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퀴어> 스틸컷
영화 <퀴어> 스틸컷㈜누리픽쳐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물 중독으로 조사를 받고 멕시코시티로 온 작가 윌리엄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전히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후텁지근하고 끈적한 여름, 멕시코시티는 무질서했고 방탕했다. 들끓는 욕망과 더위 사이에서 굳이 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는 삶을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청년 유진 앨러턴(드류 스타키)을 발견하고 마음을 뺏겨, 오로지 유진만을 원했던 사람처럼 적극적인 구애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변을 돌며 탐색했지만 영혼까지 알고 싶은 마음이 앞서 기어코 특별한 밤을 보낸다. 하지만 유진은 미끄럽고 차가운 물고기처럼 리의 어장에 쉽게 걸려들지 않고 매번 빠져나갔고, 잡을 수 없는 유진을 갈구하게 된다.

퀴어인 자신과 관계를 맺었지만 퀴어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드는 묘한 행동은 리를 더욱 자극하고, 끝내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미지의 식물 야훼를 찾아 남미로 여행을 떠난다.

배우의 색다른 쓰임새

 영화 <퀴어> 스틸컷
영화 <퀴어> 스틸컷㈜누리픽쳐스

<퀴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매우 개인적인 영화'라고 할 만큼 자신을 투영한 영화다. 20대 때부터 소설의 영화화를 꿈꿨으나 이제야 꿈을 이뤘다며, 본인이 삶도 녹여낸 작품인 까닭이다. 마치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정교한 세트와 특유의 필름 재질이 강한 멕시코시티 배경은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상상과 망상, 실제와 환각을 오가는 전체적인 톤을 이어받아 인공적인 미학을 더한다. 리와 유진이 밀애를 나누는 바(Bar), 호텔, 리의 집 등은 컬트 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린치의 세계관이나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팝아트를 떠올리게 할만큼 미장센에 공들였다.

007 시리즈의 스파이 제임스 본드와 <나이브스 아웃>의 탐정 브누아 블랑을 잊을 만큼 노쇠하고 비참한 동성애자로 분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색다른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상대역인 신예 드류 스타키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가 맡았던 청춘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그의 미묘한 매력을 차갑고 미끄러워서 잡기 힘든 생선 같다고 묘사되는데 정확한 의미는 영화 속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도저히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든 매력으로 시간을 통째로 사로잡는다. 거기에 <챌린저스>를 함께 한 각본가 저스틴 커리츠케스,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록 그룹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커스 로스와 협업해 관능적이고 맹목적인 관계를 파고든다.

자전적 소설의 모호한 매력

 영화 <퀴어> 스틸컷
영화 <퀴어> 스틸컷㈜누리픽쳐스

영화는 비트 세대 대표 작가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약물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던 자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중독, 금단, 탐닉의 세계를 자세히 기록한 보고서 같다. 본인이 개발한 '컷업(cut-up, 문장을 잘라 재배치해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문학 서사 기법)'기법의 시초를 만날 기회가 된다. 본국인 미국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195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겪은 일화를 담았다.

원작을 충실히 영화로 옮겼다. 3부 중 마지막 '정글의 식물학자'와 에필로그는 원작에 없으며 비선형적 서사를 취한다. 궁극적 연결을 원했던 리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상징적인 영상으로 채워진 구조다. 원초적이면서도 아방가르드한 미장센은 관객이 그들이 찾아 나섰던 야훼에 취한 것 같이 몽환적이다. 잊을만하면 자주 등장하는 지네와 후반부에 눈물을 흘리는 뱀은 리의 외로움의 반복을 의미한다. 많은 다리를 가졌지만 결코 방 안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지네와 자기 꼬리는 먹는 뱀(우로보로스)은 벗어날 수 없는 무간지옥에 빠진 허무한 심경을 대변한다.

그가 야훼에 집작하는 이유는 텔레파시가 가능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화 전반부는 말없이도 상대와 생각을 교신하고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희망에 들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본인과 같은 퀴어인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유진의 속마음을 알고 싶은 집착의 결과물 같아 난해하다. 야훼를 얻으러 간 남미 여행에서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은 영원히 얻을 수 없고, 중독된 약물에도 벗어날 수도 없는 공허함을 확인받고야 마는 비극을 경험한다.

제목과는 다르게 '퀴어'라는 단어는 '연결'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수자를 의미하기도 하기에 나와 다른 타인과의 관계를 떠올려 보게 한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상대의 심연의 생각까지 함께 하고 싶은 애달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끝내 닿지 못한 연민은 깊어진다. 발끝까지 시린 리의 외로움은 또 다른 자신을 부르는 동어였음을 떠난 유진의 태도로 확인받는다.

한편, 중단편 분량의 소설과 영화를 함께 흡수한다면 금상첨화다. 금수저 집안에서 자란 작가 윌리엄 S. 버로스가 누렸던 지식과 경제적 풍요로움은 독이 되었다. 이에 반기를 들며 끝없는 약물 중독에 빠져 고통, 환희, 슬픔, 명성, 비탄을 겪은 일생을 체화하는 신비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단, 닫힌 결말, 명쾌한 서사구조에 익숙하다면 낯선 방식에 어려움이 따를지 모르겠다. 그의 또 다른 소설의 영화화인 <네이키드 런치>보다는 비교적 서사적이라 작가의 입문용을 찾는다면 <퀴어>를 추천한다.

퀴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