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직도 일본 활동을 하는데 일본어가 가장 힘들다. 결국 연습밖에 없었다. 영화 대본을 받으면 한국어 번역본에서 원어대본, 녹음 파일, 일본어 선생님과의 발음과 억양 연습을 모두 거친 뒤에 현장에 투입됐다. 한국 작품을 준비할 때 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는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너무 놀라서 경련이 오고 몸이 안 움직이더라. 겨우겨우 걸어서 무대에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25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배우 심은경이 출연하여 연기에서 예능까지 넘나드는 유쾌한 매력을 발산했다.

심은경은 아역 시절부터 뛰어난 연기력으로 한국에 이어 일본영화계까지 제패했다. 최근에서는 예능까지 진출해 엉뚱한 매력까지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유퀴즈> 섭외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는 심은경은 "나도 드디어 유명한 방송에 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소를 보였다.

심은경은 최근 유재석도 새로운 '웃음버튼'으로 인정한 예능 기대주이기도 하다. 유재석과 출연한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이이경과 '망한 소개팅'을 연상시키는 불협화음 케미는 많은 화제가 됐다.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이이경의 질문에, 시종일관 철벽을 치거나 리액션이 고장 나 버벅거리는 심은경의 '찐반응'은 큰 웃음을 자아냈다.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기대된다는 반응도 나왔다.

심은경의 첫 예능은 11년 전 유재석과 함께한 <런닝맨>이었다. 당시 심은경은 예상보다 더 정신없고 치열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노래에 전력질주까지 혹독한 예능 신고식을 치르느라 헛구역질까지 했다고 한다.

"새벽 다섯 시 반에 나가 해가 뜨자마자 오프닝을 했다. 이광수 배우님도 처음 뵙는 상황이었는데, 서로 민망한 의상을 입고서 첫인사를 하고는 '나성에 가면' 노래를 함께 불러야 했다. 제가 노래를 부르면 이광수님이 뒤에서 '뚜비뚜바~쓰비라바~'하며 코러스에 샤우팅을 하더라.

결정타는 '먹방 후 달리기 무한지옥'이었다. 광장시장에서 여러 음식을 잔뜩 먹고 나오자마자 갑자기 뛰라고 하더라. 그때 '예능 참 쉽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다. 뛰다가 5분 만에 너무 힘들어서 숨이 턱까지 차고 헛구역질까지 했다. 그런데도 작가님은 계속 뛰어야한다고 해 결국 광화문 앞 광장에서 지쳐서 벌러덩 쓰러졌다. 그때 이후로 회사(소속사)에 '제가 예능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이야기해서 11년간 출연을 안 했다."

심은경은 아역부터 시작하여 어느덧 데뷔 22년 차의 베테랑 배우다. 그녀의 대표작이 된 <수상한 그녀>의 영화제목처럼, 심은경의 배우 커리어 역시 남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10대 심은경의 선택

심은경 유퀴즈온더블럭
심은경유퀴즈온더블럭TVN

드라마 <단팥빵>에서는 최강희의 아역으로 출연하여 앙숙이던 친구에게 거침없는 발차기를 날리는 '헥토파스칼킥 소녀'로 처음 존재감을 알렸다. 18세에 출연한 청춘 영화 <써니>에서는 젊은 '임나미(유호정의 아역)'을 열연하며 무려 7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뜨리며 떠오르는 충무로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심은경이 친구들과 함께 불량학생들과 대치하다가 거짓 빙의에 걸린 척 연기하며 현란한 욕배틀을 펼치던 장면은, 지금까지도 <써니>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강소라, 김민영, 박진주 등 <써니>에 같이 출연한 멤버들과는 지금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심은경은 배우로서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 돌연 미국 유학을 결정한다. 심은경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 없는 낯선 땅에서 학창 시절을 만끽하고 클래식과 재즈에 빠져들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이 아니면 10대 심은경으로서의 삶이 없겠다 싶었다. 학창시절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보고 싶어서 뉴욕으로 가서 2년 반을 보냈다."

