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엘리오>는 < 월-E >, <버즈 라이트이어>에 이은 픽사의 세 번째 SF 작품이다. 외계인에게 납치되는 상황이 공포가 아닌 소속감으로 바뀌는 과정을 탐구한다.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칼 세이건의 물음에 따스한 답장이며,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여전히 신호를 보내는 보이저호를 향한 안부 인사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로 불리는 보이저호는 1977년 지구를 떠나 여전히 임무수행 중이다. 혹시라도 외계인을 만날 경우 인류 문명을 소개하는 '골든 레코드(금속판)'를 탑재됐다. 이를 두고 '메리 앨리스 드럼 프로듀서'는 "세티(SETI)의 천문학자 질 타터 박사를 만나 자문하던 중 보이저호와 골든 레코드를 핵심 요소로 지정하게 됐다"고 말했는데, 영화가 끝나면 인류의 존재감과 우주의 위대함 앞에 새삼 겸손해진다.
슬프거나 힘들 때, 혹은 성공에 취해 자만심이 들 때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내레이션을 들으면 저절로 숙연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인류는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먼지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함을 더한다. 작디작은 지구에서 서로를 혐오하고 파괴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깨닫게 한다.
그래서일까. 인트로와 클로징에 수미상관으로 등장하는 칼 세이건의 내레이션은 엘리오의 성장과 관계 깊다. 인트로에서는 프레임 속 엘리오가 작은 점 같아 외로워 보이지만 클로징에서는 클로즈업되어 프레임을 꽉 채우는 모습으로 변한다. 무한한 우주에서 인류는 혼자가 아니라는 공동체적 발상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엘리오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전혀 다른 문화 배경에서 자란 세 감독이 의기투합으로 다져졌다.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와 캐릭터의 개성이 생겼다. '도미 시' 감독은 <엘리멘탈>,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에 참여했고, <메이의 새빨간 비밀>을 연출한 바 있어 엘리오의 정체성과 성장에 기여했다. 토론토에서 유일하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학생으로 자라며 훗날 비슷한 사람을 만날 날만을 고대했던 이방인의 경험이 녹아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매들린 샤라피안' 감독은 <코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의 스토리 아티스트로 참여해 두각을 나타낸 차세대 감독이다. 연출작 단편 <토끼굴>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라 인정받은 바 있다. <엘리오>에서는 고모 올가의 캐릭터 스토리에 어릴 적 군 기지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외톨이였던 자전적 경험을 추가해 관계성을 다졌다. 마지막으로 <코코>의 공동 연출과 각본가로 참여한 '아드리안 몰리나' 감독은 히스패닉 문화와 함께 두 감독과 매끄러운 시너지를 이뤄냈다.
외로움 속에 피어난 연결
▲영화 <엘리오> 스틸컷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사이드 아웃>이 슬픔을 공론화했고, < 인사이드 아웃 2 >가 내면의 불안을 보듬어주었다면 <엘리오>는 외로움을 들춘다. 외모, 언어, 문화 모든 게 다른 상대와 마음을 나누는 다정한 위로가 익숙한 듯 생경하게 다가온다.
먼저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아닌, 고모와 조카 관계로 설정해 새롭다. 가끔 만나는 친척에서 매일 얼굴 보는 가족이 되어버린 두 사람은 시종일관 삐걱댄다. 고모는 준비되지 않은 책임감에 버겁고, 우주인 프로젝트를 포기한다. 이를 오해한 조카는 자신이 고모의 짐이 될 뿐이라며 부담감이 커진다. 충분한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너무 일찍 찾아온 상실은 관심과 이해를 바라는 마음을 엉뚱한 상상력으로 뻗어나게 했다.
픽사는 부정적인 감정도 괜찮다고 말한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고, 아이와 어른 모두 시행착오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아이뿐만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끝나지 않을 고민까지도 어루만진다. 슬픔, 불안, 외로움이란 감정은 애써 떨쳐낼 것이 아닌, 내 것으로 흡수하자는 성숙한 메시지도 전파한다. 외로움과 상실, 고독까지도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마음이 성장 증거 중 하나인 셈이다.
또한 SF 장르 속 외계인의 이미지가 아닌 심해 생물, 접사 촬영한 균 곰팡이 등 미생물에서 영감받은 캐릭터 디자인은 새롭다 못해 독특하다. 커뮤니버스의 외계인들은 유연하고 말랑한 곡선의 이미지를 통해 어디서도 없는 환상적인 비주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초반에는 낯설겠지만 눈에 익으면 귀여움이 커지는 외계 생명체의 사랑스러움은 한도 초과다.
마지막으로 익숙한 듯 새로운 오마주와 패러디를 적극 활용했다. 전형적인 클리셰를 비틀거나 뒤집어 재탄생한 장면을 더해 소소한 재미를 유발한다. 외계인의 신체 강탈을 소재로 한 <신체 강탈자의 침입>(1956), <외계의 침입자>(1978), <더 씽>(1982)으로 공포감을 비트는 유머를 선사한다. 외계인과 만나거나 수신호를 주고받는 <미지와의 조우>(1982), <콘택트>(1997)을 통해 지구별의 인류를 우주에 소개한다. 마지막에 엘리오의 분신이 녹을 때는 < 터미네이터 2 >(1991)가 떠오르는 장엄함을 더하고, <토이스토리>(1995)의 시드와 장난감 장면이 연상되는 시퀀스는 팬 서비스 같다. 가족, 성장, SF, 정체성 등 어느 관점에서 봐도 훌륭한 영화가 관객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까지 인류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거리 두기를 실천해 왔다. 폰 하나만 있어도 언제 어디든지 연결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 함께하지 못했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연했다. 고독, 고립, 외로움은 극도에 달하며 새삼 관계를 재정비할 수 있었다. <엘리오>는 아이의 눈을 통해 다른 존재와의 공감과 이해, 연결을 말한다. 어느 때보다도 혐오가 만연한 때 영화 한 편이 주는 큰 힘을 느껴 보길 바란다. 광활한 우주,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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