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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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상당히 고전적이고 전형적이다. 과거의 문제를 안고 있는 베테랑 선수와 물질적 성취만을 바라보던 루키가 만나 호흡을 맞추고 팀과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과정. 과거의 많은 팀 스포츠 무비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플롯이다. 실제로 영화는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 멕시코시티, 벨기에, 라스베이거스 그리고 아부다비까지 각국의 그랑프리(GP)를 도는 동안 두 선수와 팀이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하고 나아가는지를 그려내고자 한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과 에런 크러거 각본가는 별다른 것 없는 형태의 뼈대 위에 이야기를 쌓는 과정에서 이를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려고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한 모습이다. 하나는 그저 속도전에만 치우친 레이싱 대신 전략적인 부분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깊이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순위를 끌어올릴 것인지, 언제 피트 스톱을 할 것인지, 타이어는 어떤 종류를 쓸 것인지 등의 실제 F1 스포츠에서 활용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가져오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다뤄지고 있는 소니의 예측할 수 없는 작전, 세이프티카를 계속적으로 불러 팀 동료 피어스의 순위가 높아질 수 있도록 후방에서 자신의 차체를 박살 내는 등의 아이디어는 영화적이지만 기발하다.
물론 이 작품이 F1의 적극적인 라이선스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화 이후 포뮬러 원에 관심을 가지게 될 관객층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기초적인 수준의 전략과 오락성을 함께 선보인다는 점에서 똑똑한 접근이라고도 볼 수 있다. 1/100 초 차이로도 순위가 갈릴 수 있는 경기의 특성상 영화가 보여주는 여러 상황은 실제 경기에서도 얼마든지 활용되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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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는 시각적 효과에 있다. 첫 시퀀스에 해당하는 데이토나 24의 경기 모습에서부터 이 영화는 자신이 무엇을 보여주고 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특히 아이맥스 포맷으로 촬영된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현재 기술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시점으로 레이싱 장면을 촬영해 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속도감과 긴장감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마지막 아부다비 GP 라스트 랩에서 영화적 표현으로 '날고 있는' 소니의 드라이빙을 일인칭 시점으로 보여주는 시퀀스는 정말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전형적이고 고전적이다'라는 표현의 다른 말은 '뻔하다'라는 것이 될 수 있는데, 이런 시각적 경험은 그런 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물론 이런 완성도 높은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도 있었다. 실제 그랑프리에 촬영용 차량이 참가해 주행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으며, 실제 F1 포뮬러 차량에 가장 가깝게 만들면서도 촬영을 위한 센서와 카메라, 녹음기 등을 장착하기 위해 차량 개조를 숱하게 반복했다고 한다.
▲영화 스틸컷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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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패배자야. 멍청하고 감상에 빠진 빈털터리 패배자. 아무도 영원히 달릴 수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몇 가지 지점 가운데 새로운 세대의 성장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기성세대의 역할이다.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하고 내일에 대해서도 걱정하며, 앞만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젊음의 시기보다 어쩌면 더 복잡해 보이기도 하는 시기. 라스베이거스 GP에서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소니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이 부분을 짙게 투영해 내고 있다.
의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팀마다 2명의 드라이버를 출전시켜 경쟁하는 F1의 시스템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두 드라이버가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닌, 퍼스트 드라이버와 세컨드 드라이버로 나뉜다는 점이 그렇다. 실제로 팀 전략을 꾸리는데 있어서도 확률적으로 언제나 희생되는 건 세컨드 드라이버 쪽. 그렇게 보자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퍼스트 드라이버의 자리에서 세컨드 드라이버 쪽으로 내려오는 일이자, 전략의 성취를 얻기보다는 희생하는 쪽으로 옮겨진다는 의미와도 상응한다.
물론 후반부에 놓이는 두 사람의 마지막 레이싱만 보더라도, 그런 한계를 뛰어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영광이 있음을 영화는 분명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신체적 능력을 끌어올리고 미디어에 일일이 반응하던 젊은 피어스와 달리, 30년 전의 루틴을 지금까지도 끌어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것도 모자라 또 한 번 다른 환경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소니의 모습에는 분명한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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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 < F1 더 무비 >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하나다. 뻔하지만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매력을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마저 주지만, 아무것도 아닌데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것, 평범해 보이는데 가슴 뛰게 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수작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걸어온 방향. 할리우드 대형 자본과 끊임없는 교류와 작업이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 감독에게 남은 숙제는 하나다. 이번 작품의 스토리 라인이 자신의 전작인 < 탑건 2 : 매버릭 >마저 닮아 있을 만큼 전형성에서 탈피하고 있지 못하는 부분이다. 앞으로의 작업에서 그 지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내게는 그 해답을 어떻게 찾아가는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영화를 기다릴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 < F1 더 무비 >는 영화적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나보기를 당부한다. 어느 누구라도 레이싱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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