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한쪽에는 '접근성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점자 프로그램, 음성 해설 수신기, 무대 모형 터치 투어 안내, 이어 플러그, 스트레스 볼, 비말차단 마스크까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관객이 스스로 감각을 정돈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이다.
로비 한쪽에는 '접근성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점자 프로그램, 음성 해설 수신기, 무대 모형 터치 투어 안내, 이어 플러그, 스트레스 볼, 비말차단 마스크까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관객이 스스로 감각을 정돈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이다.필립리

"경계없는 접근성 공연제작을 아세요?"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이른 더위가 밀려오던 오후, 나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따라 천천히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여느 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로비의 풍경이 (연극의 제목 때문인지) 이날만큼은 낯설게 다가왔다. 경계없는 접근성으로 제작된 공연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게 됐다.

벽면에는 음성 해설기 대여와 수어 통역 안내가 적힌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극장이 누구도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연을 맞이하던 로비는 이미 또 하나의 무대가 연출되고 있었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대학로예술극장은 조용한 언어로 접근성을 실현하고 있었다.

공연 시작이 임박하자, 휠체어를 탄 관객이 입장을 준비한다. 대기 중이던 직원이 자연스럽게 다가가 동선을 안내한다. 안내 데스크 옆에는 "오늘 수어 통역과 음성 해설이 제공된다"라는 문구가 단정하게 붙어 있고, 한쪽 벽면에는 수동 휠체어와 피난용 보조기구가 대기 중이다. 이 모든 장면은 '특별한 서비스'가 아니라, 일상처럼 평범했다.

로비 한쪽에는 '접근성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점자 프로그램, 음성 해설 수신기, 무대 모형 터치 투어 안내, 이어 플러그, 스트레스 볼, 비말차단 마스크까지 놓쳐있다.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관객이 스스로 감각을 체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구성이다. 마치 "공연 전에 당신의 감각을 정돈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무대 안에서 벌어지는 다층적 언어의 공존

객석에 들어서니, 휠체어석이 배치된 앞줄에는 고령의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객석 중앙에서는 자막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찾는 부부가 위치를 확인한다. 뒷줄에서는 음성 해설기를 착용한 관객이 눈을 감고 조용히 집중한다. 조명 옆 무대 한켠에는 수어 통역사가 손을 가볍게 푼다. 아직 막이 오르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공연의 언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로비에서는 사전에 축소 모형으로 무대 세트가 공개됐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관객이 무대 배치를 감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제작된 이 모형은, 실제 로비 바닥과 동일한 재질의 회색 타일을 깔았다. 정사각형 타일 위에는 다양한 책상과 의자, 철제 출입문 구조물이 배치돼 있었다. 특히 공연의 중심 상징이 되는 꽃을 올려두는 선반은 다른 것보다 크게 제작돼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현장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관객들은 이 모형을 통해 무대의 흐름과 동선을 미리 익히거나 떠올릴 수 있기 위함이란다.

막이 오르자 무대 위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반죽기에 빨려 들어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산업재해 피해자의 유가족, 수많은 동료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은 채 묵묵히 일하던 청소노동자, 어렵게 입사했지만 계약직이라는 신분의 한계 속에서 정규직 전환을 기약할 수 없는 인턴.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채,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동안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이 목소리들은 수식어 하나 없이, 그러나 분명하고 단단한 어조로 관객 앞에 천천히 자신을 드러낸다.

"나는 여기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날 보지 않았죠."

그 순간, 수어 통역사의 손이 배우의 목소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단어가 아닌 감정을 전하는 손짓으로. 그 손놀림은 감정을 그려내는 붓처럼 섬세하다. 수어는 배우의 심리를 따라 쉼 없이 진동한다. 객석 뒤편 전광판에는 대사와 함께 섬세한 지문이 흐른다. 감정과 상황을 전달하는 자막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공연의 정서를 더 짙게 만들어준다. 수어와 자막, 음성 해설이 어우러진 이 다층적인 언어의 무대는 연극의 감정과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 요소다.

시각장애 관객들은 음성 해설기를 통해 무대의 세세한 움직임을 귀로 따라간다. 해설자는 무대의 구조와 변화, 배우의 동선, 조명의 색감, 인물 간의 긴장감을 조용히 서술한다.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손을 잡았다는 걸 들을 수 있었어요.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장면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져요."

극장과 공연이 함께 쌓아올린 감정의 공유

연극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6월 20일~2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무대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것'으로 정의했다. 상상이 단절되지 않도록, 감정이 차단되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이 작품은 극장이 지향하는 접근성의 진심을 무대에서 이어받았다. 단지 장애를 가진 관객이 공연을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감정과 이야기를 "어떻게 함께 공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공연 전체에 스며 있었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접근성은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선다. 그것은 관객을 중심에 둔 예술적 윤리의 실천이다. 보금자리, 점자 촉지도, 피난용 보조기구, 수동 휠체어 등 모든 장치는 '특별한 배려'가 아닌 '모두를 위한 디폴트(기본값)'으로 작동한다.

지난 14일에 만난 강윤지 연출과 이예본 작가 역시 이와 같은 철학을 공유한다. 공연 기획 초기부터 접근성을 공연 언어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태도였다.

"접근성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기획부터 연습과 무대 디자인까지, 자막 디자이너와 수어팀이 함께 움직였어요." (강윤지 연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도, 수어 통역의 손짓을 따라가는 관객도, 모두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길 바랐어요. 단순한 포용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감각을 제안했습니다." (이예본 작가)

당신은 이 이야기에 함께할 준비가 됐습니까?

그날, 극장과 공연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관객은 그 둘 사이에서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듣는 것과 존재하는 것, 보는 것과 감각하는 것, 말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그 모든 감각이 무대 위에서 한데 얽히며, 공연은 그렇게 완성됐다. 마지막 장면. 배우가 조명 아래 멈춰 섰고, 무대 위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동안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 사이가 바뀌었어... 앞으로 또 바뀌겠지... 그랬으면 좋겠어."

수어 통역사의 손이 그 문장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감정의 잔향은 음성 해설기의 속삭임, 자막의 여운, 수어 통역사의 손끝을 타고 객석 사이를 파고든다. 공연은 조용히 막을 내리며 정수라의 환희 노래와 가사가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극장이 오랜 시간 상상하고 정성껏 준비한 환대의 결정체였다. 관객의 감각이 공연과 겹쳐질 때, 무대는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그날, 극장과 공연은 기어코, 그 손을 잡았다.
덧붙이는 글 [공연 정보]
공연명: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 / 공연일시: 2025년 6월 14일 ~ 23일 /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제공 접근성: 수어 통역, 실시간 자막, 음성 해설기, 휠체어석, 점자 촉지도, 수동 휠체어, 피난 보조기구, 보금자리, 유아 동반 화장실, 기저귀 교환대 등 / 연출: 강윤지 | 극작: 이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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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그동안 문화예술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2016~2023)에서 객원필진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대학로에서 공연과 전시를 보며 현장을 담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만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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