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의 한 장면
MBC
- 계엄군 증언을 통해 계엄 당시를 재구성했잖아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저희 기획 방향은 명확했어요. 군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모색하는 과정이었죠. 첫 번째는 실제 현장에 동원됐던 군인들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두 번째는 단순히 가담하고 복종했던 군인들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성찰을 통해 소극적 저항이나 이의 제기 등 항명했던 군인들이 있다는 점을 조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군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역사 속에 살고 있거든요.
12.12 쿠데타, 5.17 내란, 이런 역사가 반복돼 왔고, 군부 독재로부터 민주화한 시점 자체가 그리 멀지 않아요. 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과거 쿠데타에 동조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그 역사에 누가 부역했고 누가 저항했는지 잘 조명하는 게 중요하죠. 특히 저항한 이들, 그들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판단이었는지 보여주는 것이 비슷한 일을 막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번에 AI 기술을 이용했잖아요.선택의 배경이 있나요?
"현장 지휘관 세 분 모두 직접 인터뷰를 거절하셨거든요. 그런데 해당 인원들의 이야기가 잘 와닿아야 그때 선택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고 그 감정을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AI 재연 드라마를 스토리텔링에 활용해 보자는 생각으로 활용하게 됐습니다."
- AI로 재연하는 것과 드라마로 재연하는 게 차이 있을 것 같아요.
"차이가 있어요. 일단 기술적으로 아직 구현되지 못하는 장면들이 많아요. 하지만 드라마 타이츠 방식의 실사 이미지 재구성도 나름의 제약이 많아서 AI 영상만으로 구현 가능한 영역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번 편에서는 무장한 병력이나 군용 차량들의 출동 모습처럼, 실제 재연으로 보여주기 어려운 상상의 영역까지도 재현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AI 재연의 중요한 가치인 것 같아요.
반면에 시청자들이 감정적으로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분들 실제 얼굴과 유사한 형태로 AI 재연을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가 교양 장르에서 세워온 재연의 윤리적 가이드라인만큼 비슷하게 AI 영상 재연에 대해서도 나름의 기준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취재는 뭐부터 했어요?
"아이템을 잡고 일단 섭외부터 나섰어요. 저희는 애초에 3인의 선택 잘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육군 본부와 국방부 설득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또 시청자들은 이미 계엄에 관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안 본 게 어떤 걸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그런 부분들 살피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 1605명의 군인이 계엄에 동원됐다고 나오던데 1605명이면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개념이 이게 많으면 많다고 볼 수도 있고 적으면 적다고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수사로 밝혀진 건 1605명 정도예요. 이건 정확하게 출동 지시가 내려진 사람들이고, 사실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지구 계엄사령부에서의 출동 계획 같은 건 포함이 안 된 수치이기 때문에, 내란 특검을 통해 수사가 진행되면 연루된 인원이 훨씬 많을 거라고 봐요. 다만 그 1,605명이라는 규모도 작지 않다고 보기도 해요. '나는 계엄군이었다'가 이번 편 타이틀이잖아요. 군인들 개개인의 소회, 고백,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라는 걸 표현하는 제목이었어요. 1,605명의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희생정신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일하고 계신 군인분들이 정치적인 도구로서 동원된 건데, 그래서 저에게는 그 규모가 되게 크게 느껴졌어요."
- 어차피 군인도 학창 시절 우리와 똑같은 교육을 받았으니까, 계엄에 대한 상처나 트라우마가 있을 것 같아요.
"충분히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인터뷰 중에도 나오지만, 이 일이 있고 나서 많은 고민과 우울감에 빠져 계시던 군인 분들이 있었어요. 계엄 직후 한동안 군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생겼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계엄이 있고 나서 군인이 군복을 입고 택시를 탔을 뿐인데 계엄군이라고 욕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었대요. 그래서 저는 이런 기획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일 집단으로서 군이 존재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도 고민하고 반성하고 또는 그때 용기 있는 결정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군에 대해서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치밀했던 섭외 과정
▲김건우 PD이영광
- 계엄군 A 씨를 섭외했잖아요. 설득 과정이 어땠나요?
"지금 기자님께 말씀드리는 이야기를 그분들께도 다 했어요. 군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게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그래서 당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어떤 소회인지만이라도 공유해 달라고 했죠. 그리고 이 작업이 결코 군에게 나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계속 강조했어요."
- 왜 국회에 가는지도 군인들이 모르고 갔나 봐요?
"저희가 후반부에서 보여드렸듯이 고위급들, 장성들의 경우 국회 침탈 지시가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죠. 내란 특검에서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출동했던 실제 지휘관부터 부사관들, 병사들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나 국회 봉쇄 지시 같은 걸 현장에 가서 알게 됐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 너무 당황했을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 군인 중에 북한으로 간다고 안 사람도 있던 거 같거든요.
"북한에서 오물 풍선 도발이 한동안 많았잖아요. 그때 한참 군의 경계 태세도 강화됐죠. 그래서 당시 계엄 관련 출동에서도 오물 풍선 관련된 북한 도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신 분들도 계셨던 것 같아요. 군인 중 누가 2024년에 북한 도발 때문이 아닌 정치적 목적의 계엄이 발동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 707 특임단 출신 김 씨도 인터뷰했잖아요. 김 씨는 어떤 인물인가요?
