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스틸
㈜티캐스트
<그을린 사랑>에는 원작이 존재했다. 영화 개봉 당시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작품이 반향을 얻은 영향 덕분인지 뒤늦게 국내에 정식으로 출판된다. 영화가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고, 이듬해 극장 개봉을 맞이한 후, 같은 원작에 기반한 연극이 2012년 국내 초연되고, 모든 것의 출발이라 할 희곡 대본집이 2019년에 소개되었으니 기원을 거슬러 오르게 된 셈이다. 마치 영화 속 쌍둥이 남매가 어머니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극작가 와즈디 무아와드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해 퀘벡 지방에 정착한 이민자다. 그의 대표작은 4부작으로 완결된 비극 연대기인데, <그을린 사랑>은 그 두 번째 작업이다. 듸 빌뇌브 감독은 젊은 시절 우연히 연극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영화화하려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감독 역시 퀘벡 출신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거주지도 불어 문화권인 퀘벡이다.
<화염>이란 제목의 원작 희곡은 2003년에 완성된 것으로, 영화 내용처럼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 세대 내내 벌어진 레바논 내전의 참상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내전 그 자체를 형상화한 모양새의 어느 가족사가 줄거리를 형성한다. 대체 이 가족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들 가족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관객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저 마음 편하게 연출가의 솜씨를 품평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 관객이 그 돌직구 질문을 마치 취업 페널티킥을 맞이하는 불안에 휩싸인 골키퍼가 된 처지로 필사적인 답을 도출해야만 한다.
영화는 연극의 숨막힐 것 같은 질문을 더 거대한 그물망처럼 키워 관객을 꼼짝할 수 없게 휘감는다. 관객이 정서적으로 견디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ㄱ러려고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무심하게 <그을린 사랑>을 관전할 수 있다면, 살면서 기구한 일 어지간히 겪었거나 혹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측은지심이 부족한 존재일 것이다.
원작의 존재와 그 내용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당사자성도 갖추지 않은 서구 영화감독이 소재주의에 기울면서 군자연한 또 다른 위선 사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원작을 충실히 영상화했고, 작가 역시 자신의 기원이자 뿌리라 할 고향의 비극적인 역사를 물려받아 예술로 승화한 것임을 확인한 다음엔 고민의 초점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영화 속 남매가 대면한 끔찍한 진실과 속편한 망각, 둘 중 무엇을 택하느냐 문제다. <매트릭스>에서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 선택하는 문제보다 몇 곱절 무거운 데다, 한번 결정하면 무를 수도 없다. 금단의 문을 열면 돌이킬 수 없음은 자명하다.
몇 겹의 삶을 산 이의 정체성
▲<그을린 사랑> 스틸
㈜티캐스트
쌍둥이 중 오빠는 어머니를 원망하며 이제 그가 물려준 과거의 상흔에서 그만 탈출할 기회라 여긴다. 하지만 수학자인 동생은 냉철하게 수수께끼 같은 유언을 곱씹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믿는다. 은사와 일론 수학 관련 토론을 벌이는 초반 대목은, 그들이 떠안은 문제가 불확실성 자체라 할 난이도란 것과 함께 결국 답을 도출해야만 벗어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남매의 상반된 입장은 내전 자체라 할 가족의 비화를 둘러싼 정치적 판단 차이로 직결된다.
딸이 현지에 도착해 조사한 어머니의 고향에서의 과거는 당황스러움 자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그들이 찾아야 할 오빠이자 형의 불운한 탄생과 생이별, 간신히 새 인생을 찾은 것만 같던 어머니가 그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벌인 모험과 참담한 비극적 체험, 그 결과 그토록 벗어나려던 증오와 폭력에 휘말린 세월, 투사였던 그녀를 굴종시키려 자행한 가공할 폭력의 결과가 무엇인지 양파 껍질 벗기듯 전모가 밝혀진다. 어느새 수학자의 확신은 당혹감으로 치닫는다.
어머니의 오랜 지인인 공증인은 복합적인 존재다. 그를 한 명의 개인으로 본다면, 충직한 지인이자 부하 직원의 가족을 의리로 돌보는 후덕하고 선량한 인물의 전형이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 가족이 그저 평범한 갑을이 아니듯, 그 역시 어떤 집단의 형상화로 보는 게 적합할 테다. 레바논을 식민지배하며 내재된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부추겨왔던 서구 열강의 속죄와 보상을 대행하는 존재라 보면 앞뒤가 딱 맞는다. 물론 현실의 강대국은 악어의 눈물조차 턱없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어머니의 또 다른 호칭을 알게 된 자식은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인생의 굴곡을 어머니가 견뎌왔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린다. 같은 인간의 삶이 맞을까? 어쩌면 한 사람이지만 몇중의 인생을 중복-병행하는 게 가능한 걸까? 회의 섞인 궁금증은 계속된다. 그런 가운데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던 어머니의 단호한 의지는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그들은 마침내 모든 진실에 도달한다. 그 결말은 고대 신화의 비극에서나 볼 법한 극한에 닿는다. 부모에 감정을 이입한 관객이라면, 어머니가 너무나 잔인한 부탁을 영문도 모르는 미래 세대에 던졌다고 규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극 <화염>과 영화 <그을린 사랑>은 잊어선 안 될 비극적 현대사의 우화다. 아무리 참혹한 성격이라도 기억하고 기록해 후대에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계승해야 한다.
모든 전쟁은 미친 짓이라는 절대명제
▲<그을린 사랑> 스틸
㈜티캐스트
비극적 유산을 물려받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결국엔 입장과 생각이 달라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죽은 어머니는 전하고 싶었으리라. 그저 망각으로 봉합해선 언제 또 탐욕과 증오에 편승한 권력이 혐오와 살육을 조장할지 모른다.
영화는 잊힌 전쟁의 기록이지만, 역사책에 멈추지 않는다. 레바논 내전 출발이 이스라엘이 '나크바' 후 내쫓은 팔레스타인 난민 대거 유입에서 출발한 점, 내전의 절정에 이스라엘의 침공과 안마당 내주기 싫던 시리아의 대응이 국제전으로 터졌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전쟁의 발단과 경과, 그리고 요원하게만 보이는 해법까지 성찰하는데 도달할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전쟁을 상기할 때 종종 등장하는 '치킨 호크'들의 전쟁 예찬과 선동 구호가 끔찍하게 보일 테다. 모든 전쟁은 미친 짓이고, 파괴와 학살은 어떤 대의명분에도 또 다른 증오만 낳는다는 진실을 만났기 때문이다.
<작품정보>
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캐나다|드라마, 미스터리, 전쟁
2025.06.25. (재)개봉|130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루브나 아자발, 멜리사 데소르모-풀랭, 막심 고데트
수입/배급 ㈜티캐스트
▲<그을린 사랑> 포스터㈜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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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쌍둥이 남매가 엄마 죽음 후 마주한 진실, 이들이 남긴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