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퍼스트 퓨너럴스틸컷
이은혜
환대받지 못하는 이들이 만든 스스로의 자리
이은혜 감독의 첫 연출작 <마이 퍼스트 퓨너럴>은 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들이 정작 제 장례식에선 환대받지 못하리란 우려로부터 출발한다. 호모포비아의 예식 가운데 여성, 또 성소수자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보여준 뒤 성소수자가 직접 챙기는 장례식의 결행으로까지 이어진다. 성소수자가 놓인 차별이야 한국사회에서 수없이 다뤄져온,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영역이니 그대로 나름의 승부수가 될 수 있겠다.
시작은 역시 사회적 고리다. 한국에서 상주 역할을 할 수 없는 여성, 그중에서도 결혼해 배우자의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없는 레즈비언이 놓인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는 인터뷰로써 드러낸다. 상주의 역할도, 상주의 정식 복장도, 또 운구도 거부당하기 일쑤인 이들의 이야기가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이란 게 아프게 전해진다.
이어 영화는 감독 자신이 직접 제 장례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마치 청첩장을 돌리듯 친구 하나하나에게 장례식 초대장을 전하는 장면, 직접 장례를 준비하며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습까지가 고스란히 이어붙어 마치 한 편의 장례식 메이킹필름을 보는 듯하다.
레즈비언의 장례를 이성애자들의 갇힌 시선 아래 두고 싶지 않다는 저항의 표출, 영화 내내 선명히 느껴지는 감상이 바로 이것이다.
▲마이 퍼스트 퓨너럴스틸컷이은혜
아쉬움과 가치의 선명한 교차
다만 아쉬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레즈비언이 놓인 고난은 영화 내내 오로지 인터뷰로써 비친다. 제 장례식을 현실 장례가 치러지는 절차가 아닌 가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부조리가 드러날 여지 또한 상당부분 상실된다.
무엇보다 장례 그 자체를 가까이서 비추지 않는단 건 아까운 대목이다. 편지를 읽는 친구들, 상주를 맡은 이들, 관 안에 누운 주인공 자신의 모습이 비치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표출되는 감정을 넘어 그 목소리를, 뜻을, 의지를 생생히 전달할 장치를 감독은 얼마 고민하지 않은 듯하다. 여성과 레즈비언이 놓인 부조리함을 선명히 들추거나 전위적 저항에까지 이를 수 있는 순간이 없지 않았을 것이기에 차마 만족한다 평할 수가 없다.
다만 <마이 퍼스트 퓨너럴>의 가치는 기록할 만하다. 어째서 여성은 상주를 할 수 없는가. 왜 여성과 여성 간 가족관계는 맺어질 수 없는가. 인간이 제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자유를 국가며 낡은 문화가 가로막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우리는 어찌하여 아직까지 그대로 놓아두고만 있는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카메라 너머로, 이 영화를 찍고 찍히기로 결정한 이들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건 치이고 다치기만 해온 여린 사람들의 공감대가 분명한 힘을 발하고 있는 덕분일 테다.
그리하여 나는 <마이 퍼스트 퓨너럴>이 여전히 유효한 작품이라 적을 밖에 없다. 한국의 민망한 현실, 그 가운데 놓인 이들의 진심이 적어도 얼마쯤은 담겨 있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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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