"신원 보호를 위해서 자세한 얘기는 드리기 어렵지만, 계엄에 관해서 이 707 특임단 출신 분께서는 군인들이 명령에 저항하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군인들이 지휘관의 판단에 의심을 품고 그 명령이 정당한지, 합법적인지 일일이 다 계산하고 명령을 수행했다가는 실제 전시 상황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명령 수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항명죄라는 강력한 처벌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의롭게 저항하고 1~2년 징역 살고 오면 되지 않나' 매우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결정이에요. 군형법은 일반 형법보다 훨씬 강력한 처벌을 전제하니까요, 계엄 상태에서 명령을 거부하면 징역 1년 이상 7년 이하인데, 1년만 받아도 무조건 군복을 벗어야 돼요. 자신의 생계와 명예, 나아가 연금이나 복리후생을 다 희생하면서 항명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죠."
- 그런데 만약 누가 봐도 불법이 확실하면 거부해야 맞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예를 들어 국민들에게 총을 발포하거나 물리력 행사하라는 명령에 대해 항명하기 어렵고 현장에서 법적 판단 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군인들이 무조건적으로 수행하면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애매한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기관인 걸 현장 출동 군인들이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거는 국민들도 많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경우라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군인들도 국회를 봉쇄하거나 선관위에 들어가는 행동들이 얼마나 위헌적인지에 대해서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은 어떤 이유에서든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서 우리가 확립해 낸 인권 기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계엄 상황을 반추해 보면서 기록하고 있는 작업도, 우리 모두가 민주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선을 정하고 합의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12.3 계엄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과정으로 된 거죠."
- 12.3 계엄 수사 기록을 입수하셨잖아요. 충격적인 부분도 많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용산의 장군들이라고 저희가 칭하는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여인영 전 방첩 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같이, 계엄의 최고 책임자들이 오래전부터 이 계엄에 대한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특히 충격적인 부분은 여인영 전 방첩 사령관의 경우에 정치인 체포 명단을 계엄에 한참 앞서서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이었어요. 그들이 계엄 당일에 계엄을 인식해서 이런 일들을 진행한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여러 번 정치인 체포를 모의하고 계획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어요."
- 2023년 말에 군 인사가 있었잖아요. 그때부터 계엄 준비한 걸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이 계엄을 언제부터 모의했는지 봤을 때, 23년 장군 진급을 시켰을 때부터로 볼 수 있는 몇 가지 정황들이 있죠. 예를 들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특전사 경력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수 관례에 맞지 않게 진급을 시킨 케이스인데, 그 진급이 굉장히 이례적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계엄 때 활용할 장군들로부터 충성심을 얻기 위한 사전 작업이 있었다는 거죠."
시민들의 위대한 힘
- 계엄을 막아낼 수 있었던 데에는 김문상 대령 등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이 군인분들은 원칙을 지킨 거였어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군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원칙 지키는 군인이 이례적이고 멋있어 보이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김문상 당시 수방사 작전처장은 비행 제한 구역에 대한 헬기 진입 허가를 내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 특전사 707특임단을 실은 헬기가 국회 부근 비행금지구역에 들어가려 했는데, 김문상 대령이 허가를 내리지 않았거든요. 707특임단이 목적지와 임무 목적을 정확히 얘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최고 책임자로부터 임무 전파가 정확하게 내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설령 목적을 인지했다고 해도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겠죠. 김문상 대령은 사실, 이때 원칙을 지켰을 뿐인데, 그것이 중요한 선택이 된 거예요."
-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계엄 관련된 군사령관 3명이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럼, 군사령관 3명은 어느 정도 계엄에 대해 준비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저희가 보여드렸지만, 계엄 169일 전에 세 번째 회동이 있었어요. 강호필 지작사령관이 함께하는 회동이었는데, 그때도 계엄에 대해서 구체적인 얘기들이 나왔다고 진술돼 있거든요. 장군들의 경우 '설마 하겠어' 싶은 심정이 간혹 있었겠지만, 그 개념 자체를 얘기한 건 생각보다 되게 먼 시점부터였죠. 적어도 6개월 전부터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한강 작가가 던졌잖아요. 12.3 계엄을 막은 게 80년 5월 광주였다는 평도 있는데.
"그 인식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방송을 기획한 의도이기도 했는데, 우리의 삶은 항상 시대적 맥락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역사는 반복되는데,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 속에서 쓰러진 인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목숨걸고 민주주의 지키려 했던 시민들을 기억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고요.
저희가 취재했지만, 방송에 포함되지 않아서 아쉬운 인터뷰가 있는데, 이재춘 선생님이라고, 5.18 당시 군에 있다가 시민군으로 돌아섰던 분이 계세요. 12.12 쿠데타 때 저항했던 군인들도 있고, 장태완 장군님도 그렇죠.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조명하는 것이, 현재 역사를 후퇴시킬 수 있는 결정들에 저항할 때 되게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방금 얘기와 동일한데요. 한편에는 생각하는 군인이 있었고, 한편에는 그들을 생각하게 만든 시민이 있었다는 사실이요. 우리는 과거와 분절돼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번에 소극적으로 저항했던 군인들이나 적극적인 의견 제기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충분히 치하해야 된다고 봐요. 반면에 맹목적인 복종을 통해서 실제로 계엄을 진행시켜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정확히 가려내서 명확한 처벌이 가해지는 것, 그런 역사가 남는 것이 다음의 계엄을 막을 수 있는 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