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은 미국사회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다. 개중에서도 트렌스젠더 군복무 금지 문제는 지난 십 수 년 간 정권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온 첨예한 화두다. 소위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Don't Ask, Don't Tell'는 정책은 빌 클린턴 행정부 이래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미군 내 성소수자를 대하는 원칙으로 작동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를 전격 폐지한 게 군 내 성소수자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시작점이 됐다. 굳이 따지지는 않되 성소수자임이 확인되면 퇴역을 명령했던 과거의 정책을 성소수자 차별이라 규정짓고, 성정체성으로 직업적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정책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거다. 오바마에 이어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성소수자가 군인으로 복무할 수 없도록 했다. 이후 집권한 조 바이든 대통령 시기 다시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차별 없는 복무를 허용키로 했으나, 역시 잠깐이었다. 재집권한 트럼프는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인간의 성별은 남자와 여자, 둘뿐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 다양성 장려정책이 폐기되고, 특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배려 조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성소수자는 군인이 될 수 없을까?
▲뼈와 살을 가진 유령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트럼프 대통령이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조치에 서명한 뒤 인권단체가 낸 청구에서 시애틀과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이 집행금지명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방지방법원의 결정을 끝내 뒤집었다. 의학적으로 트랜스젠더가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그 중심된 논거를 형성했다.
다양성에 대한 배려보다 효율을 앞세우는 방침은 미국 행정부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했다. 미군 내 트랜스젠더 군인은 최소 1만4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입대를 준비하던 예비 장병까지 감안하면 이번 결정으로 그 운명이 뒤바뀔 이가 결코 적지 않을 테다.
어디 미국뿐일까. 트랜스젠더 군복무 금지 여부가 첨예한 갈등요소인 미국의 사례는 오늘의 한국에 남다른 감상을 안긴다. 미국과 달리 징병제 국가인 한국, 그것도 20대 남성에 한해 징집하여 군에 복무토록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소수자가 마주하는 문제가 미국보다 훨씬 심각할 게 자명하다.
극단적 선택 시도했던 감독 본인의 이야기
▲뼈와 살을 가진 유령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선정작 <뼈와 살을 가진 유령>은 이 같은 상황에서 남다른 감상을 자아낸다. 박명훈 감독의 30분짜리 단편 다큐는 성소수자로 아직까지 군대에서 겪은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감독이 과거 제가 목숨을 버릴 생각을 했던 군대 벙커를 찾는 이야기로 꾸려져 있다. 지난해 12·3 내란시도와 탄핵을 부르짖는 광장의 목소리들 사이로 군대 트라우마와 벙커에서의 영상까지를 엮어 만든 영상이 어딘지 낯선 감각을 일깨운다.
감독은 연출의도를 통해 "그들은 계엄 선포를 옹호하며 묵혀놓았던 혐오를 거리에 표출하였다"며 "그들에게 퀴어는 어떤 존재일까? 불결한 오염원, 전체주의화 되어 가는 세상, 그들에게 퀴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난 그들의 공포어린 얼굴에서 언제든 학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면서 "수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모였던 이번 광장의 힘을 우리는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이 영화를 통해 질문해본다"고 작품의 목적을 밝혔다.
성소수자로 군에 입대했던 감독은 2014년 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해를 한 끝에 전역을 당했다고 털어놓는다. 성소수자로 탄핵 국면에서 광장에 나왔던 그는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동성애 반대합니다', '차별금지법은 나중문제'라는 등의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회의감을 갖는다. 감독은 "탄핵 후 정권교체의 꿈에 부풀은 민주당 세력들을 바라보며 난 이 광장이 정권교체의 대관식 현장처럼 느껴진다"며 "이 대관식에 자리 없음을 느낀 난 어느새 유령이 되어 내가 죽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털어놨다.
<뼈와 살을 가진 유령>은 성소수자 스스로를 유령과 같이 부유하는 존재라고 칭한다. 박명훈은 영화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탄핵 반대집회나 이재명 후보 지지집회, 또 다른 집회에서도 제가 느꼈던 군 시절에서의 이방인 같은 느낌, 유령 같은 느낌을 살려보고 싶어서 광장과 개인의 문제를 묶는 편집 구성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군 생활 한지가 10년이 됐는데, 그 당시 벙커 안에서 자해를 했었다"며 "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스스로 지워지기를 선택한 장소였는데, 10년 뒤 카메라를 들고 돌아가 퀴어이자 반국가 세력으로서 제가 다시는 지워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공간을 끝까지 보여주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상처를 관객 앞에 드러내는 용기 만큼은
▲뼈와 살을 가진 유령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뼈와 살을 가진 유령>이 미숙한 작품처럼 다가올 수도 있겠다. 사회적 의제가 다뤄지는 광장이란 공간과 과거 성소수자 군인으로 마주한 문제 사이를 엮어내는 지점이 헐거운 탓이다. 구조와 내용이 긴밀히 조응하지 못하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반드시 필요한 장면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도 여럿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의미가 있다면, 감독 본인이 제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추고서 그 근원으로 향하는 용기에 있을 테다. 한국에 여전히 상존하는 군 내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이 영화가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여전히 수없는 뼈와 살을 가진 유령이 있다고, 우리는 그들을 군에서 몰아내려 하는 미국보다도 비겁하게 그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대로 마땅한 비판이지 않은가.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반짝다큐페스티발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성소수자로 군 입대, 끔찍한 군복무 시절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