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이하 '반다페')이 그 막을 내렸다(5월 30일~6월 1일). 27편의 엄선한 한국 중·단편 다큐가 그를 고대한 관객들과 만났다. 창이 없다면 바람은 통하지 않는다. 그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어떤 목소리와 어떤 귀는 영영 서로 통하지 못한다. 반다페는 한국 유일한 중·단편 다큐의 창구다. 장편을 찍을 여력이 없는, 그러나 중·단편이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선을 전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이 끝끝내 그 무거운 걸음을 멈추었을 때, 적잖은 다큐인들이 반드시 중·단편 다큐의 창 만큼은 열려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 의지가 크고 작은 보탬으로 이어져 십시일반, 한 그릇 밥그릇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첫 반다페가 열렸고, 두 번 해를 바꾸어서 올해로 3회째 축제를 성공리에 매조지했다.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선댄스 영화제 대상작의 시선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를 나는 감히 올해 반다페의 격을 한 계단 올려준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가 마이너 중에 제일 메이저라 불리는 저 유명한 선댄스 영화제 대상작이라서가 아니다. 기실 이 영화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단편부문에서도 대상을 수상했고, 글래스고 단편 영화제와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도 대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될 만큼 대단한 화제작이었다.
중요한 건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그 전달방식이 한국에선 익히 본 적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반다페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작품이란 뜻이겠다. 이를 통해 사고며 인식의 확장을 얻을 기회를 반다페가 아니라면 누구도 갖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와 같은 경우가 내가 나고 자란 이 나라 한국에 너무나도 흔하다는 사실을 몹시 안타깝게 여긴다.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는 씨오 파나고팔리스의 17분짜리 단편이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그리스에 뿌리를 둔 감독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거주하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아중, 이 작품의 근간이 되는 필름을 발견하게 됐다고 전한다. 2023년 글래스고에서 불과 10분 거리 영상보관소에 보관돼 있던 필름이었다. 디지털 변환 없이 필름 그대로 있던 이 자료는 1930년대부터 40년대 초까지 팔레스타인 야생화를 다룬 필름 아카이브라 해도 좋았다. 오늘엔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아름다운 팔레스타인, 불화의 씨앗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으나 아직 전쟁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그 고장의 옛 모습이 그대로 담긴 필름으로부터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꽃을 찍은 비디오가 다른 의미를 갖기까지
2차대전 이전, 팔레스타인이 아직 영국의 통치를 받고 있던 당시 촬영된 영상이다. 현지에 거주하던 스코틀랜드 선교사가 들꽃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풍경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담았다. 저 자신을 비롯해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이들이 팔레스타인의 자연 가운데 등장하는데, 다분히 볕 좋은 날, 꽃 핀 들로 소풍을 나가는 광경을 찍은 홈비디오쯤이라 해도 많이 벗어나진 않을 테다. 바로 이 영상이 파나고팔리스의 손에 들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니, 그것이 이 영화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가 그저 아카이브 이상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겠다.
영화는 아카이브 필름 위에 감독의 독자적인 생각을 내레이션으로 덧붙이며 진행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격화된 건 영상이 촬영된 이후의 이야기, 그러나 그 씨앗은 이미 당대에 뿌려져 있다고 보아야 옳겠다. 영국의 무책임과 방임, 철수, 그리고 이면계약이라 불러도 좋을 벨푸어선언 뒤 시오니즘은 결실을 맺어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건국을 선언한다. 그로부터 중동전쟁이 발발하고 팔레스타인과의 100년 가까운 전쟁이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가 아름다울수록 오늘의 비극이 참담하다. 스코틀랜드 선교사의 삶이 평온할수록 오늘의 고난이 비극적이다. 팔레스타인의 들꽃은 포화 속 폐허로 화해 돌아보기 민망하다. 전쟁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된다.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반짝다큐페스티발
꽃에 밀려났던 팔레스타인의 얼굴들
또 하나 기록할 만큼 민망한 것은 카메라를 든 백인 선교사의 시선이다.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는 제목 속 꽃이 그저 들꽃이 아니란 사실을 영화를 본 누구나 느낄 수 있을 테다.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배제한, 그러나 어찌할 수 없이 들어간 진짜 그 땅이 나고 자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얼굴이 영화의 구석구석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때문이다.
그 얼굴들을 파나고팔리스는 구태여 포착해 들어 올린다. 그 얼굴들이 당대 팔레스타인 땅 위에 존재했음을, 일하고 즐기고 살았음을 알도록 한다. 그 말없는 지켜봄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감정을 마주하는가. 실재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들에 핀 꽃들만을 담으려 했던 선교사의 시선과 오늘 우리의 눈은 얼마나 같고 다른가.
제3회 반다페에 이 작품을 공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조이예환 PD는 이 작품의 가치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그건 그저 작품의 매력, 가치, 명성 높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 때문만이 아니다. 조이예환은 작품을 들여올 수 있기까지 너무나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감사를 전한다.
그는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영세한 영화제다보니 상영료를 지불할 수 없단 걸 밝혀야 했고, 굉장히 민망한 일이었다"며 "그럼에도 만난 해외 제작자며 감독들이 그 의도에 공감하고 한국에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며 기꺼이 스크리너를 공유해줬다"고 설명했다. 조이예환은 이어서 "특히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는 스코틀랜드 다큐협회에서 판권을 갖고 배급을 진행하는 작품인데도, 상영료가 없어도 된다고 작품 상영을 승인해줬다"면서 "이 과정에서 세계 다큐인들의 연대를 느낄 수 있었다"고 감격했다.
과연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는 제3회 반다페를 찾은 관객 사이에서 각별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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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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