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장 박지성도, 그리고 EPL(영국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고 있는 손흥민도 피하지 못한 게 있다. 바로 인종차별을 비롯한 각종 동양인 비하 발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시절 경기장에 울려 퍼진 이른바 '개고기송', 그리고 팀동료 벤탄쿠르가 손흥민을 지칭한 못된 말(아시안은 다 똑같이 생겼다)까지. 한국 선수가 EPL에 진출한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음에도 혐오 사례는 오히려 늘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심각한 사안으로 인지한 국제축구선수협회(아래 FIFpro)가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13일 FIFPro 아시아·오세아니아 지부가 발표한 반아시아 인종차별에 관한 리포트를 시작으로 캠페인을 시작한 것. 도쿄에서 열린 포럼을 마치고 한국에 머물고 있는 에리카 푸포(Erica Puppo) 형평성-다양성 매니저를 25일 서울 마포구 인근에서 만났다.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혐오 이슈 문제"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형평성-다양성 매니저 에리카 푸포.
FIFPro
브라질계 이탈리아인인 에리카 푸포는 한국과 일본에서 5년 이상 살면서 친구와 동료들이 미묘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반아시아 인종차별 피해를 당하는 것을 목격해왔다고 한다. FIFpro 글로벌 정책팀에 있다가 2년 전 신설된 형평성-다양성 팀으로 옮기게 됐고, 각 대륙별 지부와 협력해 지금의 보고서 발간에 조력했다.
"온라인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도 혐오, 차별 이슈가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선수들은 자신들의 SNS가 일종의 홍보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기에 필수불가결한데, 개인 메시지를 통해 오는 혐오 발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보호가 시급한 상황이다."
해당 보고서 발간을 위해 담당자들은 지역별로 선수들을 나눠 인터뷰하거나 사례를 수집했다. 에리카는 "유럽 내 클럽들을 대상으로 'Kick it out'이란 기구가 사례를 모으고 있는데 EPL 지난 여섯 시즌 간 데이터를 받아 분석해보니 주목할 점이 있었다"며 "최근 두 시즌에서 혐오 및 차별을 당한 선수들 중 56%가 동아시아 선수라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전체 신고 사례(총 4400여건) 중에 90% 정도가 동아시아 팬들이 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다. 같은 문화권 사람들이 인지를 해서 차별과 혐오임을 알리고 있는 건데 그만큼 이건 교육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본래 차별, 혐오의 피해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이 흑인이었는데 아시아 선수들이 대거 유럽에 진출하면서 광범위하게 혐오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여성 선수들의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가 정의한 차별, 혐오의 유형은 다양했다. 눈을 옆으로 찢는 행위, 동양인의 생김새가 다 똑같다는 발언, 동양인을 보고 코로나19 팬데믹을 언급하는 것 등 겉으로 표출되는 행위에서부터 무시와 배제 등 보이지 않는 행위들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혐오 행위의 주체 또한 앞서 손흥민 사례같이 동료 선수일 수도 있고, 팬이나 심지어는 코치, 스태프인 경우도 꽤 많았다고 한다.
"일상의 무지 때문에 혐오가 발생"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형평성-다양성 매니저 에리카 푸포.
FIFpro
에리카 푸포는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이 독일을 격파하면서 어부지리로 멕시코가 올라가자 팬들이 눈을 양 옆으로 찢으며 감사 표시를 한 것도 무지에서 비롯된 혐오 행위라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무지로 일상의 매우 작은 데서부터 혐오가 발생할 수 있다. 영어 발음이나, 문화적인 것부터 지적하기 시작하는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하나하나 충격이 마음에 쌓이게 된다. 매우 사소한 혐오이다 보니 신고를 해야하는지 본인도 헷갈려 하고 결국 경력이 끝날 때즈음 자기 성찰을 하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박지성 선수도 팬들이 사랑해서 개고기 응원가를 만들었지만, 은퇴하고 나서야 그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말하게 됐다.
이처럼 아시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각종 혐오나 차별의 집중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동아시아 선수 중 가장 큰 대상이 바로 손흥민이다. 토트넘 팬들과 한국을 이어 주는 아주 훌륭한 일을 했지만, 두각을 보이는 만큼 혐오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의 동료는 못된 농담이라고 했는데, 사실 팀 차원에서 그걸 활용해 그 발언이 얼마나 잘못인지 교육하는 기회로 삼았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실 벤탄쿠르가 사과한 것도 아니었지. 농담이라는 말은 가장 흔히 나오곤 하는 핑계다."
"이런 혐오와 차별은 피해자 본인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점차 망가뜨린다"고 에리카 푸포는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이 고국을 떠나 혼자 낯선 땅에 온 선수들이라 본인들이 느끼는 게 혐오가 맞나 의심하다가 스스로 예민하다고 여기기도 한다"며 "동양인은 예의바르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럴수록 불안장애나 우울,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짚었다.
"그런 소극적 모습은 개인 커리어에도 영향을 준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코치를 하거나 축구 산업 전반에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제한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흑인은 빠르다, 아시안은 성실하다는 등 이런 전형성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선수가 가진 또다른,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피해자도, 그리고 각 구단 차원에서도 각성이 필요한 이유다."
에리카 푸포는 "다들 살아온 문화가 다르기에 농담이라고 말할 뿐 그 혐오 행위를 바꾸는 게 쉽진 않지만 그래서 더욱 논제로 꺼내는 게 중요하다"며 여러 신고 시스템과 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활용할 것을 종용했다.
"FIFA에선 이미 3스텝 방지 시스템이 있긴 하다. 팬이나 팀 동료가 혐오 행위를 한다면 심판이 경기를 멈추고 두 차례에 걸쳐 경고를 준 뒤 해당 경기를 지속할지 결정하게 한다. 물론 저희는 단 한 번에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다. 브라질 출신인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레알 마드리드)에게 혐오 행위를 한 팬이 징역 3년형을 받았잖나, 법정에서 혐오를 처벌한 중요한 사례다. 각 나라마다 법이 다르겠지만, 브라질은 차별금지법이 굉장히 강력해서 축구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혐오 행위를 하는 순간 체포당할 수도 있다.
우리 협회는 각국 클럽 리그에게 법적 문제든 복지 문제든 함께 하자고 권고하고 있다. FIFA와 협업해서 SNS 보호시스템도 진행 중이다. SNS 사용시 보호 기능을 활성화하면 혐오 문구는 자동으로 가림 처리돼서 저장 폴더로 옮겨진다. 선수나 팬은 못 보지만 매니저나 관련자는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게 한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들에겐 그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 국가대표 출신 요시다 마야도 최근 우리와 함께 했는데 본인이 받은 차별과 혐오 사례를 공개해줬다. 많은 선수들이 함께 해주길 바란다. 선수들이 그런 차별과 혐오로 다치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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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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