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김현철이 노래하는 모습
2025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김현철이 노래하는 모습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철원에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분쟁 소식을 접했다. 대도시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 보았다. 미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반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된다. 2025년에 평화는 성립할 수 있는 단어인가? 혹시나 공허한 이상은 아닌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평화'를 모토로 삼은 페스티벌에 와 있는 참이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6월 13일~6월 15일)은 '음악을 통해 평화를 노래한다'는 콘셉트와 함께 2018년 출범했다. 그러나 당시 공연장에 울려 퍼진 '전쟁은 끝났다'는 한 아티스트의 외침이 무색하게 평화는 짧았다. 화해 기류가 돌던 남북 관계 역시 빠르게 험악해졌다.

그러나 DMZ 피스트레인은 시대에 기죽지 않는다. 올해에도 "춤추고 노래하고 얽히자"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다른 페스티벌과 달리 '노 헤드라이너(No Headliner)'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어떤 아티스트를 언제 배치해야 하는지를, 또 어떤 아티스트로 세대를 관통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록스타의 탄생, 그리고 수많은 깃발

 2025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2025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올해에는 김현철이 있었다. '왜 그래', '춘천가는 기차', '달의 몰락' 등 8~90년대 명곡들을 2~30대 관객들이 신나게 따라부르는 모습이 신선했다. 무대를 등지고 강강술래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귀여웠다. 그의 수려한 음악이 'K 시티팝'이라는 맥락을 새로이 획득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김민규가 델리 스파이스의 명곡 '항상 엔진을 켜둘게', '고백', 그리고 '차우차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부를 때에도 현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시대를 관통하는 히트곡은 그토록 위대했다.

전국민적인 히트곡이 없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금요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철원을 찾은 뮤지션들은 물 만난 듯 자신의 세계를 뽐냈다. 김뜻돌은 커리어 최고의 공연으로 록스타의 자격을 입증했다. 거센 디스토션과 긁는 목소리로 달리다가도, 마지막 곡 '요가난다'를 부르면서 모든 관객이 손을 잡게 유도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의 스타인 단편선 순간들은 무용수와 함께 오프닝을 장식했다. '음악만세'에 삽입된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소리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순간의 감동은 가공할만 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 '음악만세'에 삽입된 음성 중

이외에도 철원은 알앤비 뮤지션 수민의 '어른 노래', 펑크 밴드 초록불꽃소년단이 40분 동안 쏟아내는 굉음, "우리가 서양 음악을 잘 한다"라는 펑크(Funk)의 대가 사랑과 평화의 너스레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해외에서 온 손님들 역시 쉽게 관객들을 설득했다. 디트로이트에서 온 하이테크(HiTech)는 끊임없는 모쉬핏으로 새벽을 장악했다. 텔레팝뮤직(Telepopmusik)의 도회적인 프렌치 하우스도 철원과 멋진 조화를 이뤘다. 영국 브라이턴 출신의 여성 펑크 밴드 'Lambrini Girls'도 놀라웠다. 질주하는 펑크를 들려주는 것은 물론, 퀴어 시민과 팔레스타인을 직접 거명하며 연대를 더했다. 이들의 멘트에 맞춰 흔들리던 무지개 깃발과 팔레스타인 국기가 유독 근사했다.

마지막 날 밤 출연한 미셸 자우너가 이끌고 있는 인디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는 3일 동안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었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인 미셸 자우너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얼굴을 들어요 하늘을 보아요 무지개 타고 햇님을 만나러
나와 함께 맞으러 가자 영원한 이곳에 그대와 손잡고
햇님을 보면서 다정히 살리라"

- '햇님(김정미)' 중

미셸 자우너는 폭우 속에서 신보의 수록곡을 포함해 슈게이징과 바로크 팝, 싸이키델릭을 아우르는 음악 세계를 열심히 선보였다. 마지막 곡으로 자우너가 선택한 곡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곡이었다. 1970년대 한국 싸이키델릭을 대표하는 명곡이자,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김정미의 '햇님'이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나라에서, 이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였다. 지난해 한국에서 어학당을 다니며 열심히 단련한 한국어 발음, 그리고 스트링 세션이 포근함을 더 했다. 돗자리가 떠 내려갈만큼의 폭우가 내렸지만, 불평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손을 잡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감히 성스럽고 초현실적인 경험이라 할 만 했다.

선을 긋지 않는 춤판, 지역에는 새 의미를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형성한 분수대 앞 무료 공연장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형성한 분수대 앞 무료 공연장본인 촬영

사흘간 철원에서 만난 관객들은 어떤 음악에도 거리낌이 없다. 프랑스의 전자음악가 Ko Shin Moon처럼 생소한 이름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옆에 있는 누구와도 어울린다. 춤을 재미있게 추는 관객, 잼배를 치는 관객이 있으면 그가 있는 곳이 무대가 된다. '분비자(분수대 + 스페인 이비자)'라는 별칭이 붙은 분수대 앞 무료 공연장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위계없는 무대다. 티켓을 사지 않은, 인근 꽃축제를 구경하러 온 노인도 젊은이들과 댄스 배틀을 하게 된다.

DMZ 피스트레인의 또 다른 가치가 있다면 지역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철원이 낯선 사람들도 고석정과 한탄강의 풍경, 맛집의 멋을 기억하게 된다. 올해는 잔해만 남은 옛 교회에서 민채영의 특별 공연 '죽은 청춘들의 무덤'을 빌어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철원은 매년 반갑고도 새로운 맥락으로 각인된다.

관객들은 이 과정에서 '평화'라는 추상적 개념을 피부로 느낀다. 그것은 어떤 음악이든, 어떤 존재든 이 안에서는 환대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당연하게도 행사장 밖을 나가는 순간, 그다지 호의가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정치적 극단화와 상호 불신은 해가 지날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철원에서 공유한 이 감각이 앞으로의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그래서 이 감각이 더 확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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