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3시부터 두 시간에 걸쳐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강북 2층 다목적실에서 양손프로젝트의 공연 '라이브씨어터' <파랑새>가 진행됐다.
필립리
공연이 끝났을 때, 누군가 박수를 쏟아냈다. 하지만 모두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우리에겐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박수를 쳐서 배우들을 보내기엔 아직 미련이 남았다. 말 한마디를 꺼내기에도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리를 지켰다. 예정된 30분을 훌쩍 넘겼다. 질문은 끊이지 않았고, 배우들은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한 관객은 이렇게 물었다. "이번 <파랑새>는 어떻게 구성한 건가요? 이 선택에 담긴 연출 의도가 궁금해요." 이에 대해 박 연출가는 "배우의 집중력과 감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연극의 본질이 배우라는 믿음에서 출발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객은 "양손프로젝트가 무대에 올린 여러 작품 중에서 배우로서 특별히 성장하게 만든 것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양조아, 양종욱 배우는 주저 없이 <파랑새>를 꼽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단출한 공간, 극도로 제한된 장치, 최소화된 구성. 그리고 그 안에서 감정을 끝까지 끌어올려야 했던 연기. '연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매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란다.
창작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양손프로젝트는 모든 작품을 수평적으로 선택한고 전했다. 각자의 머릿속에 자리한 상상과 욕망을 꺼내놓고, 누구 하나 이끄는 이 없이 나란히 두고 들여다본다고. 그 속에서 가장 절실한 질문을 향해 방향을 맞추고, 그에 맞는 형식을 탐색한단다. 그래서인지 무대 위 두 사람은 단지 배역을 맡은 배우가 아니라, 연출의 일부였고 극의 동력으로 보였다.
그날의 대화는 단순한 질의응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공간에 머문 사람들이 각자의 감정과 기억을 조금씩 열어보이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오래 묻고 있던 질문 하나를 꺼내 들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잇지 못해 끝나고 개인적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6년 전, 국립창극단 작품을 연출할 때, 판소리와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어 주목을 받았어요. 이번엔 정통 연극의 본질을 염두하셨는데, 서로 다른 두 장르를 연출하면서 어떻게 다른가요?"
박지혜 연출가는 웃으며 말했다.
"겉으로는 다르게 보여도, 안에서 우리가 나누는 감정이나 호흡은 비슷해요. 실제로 양손프로젝트의 배우들이 연기한 장면을 보고 이자람 배우는 판소리와 비슷하다고까지 말했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 연극이 하고자 했던 말을 조금은 이해한 것 같았다. 파랑새는 '꿈과 행복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머물렀던 곳에 있다'는 사실을. 연극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장치나 인상적인 대사가 아니라 지금 눈앞의 배우가 숨 쉬며 감정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 자체. 강북센터의 작은 무대, 고요한 공간, 따뜻한 조명, 숨죽인 관객, 손끝에서 시작된 감정 등이 극의 본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강북의 '예술당솔샘'은 대학로에서 흔히 볼법한 공연장이 아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시설은 연극과 전통예술, 교육과 실험, 어린이와 어른, 예술가와 시민이 한데 어우러져 예술을 호흡하는 열린 무대이다. 양손프로젝트가 강북센터에서 무대를 꾸렸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선택한 게 아니라, 이곳이야말로 장르를 초월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실천이었다. 관객과 배우가 호흡을 나누는 전통예술과 연극의 본령이 이 열린 구조의 무대에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현장에 모인 여든 명의 관객은 배우와 함께 그 파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연극은 끝났지만, 감정은 남았다. 질문도 여전했다. 그러나 이전보다 조금 덜 조급해졌다. 어쩌면 내가 찾던 연극의 본질에 관한 파랑새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21일, '서울시민예술학교 강북'에서 공연 [라이브씨어터] 파랑새 포스터양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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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그동안 문화예술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2016~2023)에서 객원필진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대학로에서 공연과 전시를 보며 현장을 담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만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