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5년 걸렸다. 세월호 참사를 주제 삼은 극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 말이다. 그랬다. 어찌 보면 너무 짧지도 너무 오래 걸린 시간이었다. 그때까지도 만족할 만한 진상 조사는 요원해 보였다. 세월호가 인양된 것도 불과 2년 전이었다.
2019년 봄, 영화 <악질경찰>과 <생일>이 나란히 개봉했다. <아저씨> 이정범 감독과 이선균 배우가 만난 <악질경찰>은 범죄물이었다. 나쁜 경찰이 세월호 생존자와 얽히면서 거악 처단에 나서는 이야기였다. <생일>은 이창동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고, 전도연과 설경구가 세월호 유가족을 연기했다. <악질경찰>은 흥행에 참패했고, <생일>은 화제성에 비해 아쉬운 12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 이전 선댄스 영화제 수상작인 4.3 장편영화 <지슬>을 만든 오멸 감독이 있었다. 2018년 개봉한 <눈꺼풀>은 실험적인 극영화였고 관객들은 물론 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 전미선과 유재명을 비롯해 <파친코> 김민하, <킬러들의 쇼핑몰> 김혜준 등 지금은 이름값을 얻은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 옴니버스 영화 <봄이 오면>도 마찬가지였다. 창작자들도, 관객들도 참사 이야기를 극으로 마주하기 거북하고 부담스러워 했다. 서로 너무 빠르다는 모종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 했다. 그런 시대였고, 그런 주제였다.
참사 10주기는 더딘 듯 금세 찾아왔다. 그에 앞서 선보인 배우 출신 조현철 감독의 수작 <너와 나>가 청룡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세월호 참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아니었다. 10주기에 개봉한 극영화는 <목화솜 피는 날>이 유일했다. 인양된 세월호를 카메라 정면에 비추는 데까지 나아갔지만 10주기 추모 열기를 극장으로까지 불러들이는 데는 실패했다.
세상이 그랬다. 세월호 참사를 온전히 추모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위로하는 시대이었다. 그 이태원 참사를, 오송 참사를, 순직 해병 사건을 책임져야 할 정권과 싸우느라 세월호를 되돌아보는 일이 시의적절치 못한 건 아닌가 하는 강박과 염려가, 자기 검열이, 혹은 패배감이 유령처럼 떠도는 시기였다.
2024년 작년 한 해가 그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극장에 걸린 다큐멘터리들의 성적도 엇비슷했다. 극장 흥행 환경 자체가 침체된 건 맞지만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세월호 영화들을 딱히 환영한 적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다큐든 극이든 세월호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는 행위 자체가 이른바 일반 대중에까지 가 닿지 못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참사 11주기에 선보이는 <바다호랑이>(25일 개봉)는 역시나 손에 꼽을 '세월호 극영화'인 동시에 시기와 작품 자체 모두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선 형식과 주제 면에서 미니멀하면서 거시적이다. 또 직설적이면서 은유적이고, 이성적이면서 감정적이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설명은 하지만 끝끝내 연설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은 이상하고 낯설게 보일지 모를 세월호 극영화가 우리 앞에 당도했다.
고 김관홍 잠수사를 아시나요
▲영화 <바다호랑이>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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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팽목항 참사 현장으로)간 게,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 2015년 9월 15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고 김관홍 잠수사 발언
억울할 만 했다. 참사 현장을 외면하지 못한 자칭 양심 죄로 인해, 자발적인 헌신 때문에 치렀던 형벌은 혹독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아이들 시신을 수습했을 뿐인데 돌아온 건 육체적, 심리적 고통과 트라우마였다. 거기에 더해 동료 잠수사의 법정 투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참사 현장만큼이나 힘들고 외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결국 세월호 실종자들을 수습한 대표적인 '세월호 잠수사' 김관홍은 "뒷일을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2016년 6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국회 증언 이듬해였다. 잠수병으로 인한 급작스럽고 황망한 죽음.
김관홍 잠수사는 과거 팟캐스트 방송에서 만났다던 김탁환 소설가의 <거짓말이다> 출간도 보지 못했다. 김 잠수사 사망 두 달 후 출간된 <거짓말이다>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탁환이 김관홍, 공우영 두 민간 잠수사가 겪은 실상을 르포 형식으로 취재해 쓴 사회파 소설이다. <바다호랑이>는 이 <거짓말이다>를 원작 삼았다.
세월호 잠수사들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 <로그북>이 개봉한 게 2021년이었다. 그에 앞서 김관홍 잠수사의 사연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영화 부문 후보로 지명된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에 소개되기도 했다. <바다호랑이>는 세월호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호출한 첫 번째 극영화다.
