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미지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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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강월순(차미경)는 말한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고. "오늘은 살아"라고. 할머니는 사고로 육상을 접은 손녀가 세상 끝났다는 듯이 방안에 틀어박혔을 때 끝까지 문을 두드렸던 장본인이다. 이제는 요양원 신세가 된 할머니를 지극히 보살피는 손녀는 그래서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가자"라고 주문을 건다.
이처럼 <미지의 서울>은 온통 사랑하는 이에게, 아끼는 이에게 손을 내밀라는 당부로 가득 차 있다. 내민 손을 알아채라고, 밀어내지 말라는 당부. 또 그게 버티기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되어줄 거라는 도닥임.
드라마 전체가 영화 <굿윌헌팅>의 명대사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로 이뤄졌다고 할까. 그걸 <미지의 서울>은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라는 할머니의 위로로 대신한다. 값싼 위로나 동정, 혹은 위무나 자위가 아닌 삶에 대한 긍정이고 통찰이다.
물론 미지와 미래,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삶이 녹록한 건 아니다. 누구나 상처와 상실을 경험하고 간직한다. 자기 때문에 아프고, 세상 사람들이 공격하며, 가족 눈치도 봐야 한다. 미지의 이웃집 첫사랑인 이호수(박진영)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고, 몸도 불편해졌다. 호수의 새엄마인 염분홍(김선영)은 그런 호수를 키우느라 정작 본인 가족과는 등을 져야 했다.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할머니는 홀로 엄마를 엄하게 키웠고, 엄마는 그런 엄마가 야속했다. 그런 엄마는 딸들을 홀로 키워야 했고, 미래는 아팠다. 미래의 서운함이 커간 연유다. 결국 미래와 미지가 (할머니만 아는) 역할극을 벌이면서 이들은 서로의 속내를 알아가며 급기야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전작 광주 5.18을 다룬 <오월의 청춘>으로 호평받았던 이강 작가의 의도 그대로다.
"타인의 삶은 참 단순하고 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저 외모였으면, 저 조건이었으면, 저 성격이었으면… 그러나 막상 누군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아픔과 고난을 가진, 그저 행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사랑과 연민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 이강 작가 기획의도 중
마음이 아파 본 사람들은 안다. 미지처럼 방 문을 열고 밖을 나가는 것조차 사치라는 걸. 또 미래처럼 가족에게, 쌍둥이에게조차 고민을 털어놓으려 손을 뻗치기 힘들다는 걸. 그리고 그때야 세상 사람들도 나처럼 아프고 아파봤을 것이란 상상력을 좀 더 쉽게 발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손을 내미는 것도 경험해 봐야 쉬운 게 인간이다.
삼 년이나 방문 밖을 나가지 못한 등장인물들은 그처럼 어딘가 하나씩 아픈 속내를 감추고 산다. 가까운 사이여도 또 그걸 모르고 산다. 미지와 미래처럼, 고교 동창이자 라이벌이며 지금은 직장 내 상하관계로 얽힌 염분홍과 엄마 김옥희처럼.
변호사 호수와 딱 부러지는 선배 이충구도, 미래와 썸을 타게 되는 한세진(류경수)와 할아버지도, 미래로 인해 방 문밖을 나서게 되는 선배도 모두 그렇게 얽히며 살아간다. 인물들이 그런 속내를 알아가게 되는 <미지의 서울>은 그래서 자연스레 치유의 드라마가 된다. 사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시인이자 식당 주인 김로사(원미경)가 영혼의 단짝이자 파트너를 잃게 되는 과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세상은 너를 만나 노래하기 시작했다. / 바람이 새를 데려가듯 너는 나를 시로 이끌었다. / 나의 노래 나의 바람/ 나의 사월"
후반부를 장식하는 이 시야말로 <미지의 서울>의 주제를 웅변하는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노래가, 시가 인생이고, 너와 내가 그 인생의 주인공이다. 그리하여 지속적으로 과거 장면을 환기하는 <미지의 서울>은 갈수록 성찰의 드라마가 된다.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과거 행동을, 자기 말을 곱씹는다. 내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내 말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헤아린다. 또 그걸 장면과 대사를 통해 계속해서 회고한다. 단순한 회상 장면이 아니다. 미지는 호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묻지만 드라마가 온통 그런 정서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의 모든 서른들에게, 서른 여성들에게, 앞으로 서른을 통과하거나 이미 통과한 모두에게 그럴 수 있다고, 그러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위로와 권유. 그리하여 상대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이 유독 눈에 띄는, 제목 타이틀인 '미지의 서울'을 드라마 끝의 끝에서 '나의 서울'로 바꾸는 드라마. 이런 드라마 흔치 않다.
▲tvN <미지의 서울> 주연 박보영 배우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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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