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런치스틸컷
엣나인필름
주인공은 중년 사내 윌리엄 리(피터 웰러 분)다. 그는 해충 방역사, 이해를 돕자면 '세스코' 같은 방역업체에서 일하는 일선 업자다. 회사에서 살충약을 받아 해충이 출몰하는 곳으로 가 방역작업을 하는 게 그의 업무다. 농약살포기를 떠올리게 하는 기구를 등에 지고서 해충방역을 하는 그의 모습이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데, 막상 바퀴벌레들이 눈에 보이는 곳으로 튀어나올 즈음엔 약이 떨어져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만다. 통엔 필요한 것보다 훨씬 적은 약이 들어있었다.
어째서 약이 부족했을까. 그 이유를 찾던 윌리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아내 조앤(주디 데이비스 분)이 살충제에 중독돼 있었다. 그녀가 마치 필로폰 류의 마약을 투입하듯, 살충제를 주사기로 제 가슴에 찔러 넣는 광경이 윌리엄의 눈에 띈다. 아니, 세상에 하고 많은 약물을 놔두고 살충제라니. 그것이 마약이 주는 만큼 환각이나 각성, 이완효과는 있는 것인지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채로, 영화는 마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어 내달리기 시작한다.
현실세계와 환상, 도저히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기 어려운 인터존이라는 세계, 그 사이에서 만나는 인간의 말을 하는 벌레들,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는 인물들의 교차가 영화 내내 이어진다. 이 영화 <네이키드 런치>가 도저히 제 정신으로 쓴 이야기라고는 믿기 어려운 가운데, 버로스가 실제로도 약을 빨며 원작을 썼다는 사연이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도록 한다.
크로넨버그는 버로스가 빚은 세계를 무리없이 시각화해 낸다. 인간이 벌레가 되고, 다시 벌레가 인간이 되며, 둘 사이의 경계가 무용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혐오며 평안한 느낌이 어디로부터 유래하는지를 되짚게 되는 건 그의 다른 작품이 천착한 주제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주제이고 효과라고 하겠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살충제에 중독된 윌리엄 스스로가 환각을 보고 사고를 치고 있다 보는 편이 합당한 해석이라고 하겠는데, 과연 그대로 결론을 내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도 쉬이 확신할 수 없다. <네이키드 런치>는 보는 그대로 느껴지는 것, 그 느낌들로부터 깨워지는 감각 그 자체가 줄거리보다도 중요한 효과를 일으키는 작품이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로써 쉬이 포획할 수 없는 의미에도 <네이키드 런치>를 흥미로운 작품이라 말하는 이가 많다는 건, 그대로 크로넨버그의 세계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네이키드 런치포스터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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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