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3이 공개됐다. 원래 그런 법이다. 속편의 운명은 가혹하다. 전작의 명성을, 흥행을 뛰어넘어야 한다. 대체로 전작보다 속편 제작비가 월등히 치솟는다. 배우 출연료는 물론이다. 신인이 스타가 되고, 기존 스타는 '어나더레벨'로 상승하기도 한다. 작품 인지도가 상승한만큼 홍보비도 비례한다. 그런데, 그 인지도는 무조건 '장사'에 이득이 된다.
다만, 두 가지 중 선택은 남아 있다. 전편의 성공을 답습하거나 혹은 어느 정도 창조적인 전개를 통해 이미 성공을 맛본 소재와 장르 법칙과의 줄다리기를 이겨내거나. 그러니까 대중들이 환호했던 그 성공의 열매라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 선택은 창작자들만의 고민에서 그치지 않는다. 관객들도, 시청자들도 선택의 기로에 선다. 비단 관람과 시청을 택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속편이 펼쳐내는 새로운 서사에서 전편의 장점을, 독창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어디까지를 답습이고, 또 어디까지를 창조적인 반복이라 허용할 것인가.
이제 선택의 시간만 남았다. 무려 <오징어게임>의 시즌 피날레다. (이제는 친근해졌지만)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 사상 전 세계 시청자들을 열광시키며 K-드라마란 표현을 각인시킨 그 <오징어게임>이 지난 27일 오후 시즌3을 공개했다. 이 역대 1, 3위 시청 시간을 자랑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홍보하기 위해 넷플릭스의 물량 공세가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을 모를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즌2와 3은 바로 이 선택을 서사의 주요 동력으로 삼았다. 게임을 지속하거나 혹은 그만두거나. 공개 직후 소셜 미디어 상엔 세계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이 K-드라마에 누구나 한 마디씩 얹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한 안간힘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럴 수밖에. 상대적으로 비판이 많았던 시즌2조차 넷플릭스 전체 순위 3위에 등극하지 않았나. 그렇게, 선택의 순간이 도래했다.
<오징어게임> 현상과 '넷플릭스' 본진 미국 내 평가
▲지난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3' 팬 이벤트에서 배우 이병헌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재, 황동혁 감독, 이병헌.
연합뉴스
"<오징어게임>은 우리 영상 문화 역사에 정말 가장 큰 획을 그은 어떤 현상이 돼 버렸는데요. 그런 작품에 참여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지난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오징어게임> 피날레 무대. 이벤트 자체는 물론 이병헌 배우의 소감마저도 <오징어게임>이 차지하는 위상을 웅변하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이날 오후 광화문 일대 차도를 점령하고 서울 시민을 상대로 <오징어게임>과 관련된 각종 퍼레이드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서울시가 함께 했다. 2025 K콘텐츠 서울여행주간의 일환이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일찌감치 참여 이벤트를 개최했다. 드라마가 19금 등급이자 폭력성으로 유명한 작품임을 고려해도 '대한민국은 <오징어게임>의 나라'임을 전 세계에 천명하고 K-컬처에 대한 호감에 올라타는 전례 없는 행사였다. 해당 유튜브 생중계 영상은 구독자가 3천 만에 달하는 넷플릭스 공식 채널을 통해 생중계, 실시간 영어 자막을 타고 전 세계 170만이 시청했다.
그렇다면 시즌3 공개 직후 그 '선택'의 실제 양상은 어떨까. 어느 평론가는 촌평했다. 미국인에게 있어 <스타워즈>가 있다면,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인에게 그런 지위에 올라섰다고. OTT 시대를 타고 <오징어게임> 시리즈는 분명 전 세계인의 <스타워즈>급 클래식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커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OTT 전문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게임> 시즌3는 공개 직후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말 그대로 '올 킬'이다. 이에 발맞춰 넷플릭스 코리아는 대륙별 매체들의 호평 기사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그 중심엔 넷플릭스의 본진인 미국이 자리한다.
그런 현상을 만든 건 팔 할이 영미권 중에서도 미국이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원산지'는 차치하더라도, 미국인들은 '자막이라는 2인치 장벽'을 넘어 프라임타임을 포함 제74회 에미상에서 6개 부문 수상을 안기며 환호했다.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였다. 주요 방송을 포함한 미국 매체들이 넷플릭스와 합작해 <오징어게임>을 향한 열광을 확산시켰다.
그랬던 미국 내 선택과 평가가 과연 시즌3라고 박할 수 있을까. '해외 언론 혹평'이란 일부 국내 보도는 과장됐다. 로튼 토마토 비평 지수는 42명이 참여, 82%를 기록했다. 초반임을 고려해도 나쁘지 않은 수치다. 미국 내 화제작이자 동시기 공개된 <베어> 시즌4가 82%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참고로 213명이 참여한 시즌1의 비평 지수는 87%였다.
호불호가 살짝 갈린다. <버라이어티>는 호평을, <뉴욕타임즈>(나 영국 <가디언>)는 혹평을 내놓는 식이다. 그럼에도 <오징어게임>을 향한 미국 내 전반적인 호감은 크게 바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발굴하다시피 하며 신드롬을 주도했고, 에미상까지 안긴 문화적 현상에 대해 자기부정에 가까운 혹평으로 공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 매체들이나 평론가들도 산업에 영향을 받기는 매한가지다.
