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석 연출가
오준석
이후 그는 더 깊은 관객 참여를 향해 나아갔다. 관객이 팀을 나눠 게임을 하듯 사건을 판단하고 선택을 이어가는 게임 시어터 <심청과 피노키오: 더 게임>, 공간을 함께 이동하며 경험하는 <약속의 아이>는 몰입형 공연의 실험이자 확장이었다.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의 능동성, 창조성, 놀이성이야말로 이머시브 형식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느꼈고, 그 가능성을 키워가기 위해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향후 3년간 청소년 이머시브 뮤지컬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어린이에게 그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 걸까. 오 연출가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을 떠올린다. 그 속에는 종종 고정관념이 숨겨져 있다. 그는 "세상에 좋은 새엄마가 얼마나 많은데, 동화 속 새엄마는 늘 나쁘게만 나오죠. 무도회에 가는 여자는 모두 왕자를 꾀러 가는 것처럼 그려지고요"라고 설명했다. 그런 통념 속에서 <사슴 코딱코의 재판>은 반문한다. 날개옷을 잃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 "책 속에는 없는 외로움과 무력감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공연에서는 한 70대 관객이 "아이까지 낳았으면 그냥 살아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오 연출가는 그 말이 시대의 시선을 보여주지만, 지금은 그 말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느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정말 전부일까? 그 인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가 말하는 감수성이란 바로 그것이다. 환경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인권 감수성 등. 결국은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고 경청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힘. 그는 그걸 '예술의 핵심 능력'이라 믿는다.
그는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꾸만 놓치고 있는 '진짜'를, 아이들이 발견해 내기를 바란다.
"진짜 아름다움이 뭔지, 진짜 진실이 뭔지, 진짜 사랑이 뭔지를 알려주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면, 저는 모든 어린이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이쯤 되면 <사슴 코딱코의 재판>이 꽤 진지한 공연일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우리 공연, 진짜 재밌어요. 더 많이 웃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진지함은 공연을 만드는 태도일 뿐, 무대 위는 늘 생기 있고 유쾌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고, 한바탕 웃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그의 무대는 오늘도 그런 질문과 웃음을 품은 채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슴 코딱코의 재판>이 열리는 아르코꿈밭극장은 이번 무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2024년, 대한민국 아동청소년극의 요람이라 불리던 학전소극장이 폐관한 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대학로 소극장 소멸 위기에 대응해 이 공간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7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개관했다. '꿈밭'이라는 이름은 국민 제안과 투표를 통해 정해졌는데, 어린이와 청소년의 꿈이 자라는 공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꿈밭펀딩을 통해 모금된 예산으로 객석, 분장실, 공연장 등을 정비한 아르코꿈밭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공연 발전과 직접 이용하는 관객과 단체들에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운영 노하우를 접목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어린이 중심극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슴 코딱코의 재판>은 바로 이 꿈밭에서,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고 어른들이 멈춰 서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려 한다.
▲<사슴 코딱코 재판> 포스터엠제이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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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