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스틸
대원미디어,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실은 애니메이션보다 만화로 먼저 출발한 작업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정체기에 새로운 도전으로, 완성기한이 규정된 애니메이션보다 상대적으로 재량이 부여된 연재만화를 시도했다. 고급 만화를 수록하던 잡지 '아니메쥬'에 1982년부터 연재한 동명의 만화 중 단행본 1권과 잡지 추가 연재분을 조합해 1차 완결로 선보인 게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인 셈이다.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스튜디오 지브리 일정 때문에 자주 중단되긴 했지만, 나우시카 이야기에 애착이 컸던 감독은 꾸준히 연재를 이어갔다. 만화는 12년 만인 1994년에 전 7권 단행본으로 완결되기에 이른다. 애니메이션에선 다소 급하게, 그리고 전형적인 영웅전설처럼 마무리한 이야기는 장대한 대하 서사시로 변모해 있었다. 설정 역시 애니메이션에선 단선적이던 게 몇 곱절 더 심화하고 복잡해졌다.
사실상 애니메이션 판이 아이와 부모가 함께 환경 문제를 가미한 명작 동화를 보는 기분이었다면, 만화 전집은 그야말로 <반지의 제왕> 급 규모와 함께 각자의 정의와 명분을 갖고 대립하는 거대 세력의 암투, 세계의 운명을 건 가치관의 충돌과 선택의 고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둘은 기본 설정과 등장인물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이야기라 봐도 무방하다는 분석이 적잖게 등장할 정도다.
애니메이션은 1984년에 공개되었지만, 이후 계속 연재되던 만화의 영향력은 절대로 뒤쳐지지 않았다. 이후 지브리의 전성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동료 타카하타 이사오가 선보인 명작들에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 판의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 있었다.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할 과학기술과 파괴병기에 관한 경고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거대 세력의 각축에서 자유로운 삶을 희구하는 소박한 개인은 <붉은 돼지>에서, 환경파괴로 쫓겨나는 비인간 존재의 슬픔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가슴 아프게 그려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만화의 끝과 통하는 작업이라면 역시나 1997년 <모노노케 히메>를 들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은 나우시카란 존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생이 가능하리란 희망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후로도 세상은 감독의 염원대로 개선의 전망을 보이지 못했다. 감독은 어쩌면 자신이 품었던 희망이 환상에 불과한 것 아닐까 고심하고 좌절하길 거듭했을 테다. 그러나 회의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서로 부딪히고 대화하며 살아내야 하는 운명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그 난해한 무제에 관한 감독의 대답이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 그리고 (국내에도 출간된) 7권짜리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 애니메이션을 재발견한다면, 마땅히 만화까지 도달해 온전한 작가의 비전을 목격하길 권하는 이유다.
<작품정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ナウシカ
Nausicaä of the Valley of the Wind
1984|일본|애니메이션, 어드벤처, SF, 판타지
2025.06.25. (재)개봉|116분|전체관람가
감독/각본 미야자키 하야오
PD 타카하타 이사오
음악 히사이시 조, 호소노 하루오미
수입 대원미디어
배급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스터대원미디어,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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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