슨(King Crimson), 제스로 털(Jethro Tull) 노래를 커버했다.

밴드명은 마우로 파가니가 제안했다. 이탈리아 작은 마을 키아리에 있는 빵집 이름을 따 '포르네리아 마르코니(마르코니 빵집)'로 지었다. 프로듀서 알레산드로 콜롬비니(Alessandro Colombini)가 "좀 엣지가 없다"며 앞에 '프레미아타(수상 경력을 가진)'를 붙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그 길지만, 운율을 가진 이름이 탄생했다.

1971년 첫 싱글 '임프레시오니 디 세템브레/라 카로자 디 한스(Impressioni di settembre/La carrozza di Hans'를 발매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최초의 히트곡으로 알려졌다.

1972년 첫 음반 <스토리아 디 운 미누토(Storia di un minuto, 1분의 노래)>를 발매했다. 발매 첫 주 만에 이탈리아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록 앨범으로 첫 1위다. 두 번째 음반 <페르 운 아미코(Per un Amico, 친구를 위해)>를 내며 인기를 이어갔다.

평론가들의 평가

 PFM 데뷔 음반 '스토리아 디 운 미누토(Storia di un minuto)'.
PFM 데뷔 음반 '스토리아 디 운 미누토(Storia di un minuto)'.PFM

이때 이탈리아 투어를 하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그레그 레이크(Greg Lake)가 PFM에 관심을 보이고 런던에 초대했다. 런던에서 PFM은 시인이자 킹 크림슨 노래 작사가 피트 신필드(Pete Sinfield)를 만났다. 이름이 너무 기니까 'PFM'으로 줄이자고 한 사람이 신필드다.

신필드가 프로듀스해준 음반이 <포토스 오브 고스츠(Photos of Ghosts)>. <페르 운 아미코> 수록곡에 영어 가사를 붙여 유럽, 일본, 미국, 캐나다에서 발매했다. 1973년 11월 Billboard 200 앨범 차트에서 180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가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첫 번째 사례다.

그 뒤 PFM은 영미권과 일본 등에서 인기를 누리며 앨범을 계속 발매했다. 세번째 앨범 <리솔라 디 니엔테( L'isola di Niente, 공허의 섬)>는 영국에서는 <더 월드 비케임 더 월드(The World Became the World)>로 발매됐다.

1977년 이후에는 이탈리아 본토 활동에 주력했다. 멤버가 바뀌기는 했지만,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다. 2006년 5월 내한 공연을 했다. 뭔가 일이 꼬여 가보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테이프에 녹음한 노래를 늘어지도록 듣다가 직장을 다니면서 처음엔 CD로, 그 뒤 LP로 구하게 됐다. PFM 앨범 중 처음 구입한 게 데뷔 음반 <스토리아 디 운 미누토>다.

평론가들은 이 음반을 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 중 하나로 평가한다. 싱글로 나왔던 '임프레시오니 디 세템브레'와 '라 카로자 디 한스'를 재녹음해 실었다. 웅장한 키보드 소리가 압도하는 심포닉 록 노래다. 또 헤비 록 스타일의 '에 페스타(È festa)'와 애잔한 포크 스타일 발라드 '도베 콴도(Dove... quando...)'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1995년쯤 11월 싸늘한 서울 신촌 밤거리를 배회하다 리어카에서 파는 해적판 <랄붐 디 PFM(L'album di PFM)>를 사게 됐다. 석 장짜리 모음집이다. 2번째 음반 B면의 '저스트 룩 어웨이(Just Look Away, 원곡 Dolcissima Maria)'에서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 원곡 È festa)'로 이어지는 접속곡은 들을 때마다 머리가 쭈볏해진다.

지금도 이 음반들을 틀어 놓으면 1980년대 후반 우울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던 그 때가 떠오른다. 아마 그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대부분이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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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로 23년 일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2023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룬 책 <대통령의 마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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