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행사 포스터
한베평화재단
다 큰 성인도 전쟁의 한 가운데서 당해낼 수 없는 폭력을 접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는 한다. 고작 8살짜리 어린 아이, 제 세상 전부가 일방적 학살로 파괴되고 저 또한 총상을 입은 이가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일생을 살며 터 잡은 마을조차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녀가 마음을 열어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한국 정부와 맞서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장애물을 수도 없이 부수고 지나야 했을 테다.
이날 응우옌티탄은 영화 속 투쟁을 이어갈 수 있기까지 제게 손을 내밀었던 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응우옌티탄은 "1999년도에 처음으로 날 찾아와준 한국사람이 있었다"며 "구수정 선생님, 그리고 고경태 기자인데, 구 선생님의 인도로 점점 더 많은 한국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고 떠올렸다. 그녀는 이어 "처음엔 한국 남성들은 보기만 해도 거리감이 있었다"면서 "점점 시간이 지나며 한국사람들을 만나니까 정도 들고 남자나 여자 상관없이 서로 친절하게 달갑게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응우옌티탄은 "2015년에 처음 방한하기까지 고향을 벗어난 적 없었다"며 "처음으로 마을을 나와 그것도 해외로 가는 거지만, 진실을 증언하러 가는 거니까 용기를 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진실은 저의 고통이고 아픔이며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라며 "50년도 넘게 되었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게 제 진실이다"라고 전했다. 제게 답지한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에 거듭 감사를 표한 응우옌티탄은 "2015년에 왔을 때 한국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사랑을 안겨주어 고마웠다"면서도 "참전군인들만 저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는데 너무나 아팠다"고 떠올리기도 했다.
영화는 응우옌티탄이 지나온 지난 몇 년의 소송과정을 비추며 그 안에 깔린 그녀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약간이나마 짐작도록 한다. 그때그때 휴대폰을 들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촬영분 모음이 얼기설기 엮여 영화적으로 완성도를 논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작품이지만, 그렇다 해도 그 가치를 폄훼할 수 없는 것은 작품 안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나 절실하고 진실해서다. 무엇보다 응우옌티탄이 말하였듯, 그 진실이란 생존한 민간인학살 피해자의 '고통이고 아픔이며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다큐의 본질은 기록, 그에 도전한다
한편으로 영화는 다큐의 본질을 다시금 되짚게 한다. 다큐의 본령은 사실의 기록, 그 자체에 있지는 아니한가. 언론마저 외면하고 충실히 다루지 않는 문제를 가까이 다가서 기록해 전하는 것, 그것이 투박하고 조악할지라도 그 안에 진실에 다가서는 노력과 수고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다큐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평화로 가는 길>이 꼭 그와 같아서, 영화가 응우옌티탄의 인터뷰며 관련 사건의 충실한 보도만큼 독자적인 장면을 확보하고 있지 못함에도 유효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수년간 수차례 베트남에 방문하여 몇몇 민간인 학살지, 또 추모비며 한국군 증오비를 다녀왔다. 그 출발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한 역사적 관심이었으나, 문제를 파고들면 들수록 이를 대하는 한국의 자세가 오만하며 비겁하기까지 하다는 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기사: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군 증오탑 https://omn.kr/20lkn)
이는 한국이 일제의 지난 만행에 대해 그 책무를 일깨우고 반성과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일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가 우리의 피해에 대해서는 일치단결해 상대를 질타하면서도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외면하도록 놓아두면 안 될 일이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사랑하는 일이 군이 저지른 범죄를 국가가 인정하고 사죄하며 배상토록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또 다른 응우옌티탄, 하미마을에서 온 그녀가 말하기를 "하미 민간인학살 문제를 조사해달라고 한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청원서를 보냈는데 끝까지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소녀 시절 겪은 참극을 노년이 된 지금이라도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우리가 어떻게 짓밟아왔는지를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속죄해야만 한다. 하미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은 새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과 새 행정부를 겨냥해 "한국에서 새 정부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 한국까지 오게 됐다"며 "이제 제게 시간이 많이 있지 않은데, 죽기 전에, 아니면 죽은 후에라도 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화로 가는 길행사장 벽에 붙은 포스터한베평화재단
나고 자란 나라를 사랑하기 위하여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이 어떠한 요구도 받지 않고 요청하여 참전한 전쟁이란 건 따로 기술해 마땅하다. 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이 오늘날 자작극으로 드러난 '통킹만사건'이었다는 점도 언급해야 한다. 우리는 명분 없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개입했다. 그 대가로 국군 현대화와 경제원조,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로 상징되는 기초 과학기술 지원 등을 얻어냈다. 국가의 동맥이 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도, 그 영향 아래 이뤄진 경기부양에도 베트남의 피가 묻어 있음을 기억해 마땅하다. 하물며 전쟁범죄, 천인공노할 민간인학살이다.
영화의 제목이 '평화로 가는 길'이란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응우옌티탄이 한국에서 벌이는 소송이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갈라 놓는 것이 아니란 걸,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길 염원하는 일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응우옌티탄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한국 정부에 승소했다. 법원으로부터 그녀가 인정받은 손해배상액은 3000만100원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건 한국의 오늘을 알고 있어서다. 올 2월, 한국 정부는 결과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 국방부는 '학살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진상조사 요청을 묵살했다. 응우옌티탄은 평화로 나아가려 하지만, 학살 이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거듭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것이 내가 나고 자란 이 나라다. 평화로 나아가는 이와 그를 막는 나라, 둘 사이에서 내가 응우옌티탄을 지지하는 건 이 나라 한국을 여전히 사랑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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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