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중년구직분투기> 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한국 55세 이상 고령층 인구는 1598만 명이다. 이중 경제활동인구, 즉 일을 하고 있거나 일할 의사가 있는 실업자의 수는 968만 명에 이른다. 고령층의 60% 이상이 자의든 타의든 일하려 한다는 뜻이다. 실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단순 희망하는 비율, 즉 취업포기자며 구직단념자도 10%가량이 된다니 정년이 닥친 55세 이상의 나이든 이라 해도 그대로 뒷방늙은이가 될 수 없는 시대가 오늘의 한국이라 할 것이다(통계청 통계).
통계청 등 각종 통계는 명백히 고령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막상 육칠십대 노인에게 다가가 고령이라 말을 붙이면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진다. 지난 한 해 노인을 위한 독립언론사를 차려볼까 싶어 백명을 훌쩍 넘는 노인을 심층 인터뷰한 경험이 있으니 믿어 봐도 좋다. 불행히도 이 프로젝트는 현실화되지 못했으나 나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노인을 위한 언론이 없다고 여긴다. 노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그에 맞춤식으로 전달하고, 노인을 왜곡 없이 바라보는 언론이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한다.
통계청에 의해 고령이라는 묶음으로 포획되는 5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968만 명, 이들의 이야기 또한 세상엔 충실히 알려지지 못하였다. 흔히 틀딱이며 수구꼴통 같은 에이지즘 어린 편견으로, 또 그저 트로트 좋아하는 지난 세대 누구들로 뭉뚱그려지는 이들의 실제 모습을 한국사회가 무시하고 외면해온 탓일 테다.
일해야 사는 노년의 현실
지난 1년 복지센터에서, 공원에서, 쉼터에서, 아파트 경비실에서 만난 많은 노인들로부터 나는 그들에게도 우리네 한창의 청춘과 얼마 다르지 않은 마음들이, 꿈과 목표, 기대와 희망들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업 또한 이들의 주요한 관심사, 그렇다면 사회가 그 목소리를 기꺼이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선정작 <중년구직분투기>는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었다. 그건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전개되는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쉽게 가닿는 주제이기 때문일 테다.
앞에선 고령을 말하다가 갑자기 '중년구직'을 얘기하는 게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는 오늘 한국의 70대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통계에선 고령이라 하는데 집안에선 여전히 돈을 벌어야 하는 일꾼인 이들, 우리 사회에 그야말로 널려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중년은 이미 정년퇴직한 70대의 여성으로, 카메라를 든 감독에겐 어머니가 된다. 그러나 감독은 그를 고령 노인이라 하지 않고 중년 구직자라 말한다. 이는 그 자체로 한국사회가 외면하는 현실, 복지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서 일해야 하는 고령이면서도 중년인 이들의 삶이 되겠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구직 분투기를 다룬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직원으로 오래 일한 엄마는 정년이 돼 퇴직을 한다. 집안 사정 때문에라도 퇴직 후 계속 일하고 싶었던 엄마다.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재취업에 도전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직업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자격증도 딴다.
한국사검정시험이니 ITQ니 하는 자격증 목록이 젊은 층의 취업노력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엑셀 프로그램을 다룰 필요성을 느껴 성실히 배우고,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키고 연신 두드리는 모습이 어딘지 친근하기까지 하다. 다른 점이라면 이미 정년이 되어 은퇴한 사람이라는 점뿐이다.
감독은 영화제 측에 전달한 시놉시스를 통해 "퇴직 후에도 일을 하고 싶었던 엄마는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재취업에 도전한다"면서 "직업학교에서 공부하며 자격증을 따고, 아들과 함께 면접 연습을 하며 기간제 근로자 채용에 도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국 힘들게 취업을 했지만, 몸이 불편한 까닭에 고민이 계속된다"면서 "장애가 있는 중년 여성은 직장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적었다.
영화는 시놉시스 그대로 전진한다. 재취업을 위해 노력을 퍼붓는 엄마를 남편과 아들이 옆에서 격려한다. 모의면접을 집에서 치르는 등 감정적 지지 뿐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까지 준다. 그 사이사이로 수시로 뽀뽀하는 금슬 좋은 부부, 화목한 가정의 힘이 비어져 나온다. 장애가 있다고는 하지만 구태여 신경 써 보지 않으면 영화상으로는 알아챌 수 없는 정도, 다만 톨게이트에서 힘든 작업을 맡아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금슬 좋은 노부부, 이들을 보는 재미
▲다큐 <중년구직분투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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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구직 중 본인이 일했던 한국도로공사에서 톨게이트 기간제 직원을 뽑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에 지원해 다시금 일하려 한다. 익숙하고, 집에서 가깝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테다.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직원을 정년이라 하여 퇴직토록 하고, 다시 기간제 직원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이를 특별히 의도하지 않은 듯 보이는 <중년구직분투기>의 카메라 가운데 그대로 담긴다.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지원하는 이유를 만들고 잘 보이려 옷도 골라 입고 간 엄마는 끝내 합격 통보를 받아온다. 누구보다 베테랑, 따로 가르칠 필요도 없는 이 직원에겐,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장애다. 몸이 불편해 특정한 직역에서 근무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취업 이후 첫 출근에서 밝혀야 할까, 아니면 면접에서 그러했듯 끝까지 숨겨야 할까를 가족과 함께 고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약간의 배려만 있다면 충분히 잘 근무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서 팀장이 이를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며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네 취업시장의 흔한 을들을 보는 듯하다.
러닝타임 28분의 단편 다큐는 여느 집안에서 벌어지는 흔한 사건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정년퇴직한 엄마가 가족의 지지 아래 구직하고 다시 취업하는 짤막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과 그 안의 냉정함이 엿보이는 의미심장한 구석도 없지 않다. 말하자면 영화 속 가족의 화기애애함과 사회의 냉정함이 대비되는 순간이야말로 이 영화의 칼날이 될 것인데, 일상을 따르기 급급해 초점을 명확하게 잡아내지 못한 대목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작품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작품이 본래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한별 감독은 "영화를 보면 저희 부모님께서 금슬이 좋다"며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의 연애담을 담고 그걸 통해서 제가 결혼 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또 저희 형도 결혼을 못하는 신부님인데 그런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처음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이 그건 별로 안 궁금해 할 것 같았다"며 "다른 걸 찾고 있는데 마침 어머니가 재취업을 준비하고 계셨고 그 게 좀 더 좋아보여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기간제 계약이 내포한 문제는 영화 너머 현실에서도 진행 중이다. 감독은 "예상했던 계약기간보다 더 빨리 계약이 종료됐다"면서 "6개월 정도 단위로 재계약하는 조건으로 모두 2년을 하기로 했는데 1년 만에 계약이 종료된 것"이라고 현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그때 팀장님께 어머니가 특정 보직만 할 수 있는 상황이란 걸 말씀드렸는데, 그 영업소가 그 보직을 기피하고 있었다"며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고령층인 상황에선 정말 재취업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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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톨게이트 정년퇴직한 70대 엄마가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