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데뷔 10년 차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누구보다도 신선하고 누구보다도 새롭다. 블랙핑크 제니의 이야기다. 올해 3월 발매된 제니의 첫 솔로 정규 앨범 < Ruby >는 지난 24일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지금까지 나온 2025년 최고의 앨범 50선' (The 50 Best Albums of 2025 So Far (Staff Picks)) 리스트에 선정됐다.
빌보드 필진 크리스틴 위스네스키는 "자신감, 우아함, 그리고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강력한 첫 번째 프로젝트"라며 "강력한 에너지와 새롭게 찾은 창작의 자유를 자연스럽게 조화시켜, 사운드와 비주얼 연출에 대한 제니의 완벽한 통제력을 보여주는 앨범"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 'Like JENNIE'는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트랙이다. 2025년 한국 가요계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이 곡은 본격적으로 불붙은 챌린지 열풍을 타고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모든 숏폼을 점령하며 전반기를 뜨겁게 달궜다. 다수의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 차트 1위를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월드스타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빌보드 '핫100 (HOT100)'에 차트인 했다.
제니가 흡수한 그 장르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25' 무대에 오른 제니
Coachella 공식 유튜브
그러나 'Like JENNIE'의 진정한 가치는 흥행 성적보다도 음악 그 자체에서 드러난다. 바로 '베일리 펑크 (브라질리언 펑크)' 장르를 케이팝에 본격적으로 흡수한 것이다.
베일리 펑크. 한국 대중에게는 생소한 장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기원한 장르라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민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카리오카(Carioca)를 사용해 '펑크 카리오카'라고도 불리는 이 장르는 한 번만 들어도 파악될 정도로 특징적인 사운드를 자랑한다.
가장 쉽게 알아챌 수 있는 특징은 리듬이다. 일반적인 음악과는 달리 베일리 펑크는 중간 박에서 킥이 치고 들어와 싱코페이션(당김음)을 만드는 비정형적인 리듬 구조를 띈다. 브라질의 습하고 후덥지근한 열기가 피부로 와 닿는 듯한 특유의 리듬 패턴은 텁텁한 듯하지만 들을수록 절로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파벨라(Favela)에서 시작된 베일리 펑크는 브라질에서는 매우 인기 있는 장르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인지도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한 팝스타가 자신의 신곡에서 베일리 펑크 장르를 채택해 베일리 펑크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전 세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더 위켄드 (The Weeknd)다.
지난해 발매된 더 위켄드의 곡 'Sao Paulo'는 베일리 펑크의 여왕 아니타(Anitta)와 함께 특유의 관능적인 사운드를 선보인다. 현 시대 가장 위대한 팝스타 중 하나로 꼽히는 더 위켄드의 선택을 받은 베일리 펑크는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장르로 떠올랐다.
케이팝을 대표하는 트렌드세터 제니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했다. 베일리 펑크 장르로 믹스테이프를 발매한 적도 있는 스타 프로듀서 디플로(Diplo)를 초빙해 케이팝과 베일리 펑크의 세련된 융합을 선보인다. 제니의 이름을 연호하는 'Like JENNIE'의 중독적인 훅과 지코(ZICO)가 써 내려간 한국어 랩이 브라질의 열기를 담은 베일리 펑크 비트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만들어냈다.
베일리 펑크와 케이팝의 만남
▲엔믹스의 새 음반 'Fe3O4: FORWARD' 표지JYP엔터테인먼트
이러한 흐름에 슈퍼 루키 미야오(MEOVV)도 합류했다. 베일리 펑크를 차용한 신곡 'HANDS UP'은 현란한 리듬과 쿵쿵대는 베이스, 주술적인 리드가 형성하는 긴박한 속도감이 인상적인 곡이다. 베일리 펑크 특유의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올해 상반기 최고의 케이팝 뱅어 트랙 중 하나다.
사실 베일리 펑크와 케이팝의 파트너십은 의외로 꽤나 유서가 깊다. 데뷔곡 'O.O'부터 지난해 'Sonar (Breaker)"까지 베일리 펑크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오고 있는 엔믹스가 대표적이다. 'O.O'는 케이팝의 문법 하에 베일리 펑크와 록을 접목한 '믹스팝'으로 엔믹스의 음악적 정체성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수작이다.
배우 주종혁이 참여해 이른바 '권모술수냐' 챌린지로 알려진 엔믹스의 'Sonar' 역시 베일리 펑크와 UK 개러지를 접합한 믹스팝 곡인데, 타격감이 두드러지는 드럼 믹싱이 특히 인상적이다. 장르 특유의 청각적 쾌감을 고스란히 살려낸 최고의 K-베일리 펑크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외에도 거슬러 올라가면 최소 한 해에 한 곡씩은 베일리 펑크를 시도한 케이팝 아티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2023년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제왕 에이티즈(ATEEZ)가 '미친 폼 (Crazy Form)'이라는 곡에서 베일리 펑크 장르를 선보였다.
2022년에는 EXID가 카슈미르(KSHMR)식 EDM 사운드와 베일리 펑크를 접목시킨 '불이나'를 발표했다. 2021년에는 블링블링(Bling Bling)이 'G.G.B'에서 브라질의 열기가 물씬 풍기는 정통 베일리 펑크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2020년에는 마마무의 곡 'AYA'가 후렴과 후반부 변주 구간에서 베일리 펑크를 차용해 신선한 전개를 보여줬다. 'Like JENNIE'가 가요계를 점령하게 된 배경에는 베일리 펑크를 한국 대중에게 소개하며 차근차근 친숙도를 쌓아 온 여러 팀들의 노력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비행기 없이도 전 세계를 횡단한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반도에 도착한 베일리 펑크는 이제 케이팝과 손을 잡고, 더 넓은 세계로의 두 번째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우리를 새로운 리듬으로 춤추게 할 그 여정을 한껏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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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빈입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문화비평학을 전공했고, 지난해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여성동아, IDOLE 등 다양한 웹진과 잡지에 대중음악 칼럼을 기고해 왔습니다. (문의: bin54835483@gmail.com)
'엔믹스'부터 '제니'까지, 케이팝이 사랑한 '이 장르'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