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고들 한다. 이건 참으로 맞는 말인데, 등잔 밑은 실제로 정말 어둡기 때문이다. 그저 실재하는 등잔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는 가까울수록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다. 언제나 작동하는 방식 그대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본래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랬다고 생각한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 또한 나와는 다른 사람인데, 마치 나 자신, 또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대하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연, 생각, 감정에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정 반대다. 등잔 밑은 정말 어둡다. 부모가 말할 수 없게 된 뒤, 심히 아프거나 곁을 떠난 뒤에서야 내가 그를 알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이를 흔하게 마주했다. 시간을 빼어, 정성을 들여 부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경험이 모두에게나 당연하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을 들여본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 대단한 불효자로서, 나는 이제와 이것이야말로 현대적 효의 유무를 보이는 차이라고 여긴다.
▲주고받은 () : 노력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엄마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딸
<주고받은 () : 노력>은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선정작이다. 한소리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로, 섹션2에 묶여 관객들과 만났다.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와 장애 없이 잘 들을 수 있는 딸이 영화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이다. 감독인 딸이 제 엄마와 저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공항에서 엄마와 대화하고 그녀가 소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용이 11분을 조금 넘는 짤막한 다큐의 주를 이룬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걸까. 둘은 버스를 타고 공항에 왔다. 이제껏 늘 딸이 엄마에 앞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을 터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가 앞장서 사람들과 소통한다. 딸은 멀찍이 떨어져 카메라로 그런 엄마의 모습을 잡는다.
다음은 어느 정자에 앉아 나누는 둘의 대화다. 카메라를 들어 엄마를 찍는 딸과 그런 딸의 입을 집중해 바라보며 웅얼웅얼 답하는 엄마, 그 둘의 소통을 곁에 놓아둔 또 다른 카메라가 바라보고 섰다. 두 카메라를 오가며 편집한 영상이 그대로 관객들에게 닿는 가운데, 영화를 보는 이는 조금씩 그들의 대화에, 엄마의 지난 시간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주고받은 () : 노력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청각장애 엄마의 대화법
한소리는 반다페에 보내온 연출의도에서 "엄마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맞추고, 입모양을 읽으려고 '초집중' 상태가 되곤 한다"며 "어쩌면 엄마는 수험생이 마음으로 공부하듯 세월을 보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엄마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오히려 엄마의 세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나와 영상을 보는 다른 이들이 '초집중' 상태로 노력해야 하는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작품이 출발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소리는 "(보는 사람은) 귀의 감각을 곤두세우거나, 혹은 귀를 대신하여 소리를 감각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표류하거나 속삭이는 소리들 속에서 각자만의 헤엄을 친다"고 작품을 대하게 될 자세까지를 전망하여 답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소통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어서, 어머니와 딸은 수화 대신 말로써 서로에게 집중해 그 의사를 이해해나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화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타인과 그러하듯이.
▲주고받은 () : 노력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청각장애 엄마의 나이트클럽
영화는 엄마의 지난 시간, 특히 엄마가 젊었을 적 즐겼다는 나이트클럽의 이야기로 돌입한다. 이 대목은 이 짤막한 영화 가운데서도 각별히 흥미로운데, 십대 시절 친구들과 찾은 그곳에서 커다랗게 틀어놓은 스피커 바로 앞자리로 다가가 음악을 감각했다던 사연이 풀려나오기 때문이다. 다음엔 친구들을 두고 혼자서 나이트클럽을 찾아 스피커 바로 앞자리를 장악하고 춤을 추었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가까운 친구의 사연을 듣는 듯 흥미롭게 다가선다. 남자도 필요 없고 음악, 선명하게 몸을 때리는 그 음의 파동을 감각하던 순간의 회상은 그 시절 청춘이던 엄마를 딸 앞에 불러오듯 선명하다.
또한 영화는 그 뒤로 이어지는 대화, 딸에게 잘 하고 있으니 쉬엄쉬엄 천천히 해도 좋다는 여느 엄마스러운 격려를 붙인다. 이때 영화는 화면을 가로로 나누어 2분할로 딸과 엄마를 나란히 보여준다. 말하는 엄마와 듣는 딸, 마음과 마음이 오고가는 그 진솔한 대화를 구태여 그 입모양에 한껏 집중할 필요 없이 자연스레 보여주는 것이다.
한소리 감독이 직접 적은 시놉시스엔 "엄마의 옆자리에서 벗어나 멀찌감치 떨어져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고, 영상을 편집하는 내내 프레임 속의 엄마를 반복해서 보는 과정을 거치니 겁쟁이는 나였다는 걸 더더욱 깨닫는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영화 속 자신을 향하여 짙은 애정과 지지가 담긴 격려를 내뿜는 엄마의 모습을 아마도 감독은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반복해 보았을 터다. 그로부터 듣는 자신과 말하는 엄마의 모습을 나란히 배치하기로 선택했으니, 이건 그대로 당당하고 애정 가득한 엄마와 그를 그대로 보지 못하였던 자신을 발견한 때문일까.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반짝다큐페스티발
가족의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감독은 다소 발음하기 난감한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언급했다. 한소리 감독은 "저도 엄마랑 뭘 주고받은 것 같은데, 단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하게 됐다"며 "(<주고받은 () : 노력>이란 제목 속) 공백에 뭐가 들어갈진 모르지만 둘 다 애썼다는 느낌을 받아서 특수기호와 노력을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소리 감독은 이어 "엄마랑 어렸을 때부터 영화랑 영상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았고 영화라는 예술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후에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떤 애도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서로가 서로를 핸드폰으로 일상을 찍어주는 걸로 극복해왔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녀는 이어 "저보다도 엄마가 저를 먼저 찍어주기 시작했고 그 영상에서 제가 보기 싫은 제 모습이 나오더라"며 "그러다보니 엄마한테 엄마도 당해봐라 하는 심보로 뒤이어 찍게 됐는데 마침 이 <주고받은 노력> 찍을 때 엄마 혼자 인천공항에 가야하는 상황이 있어서, 혼자 오롯이 모든 과정을 직접 한번 해보는 걸 멀리서 담아봐야겠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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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청각장애 엄마가 나이트클럽 맨 앞줄에 섰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