원작 출간부터 개봉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9년.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 영화라 투자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제작진의 전언이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쳤다. 정윤철 감독이었는데도 다를 바 없었다. 정 감독은 '500만 흥행' <말아톤>으로 데뷔하고 <좋지 아니한가>, <수퍼맨이었던 사나이>, <대립군>을 통해 내노라하는 배우들과 큰 예산으로 작업해왔었다. 그래도 영화는 완성해야 했다.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알려진 바로는, 대형 연극 연습실을 세트장처럼 활용했다고 한다. 단 사흘간 촬영했다. 소규모 소품도 적절히 배치했다. 그런데 이게 설득력을 발휘한다. 배우들 연기와 이야기가 가진 힘 덕택이다. 그 주요 촬영 후 2회차 보충 촬영 끝에 영화가 완성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얼핏 연극 무대를 카메라로 옮긴 듯한 형식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연출한 <도그빌>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형식 파괴와 실험으로 유명하다. <바다호랑이>는 저예산이란 제한과 한계를 아이디어와 연기, 주제의 힘으로 돌파해낸 쪽이다. 낯선데 공감하고 심심한데 눈을 뗄 수 없다. 그 돌파에서 오는 우직함이 꽤 묵직함 울림으로 전이된다.
세월호 극영화 <바다호랑이> 개봉, 다행이다
▲영화 <바다호랑이> 스틸 이미지.
영화로운형제
보여주기보다 들려주기. 혹은 전시(展示)하기보다 전술(傳述)하기. <바다호랑이>가 부득불 택했을 형식적 전략이자 연출적 방점이다.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화면 속 소위 미장센을 접하고선 이것이 전통적인 극영화가 아님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집중하게 되는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다.
또 그래서 <바다호랑이>는 우직한 발화의 영화가 된다. 대사와 연기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자 그 직설 화법이 촌스럽고 불편한 강요가 아닌 하나의 영화 미학이자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세월호 영화들이 피하려던 전략이 도리어 잠수사들의 고통을 직시하자 묘한 힘을 발휘한다고 할까.
참사 이후 벌어진 곳곳의 실제 장면과 사건들을 소환하고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이 겪은 트라우마였다. 의도적으로 왜곡하려는 세력이 아닌 한 뉴스에서 본 사실을, 현장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민간 잠수사 나경수(이지훈)가 중동에서 큰 돈을 벌 기회를 마다하고 팽목항으로, 참사 현장으로 향하는 사연과 동기는 누군가에겐 쉬이 따라잡을 수 있고 따라잡을 수밖에 없는 공통의 경험이다. 굳이 '사실'적이고 '영화'적인 화면이 아니어도 충분한.
그러니까 관객은 배우의 눈빛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의 대사들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서사 진행에 부족함이 없다. 몰입감이 만만치 않다. 물론 최소한의 동선과 편집, 세트와 소품은 존재한다. 하지만 <바다호랑이>는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한다. 나경수가 바다에 잠긴 세월호를 수색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외면하고 싶은 그 고통이 전이된다. 신기하고도 독창적인 <바다호랑이>만의 영화적 체험이다.
서사의 진행은 김관홍 잠수사가 겪은 고통과 쟁투 그대로다. 거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동료 잠수사가 겪어야 했던 과실치사죄 재판 과정이 그 심리적 고통을 더한다. 왜 김관홍 잠수사가 정부를 향해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말라"고 일갈했는지에 대해 관객들이 공감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영화 <바다호랑이> 스틸 이미지.영화로운형제
거기까지였으면 관람 자체가 고통이었을 터. 정윤철 감독과 제작진은 기어코 위무와 위로를, 공감을 끌어낸다. 가족을 멀리하면서까지 트라우마와 갈등을 감내해야 했던 나경수에게 반목했던 유족과의 공감을, 아내와 가족과의 화해를 안겨주는 식이다. '그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You'll Never Walk Alone)란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 FC를 상징하는 노래와 가사를 영화적 장치로 깔아두었다 마지막에 기어이 선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세월호 관련 극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을 강조한 건 그래서다. 참사 이후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그럼에도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일정한 자본이 필수인 세월호 참사 극 영화는 좀처럼 완성되기가, 그 편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걸 돌파할 힘은 결국 예술에 있다. 독창성에 있다. <바다호랑이>는 그 보편적 진리를 일깨우는 흔치 않은 소중한 작품이다.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이 작품의 완성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그 외 여러 참사와 국가폭력 사건을 다룬 극 영화들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 공동체를 위해 그게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11주기, <바다호랑이>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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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세요" 세월호 잠수사의 절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