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드라마 <아이언하트>가 지난 6월 25일 디즈니플러스에 공개됐다. 동명의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본작은 어떻게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 자신의 개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을까. 깔끔한 주제 의식과 절제되고 적재적소에 쓰인 시각효과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아이언하트>의 주인공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쏜 분)'는 사실 본작으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2022년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영원히>에서 개략적인 캐릭터 소개와 함께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했는데, 덕분에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에 비해 짧은 6화 분량의 본작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는다. 전작에서 바로 이어지는 시간대를 선택하면서도 리리의 특성을 보일 수 있는 사건들을 엄선해, 2022년부터 해당 캐릭터를 눈여겨 본 사람들과 신규 시청자층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강철 슈트 입은 사람'을 비롯해 초인이 들끓는 MCU에서 리리가 맞서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드라마 <아이언하트> 스틸컷
디즈니플러스코리아
마법 대 과학? 그보다 깊은 주제
<아이언하트>는 겉보기에는 '마법 대 과학'이라는 구도의 판타지·SF 장르 같다. MIT에서 퇴학당한 리리는 슈트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불법적인 패거리에 발을 들인다. 기계 슈트를 사용하는 자신과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마법을 사용하는 조직의 리더 '후드'가 수상쩍은 행동으로 리리의 의심을 사게 되면서 둘의 은근한 대립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저 흥미로운 소재 하나만이 <아이언하트>의 정수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본작은 '마법 대 과학'이라는 타이틀을 활용해 주인공이 처하는 이분법적인 상황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주인공 리리는 세계적인 천재지만, 정작 돈이 없어 이 직업 저 직업을 옮겨도 슈트 하나를 간신히 유지보수 할 수 있다. 총기 난사 사고로 죽은 친구 나탈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우연히도 그를 똑 닮은 인공지능 비서를 만든다.
이렇듯 <아이언하트> 속 리리 윌리엄스의 삶은 아이러니로 점철되어 있다. 위대함을 갈망하지만 제 삶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리리에게 '마법 대 과학'은 다른 말로 '이상 대 현실'이다. 리리의 성격처럼 냉철하고 분석적인 과학은 그에게 '분수를 알라'고 말하지만, 후드처럼 과감하고 설명 불가능한 마법은 리리에게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상징적인 업적을 이뤄낸 사람 중, 꿈을 위해 뒤가 구린 일 안 해 본 사람은 없어" 등의 매력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리리가 의적 단체에 가입했을 때 후드에게 들은 조언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드라마 <아이언하트>는 이상과 현실 중 무엇의 편을 들어 줄까. 이 선택지를 마주한 사람들에게도 각각의 고유한 답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본작은 그 '이분법의 파괴'를 지향하는 듯하다. 작중 리리는 선한 일을 하기 위해 범죄 단체에 발을 들이지만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이게 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듯한 인공지능 비서는 어머니에게 큰 도움이 된다.
<아이언하트>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청춘에게 비정한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할 기회를 찾고, 이상을 실현하면서도 자신과 주변을 혹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언맨 슈트 제작이라는 리리의 꿈이 아버지와 차를 고치던 소소한 추억에서 출발했던 것처럼, 이상 역시 현실에 기반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면에서 <아이언하트>는 이루고 싶은 것 많은 청춘의 갈망을 인정하면서도 가는 길을 조심하라고 일러 주는, 원론적이지만 든든한 조언자와도 같다.
▲드라마 <아이언하트> 스틸컷
디즈니플러스
'쇠 맛 나는' 시각효과
<아이언하트>는 섬세하게 주제 의식을 잡아낼 뿐만 아니라, MCU 작품을 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시각적 재미 역시 충족한다. 특히, 적재적소에 쓰인 실물 소품과 간결하되 힘 있는 CGI를 보자면 초창기 마블의 특수효과가 돌아왔다고 여기게 될 정도다.
MCU는 2018년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부터 '나노 슈트' 문제를 겪어 왔다. 본래는 복잡하고 사실적인 금속 합판 슈트를 입었던 아이언맨이 터치 한 번에 가동되는 나노 슈트를 입었다는 설정이 도입된 이후, 이 기술을 너나 할 것 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나노 슈트는 작품 외적으로도 디즈니 측의 빠른 마감 강요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리라 추정된다. 배우의 미세한 움직임과 실물 슈트를 섬세하게 합성해야 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나노 슈트'는 모션 캡처 슈트를 입은 배우에게 간단한 효과만 덧입히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노 슈트 시각효과가 남용되기 시작하자 마블은 팬층 안팎에서 해당 효과가 엉성하고 붕 떠 보인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현실과 완전히 괴리되어 있는 공상적 소재를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구현해 내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적 시각효과가 필요한데, 바로 그 요소가 한동안 빠져 있었다.
<아이언하트>는 이러한 팬들의 불만에 대한 답가와도 같이 '쇠 맛 나는' 슈트 시각효과로 회귀한다. 첨단 기술이 난무하는 세계관 속에서 나노기술을 제작하기에는 재정적 여유가 부족한 리리가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가능해지면서, 화려하면서도 사실적인 철갑이 작품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돌아왔다.
이외에도 같은 그래픽 로고를 매번 반복하는 대신, 작품의 장면과 제목 소개를 병행하는 '타이틀 카드' 전략도 <아이언하트> 관람의 묘미다. 시청자층이 이탈하기 가장 쉬운 에피소드 초기에 흥미로운 시각 문법을 제시하면서 관심을 끈다.
<아이언하트>는 현실의 벽을 어느 때보다도 중히 느끼고 있을 현 청년세대를 겨냥한 주제 의식 구현의 성공, 그리고 정석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특수효과를 통해 '마블 보는 맛'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토니 스타크'가 아닌 리리 윌리엄스를 낯설어하는 관객도, <아이언하트> 속 리리의 고뇌와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새로운 인물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아이언하트> 스틸컷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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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
쇠 맛 나는 시각효과에 담긴 청춘의 고민, 마블의 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