유학기간에 그녀가 배우라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호기심을 느낀 친구들에게 연기를 보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뭘 보여줘야 하나 고민하던 심은경은 <불신지옥>과 <써니>에서 보여준 특유의 빙의 연기를 선보였는데, 너무 실감 나는 열연을 펼친 탓에 미국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까지 일제히 '오 마이 갓'을 외치며 크게 기겁했다. 하지만 심은경의 연기에 감탄한 친구들이 다음날부터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계기가 됐다.

미국 유학 후 심은경은 800만 관객을 동원한 판타지 휴먼코미디 <수상한 그녀>로 다시 한번 흥행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인정받았다. 또 다른 대표작 <써니>가 공동주연이었다면, <수상한 그녀>는 영화 대부분이 심은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첫 원톱 주연작이었다. 여기서 심은경은 우연히 노인에서 젊은 소녀로 되돌아간 '오말순(나문희와 2인 1역)' 역할을 맡아 외모만 20대인 칠순 할머니를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연기를 소화했다.

당시 20세에 불과했던 심은경은 전반부에게 엉뚱하고 거침없는 코믹 연기에서 후반부에는 자식들을 위하여 희생을 감수하는 절절한 '모성애' 연기까지 능숙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자신이 없다며 고사했다. 그런데 황동혁 감독님(오징어게임, 수상한 그녀 연출)이 '이 역할은 은경씨가 아니면 안될 것 같다'고 설득하셨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황 감독의 안목은 정확했고, 심은경은 <수상한 그녀>의 성공으로 이듬해 21살의 나이에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까지 수상했다.

돌연 일본행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중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중 한 장면tvN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심은경의 '수상한 도전'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2017년에는 돌연 일본행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심은경은 일본어에 능숙하거나 일본에서 작품 제안이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일본 록에 심취해서 록밴드를 결성하여 도쿄돔을 휩쓸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며 심은경다운 엉뚱한 이유를 밝혔다.

한국에서 주연급 배우로 자리 잡은 심은경은 일본에서 다시 신인으로 새롭게 시작해야했다. 타국의 언어로 연기한다는 것은 노련한 베테랑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불과 일본어 공부 6개월 차만에 심은경의 처음 작품 제의가 들어왔다. 심은경의 유일한 돌파구는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심은경은 한국어 번역 대본, 일본어 대본, 녹음 파일, 일본어 선생님과 발음과 억양을 체크하는 4단계 과정을 거쳐 혹독한 연습으로 일본어 연기를 준비했다. 자연히 모국어로 연기하는 한국 작품을 준비할 때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심은경은 "아직도 일본어가 가장 어렵다"며 스스로의 실력에 겸손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심은경의 작품을 감상한 많은 일본 팬들은 심은경의 연기력과 일본어 실력에 찬사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심은경의 절실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일본영화 데뷔작 <신문기자>에서는 정치스캔들과 저널리즘을 조명하는 사회부 기자를 열연하면서,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시상식인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을 비롯하여 각종 영화제에서 4관왕을 수상한다. 불과 일본 진출 3년 만이자 한국배우로는 최초의 쾌거였다. 당시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에 당황하여 경련까지 왔다는 심은경에게도 배우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순간이었다.

겉보기에는 내향적이고 낯을 가리는 성격의 심은경이지만, 의외로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기회가 생기면 빼지 않는 무대 체질로도 유명하다. 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을 가서 친구들을 앞에서 무대에 올라 '누난 너무 예뻐' 노래에 맞춰서 댄스를 추는 영상인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심은경은 "어릴 때부터 촬영 끝나고 노래방에 가면 좌중을 압도하려는 욕심이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모두 소리질러, 고생하셨숨돠~'하고 분위기를 띄운다"는 반전 면모를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결과물을 만들어온 심은경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 록밴드를 하겠다는 열정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심은경은 "저에게 록이란 '러브앤 피스(사랑과 평화)"라고 정의하여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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