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도라이버>에 BTS 진이 출연했다. 왼쪽부터 주우재, 홍진경, 김숙, 진, 주우재, 장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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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0년 11월 1일자로 입사했던 KBS를 2024년 2월 29일 부로 퇴사했다. 이직이 아니었다. 일단 그냥 그만두고 본, 순도 100퍼센트의 퇴사.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15여 년의 세월 사이 나도 변했고, KBS도 변했고, 업계도 변했다.
처자식도 있는 가장의 신분인데 15년 전처럼 이제 다시 내 통장에 단돈 5만 원이라도 꼬박꼬박 넣어 줄 사람은 없다. 자진해서 백수나 마찬가지인 신분으로 돌아갔는데도 20대 시절과 다른 게 있다면, 무섭지 않고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이란 건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설렘이고 그래서 더욱 예능적이다. 다가올 일을 예상할 수 없고, 한편으론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 KBS는 직장으로서 따뜻한 온실 같은 곳이었고 때때로 그 온실이 그립기도 하지만, 온실 문을 열고 나왔더니 생각지 못했던 드넓은 바깥세상이 있었다.
퇴사 후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던 <찐팬구역>(ENA, 2024.04.08. ~ 2024.06.24. 12부작)은 그런 의미에서 '바깥세상'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스튜디오 수파두파'와 '에그이즈커밍'이 공동제작하고 ENA를 통해서 방송되는 구조였는데 그 회사 세 곳의 대표자는 모두 KBS 출신 선배들이었다. O15B 객원보컬처럼 연출PD로 참여한 나까지 포함해 어쩌다 보니 다양한 KBS 출신들이 밖에 나와 헤쳐 모여서 방송시장 전례에 없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KBS 안에 있었다면 밥을 먹는 동료들이 매일 비슷했겠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업계 관계자들 및 다른 세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 새로운 작업을 의논한다. KBS에서는 유관부서에서 해주던 일들을 이젠 혼자서 처리해야 하기에 세무사와 법무사, 컨설턴트 등 세상의 다양한 직업군을 만나게 되고, 다시 그들을 통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바깥세상은 춥고 바람이 불지만, 어찌 됐건 온실보다 확실히 넓다.
지금은 넷플릭스 일일예능 < 도라이버 : 잃어버린 핸들을 찾아서 시즌2 >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 15일에 오픈된 시즌 2는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시즌1>의 후속 작품이이다. KBS에서 만들던 <홍김동전>과 같은 멤버들(김숙·장우영·조세호·주우재·홍진경)로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KBS에 이어 넷플릭스까지, 프로그램이 두 번의 인생을 사는 것 자체도 감사한 일인데, 넷플릭스 TOP10에 오르는 등, 시청자분들이 여전한 응원을 보내주시는 덕에 행복하게 제작 중이다.
<홍김동전> 시절과 다른 점은 KBS에서 연출할 당시 이 프로그램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 정도였지만, 지금은 식솔을 걸고 만드는 생업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KBS에 남아 있었다면 프로그램의 흥망성쇠와 무관하게 꼬박꼬박 월급이 나왔겠지만, 프로그램 폐지가 곧 백수로 이어지는 지금의 삶이 결코 나쁘지 않다. 하루하루가 세상에 대한 배움의 연속이다.
20대 후반에 간절하게 입사를 원할 때도, 40대 초반에 미련 없이 퇴사를 선택할 때도 마음은 같다. 행복하고 싶다는 것.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컨트롤 해서 어떻게든 가장 행복한 길로 진행해야 한다. 철없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20대만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삶은 어떻게든 살아진다. 20대 후반, 9회말 2아웃에 몰린 것 같았던 내가 40대인 여기까지 경기를 끌고 왔듯이.
▲< 도라이버 : 잃어버린 핸들을 찾아서 시즌2 > 포스터.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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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KBS 예능센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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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1,2
KBS [홍김동전]
ENA/채널십오야 [찐팬구역]
NETFLIX [도라이버 :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