복기해 보자. 2021년 시즌1 공개 당시 평가가 박했던 쪽은 미국이 아닌 한국이었다. <배틀로얄>과 같은 '데스게임' 장르 자체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게임 형식의 영상화도 큰 주목거리가 못됐다.
중심을 잡아보면, <오징어게임> 자체가 (외부에서) 과대평가 받았다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기생충> 여파,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란 외부적 요인과 함께 전 세계인들은 <오징어게임>의 형식과 소재 모두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사회비판과 휴머니즘이란 주제를 높이 평가했다.
그 외부에서 비롯된 신선함과 독창성이란 호평이 일부 전형적인 캐릭터도, 과한 표현 수위도, 덜컹거리던 서사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이 자체가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시즌1 공개 당시인 4년 전과 몰라보게 체급을 키운 시즌3는 이러한 기반과 전제 아래서 바라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평가 자체에서 거품을 빼란 얘기다. 그럼에도 왜 시즌3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가.
갈릴 수밖에 없는 호불호의 근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배우 이정재넷플릭스
호흡이 짧은 영화와 달리 드라마 시리즈의 관건은 제작 시간 경과와 함께 캐릭터도, 극적 환경도, 시청자까지도 변화하고 성숙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명작이라 일컬어지며 시즌에 시즌을 거듭한 '미드' <소프라노스>나 <브래이킹 배드>, <하우스 오브 카드>도 모두 이 길을 따랐다.
황동혁 감독이 주안점을 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상금과 함께하는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다시 게임에 뛰어 든 456번 성기훈(이정재)과 이를 위태롭고 양가적으로 바라보는 프론트맨 황인호(이병헌)의 변화와 성장 말이다. 물론 전제는 바뀌지 않았다.
'hodie mihi, cras tibi.'
시즌3 속 참가자들 숙소 벽면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란 이 문구야말로 단 1명만 살고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게임의 룰을 문자 그대로 웅변한다고 볼 수 있다. 각자 기대는 다르겠지만 룰은 동일하다. 성기훈이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그 과정에서 가면을 벗고 게임에 직접 참여하며 성기훈을 조종했던 프론트맨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시즌3는 황 감독도, 시청자도 아는 이 공식을 어떻게 변주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운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 감독은 장르 공식에 맞게 태어날 운명인 신생아를 게임 안에 밀어 넣는다. 222번이란 임신부 캐릭터가 등장한 근본적 이유가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다. 그 바로 직전 신파를 적절히 조절한 등장인물들의 희생과 퇴장도 당연히 준비됐다.
이처럼 시즌3 숨바꼭질 게임 에피소드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시즌1의 '깐부' 에피소드의 일대일 대응과 같다. 대신 훨씬 더 어둡고 폭력적이며 갑갑한 정서가 유지된다. 그게 다 처음으로 직접 제 손에 피를 묻힌 성기훈이 맞이해야 할 변화와 선택이 맞이할 결말을 위한 '빌드업'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시즌2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민주주의와 투표에 대한 은유도 더 노골적으로 강조된다. 아예 마지막 밀어내기 게임 자체가 온통 그러한 선택을 둘러싼 편먹기와 갈라치기, 의심과 배신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 만찬에 참석하는 생존자들의 면면도 이러한 주제를 강화하기 좋은 캐릭터들로 구성됐다.
속편의 근원적 한계를 넘고 스핀오프나 프리퀄과 같은 손쉬운 선택을 거부하며 택한 황 감독의 작가적 욕심을 전 세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일단 호보다는 불호가 더 큰 것처럼 보이긴 한다. 29일 현재 로튼토마토의 관객 지수는 52%에 불과하다. 1편이 4년간 쌓아온 66%보다 훨씬 낫다. 이후 관객 평가가 얼마나 달라질지에 따라 넷플릭스의 표정도 바뀔 것이다.
그러한 호불호는 사실 부차적이거나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할지 모른다. 넷플릭스가 한국영화와 콘텐츠 업계에 미친 (부정적) 파장과 별개로, 전 세계에서 단일한 문화 콘텐츠를 이 정도 인구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즐긴다는 사건 자체가 인류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우리는 그 사건의 주체가 K-드라마, K-콘텐츠인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 <오징어게임> 시즌3이 전 세계에 미칠 문화적 파장의 크기 역시 아직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신 바뀌지 않는, 바꿀 수 없는 명제 하나는 존재한다. 이 게임의 최종 승리자가 <오징어게임>이란 지극히 상업적인 이 현상을 이끌며 수익을 챙기는 넷플릭스라는 빅테크 스트리밍 기업이란 사실 말이다. 씁쓸하다. 당분간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의 영향력 구조에서 우리 업계가 벗어나게 해 줄 게임 체인저가 등장할 가능성은 요원해 보이기에.
벌써 그 최종 승리자의 다음 걸음이 확인되는 중이다. 시즌3 에필로그, 시즌1과 2에서 공유가 연기했던 '딱지남'의 미국 LA 속 여성 역할로 케이트 블란쳇이 등장했다. 외신들이 일제히 호들갑을 떨고 있다. <오징어게임> 미국 버전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였다.
넷플릭스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지난해 이미 거장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황 감독도 크게 부인하지 않았다. <오징어게임> 속 VIP들은 성기훈과 게임 참가자들의 쟁투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다소 간 위험을 감수할 뿐이다. 업계 현실 속 VIP인 넷플릭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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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호불호 갈리는 '오징어게임', 최종 승자는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