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스틸
㈜누리픽쳐스
도대체 난이도 최강 원작을 어떻게 요리했을까 두근거리며 영화의 시작을 기다리던 관객에게 어두컴컴한 극장 스크린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하면, 귓가에 익숙한 배경음악이 들려온다. 1990년대 등장해 불꽃처럼 기성품이 되어버린 주류 대중음악계를 불태운, 혹은 점잔 빼고 연미복 차려입고 침묵하는 객석에 폭탄을 투척하듯 활약한 뒤 자신을 불사르듯 사라진 그룹 너바나의 명곡들이 흐른다. 1950년대 배경 원작에 갑자기 웬 얼터너티브 록이지 하며 당황할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다.
음악감독을 맡아 호흡을 맞춘 트렌트 레즈너의 탁월한 선구안에 이마를 탁하고 쳤다. 왜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윌리엄 버로스의 작품에 이끌리는지, 어떻게 보면 그저 약물 탐닉과 허무주의로 귀결된 시대 현상이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니 말이다. 비트 세대 중 윌리엄 버로스가 상징하던 그룹은 자유 방임주의에 가까웠지만, 그들을 계승한 1960년대 히피 세대는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던 이상을 진화시켜 인권과 반전운동을 통해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들은 사상적 지향으론 어쩌면 결이 달랐을지언정, 바로 직전 세대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낸, 그야말로 둑에 구멍을 터뜨린 효과로 태어난 세대인 것이다.
1990년대 '시애틀 그런지'로 출발해 세계 음악계를 뒤엎은 대변혁의 시대에 전자음악으로 한 축을 담당했던 트렌트 레즈너가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 자신 역시 대서양을 넘나들며 1970-80년대 불씨를 지핀 펑크 음악의 기틀 위에서 피어난 존재니 말이다. 그저 음악적 형식을 넘어 그들이 혁신적인 음악에 담으려던 새로운 변화와 해방의 기운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루카 구아다니노란 소설의 오랜 애독자가 품은 뜻도 같다는 의기투합의 증명이라 하겠다.
1950년대 비트 세대는 10년 후 히피 세대로, 다시 상업적인 무슨 무슨 세대 어쩌구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계승 발전을 이어갔다. 그렇게 앞 세대의 도전과 실패를 딛고, 미지의 영역, 가지 않은 길을 향한 미래 세대의 행진은 중단된 바 없고, 여전히 실험 중이란 메시지다. 즉 단지 배경음악 선정만으로 영화와 작가의 태도를 유추 가능한 셈이다.
그런 찰나들, 뭐라 설명할 순 없는데 끈질기게 따라가다 보면 목격할 수 있는 어떤 장면들이 있다. 리가 입버릇처럼 자신을 설명할 때 쓰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존재, 식물학자가 경고하던 '텔레파시'의 실체, 접하지 않은 세계로 통하는 '문' 같은 상징들이다. 그런 뇌리에 새겨지는 이미지와 형언하기 힘든 결말을 조합하는 공식은 수천, 수만 개가 나와도 모자랄 테다. 창문은 열려 있고 거울은 자신을 비춘다. 모든 모험엔 위험과 대가가 따른다.
그런 사려 깊은 태도와 명확한 구현 의지를 오롯이 (영화 속 리가 갈구하던 것 마냥) 근접하려면,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추상적으로 묘사된 장면과 맥락을 따라잡기 위해 결국에 소설 원작을 읽고, 윌리엄 버로스와 그의 친구들을 추적하는 긴 모험에 발을 들여야 할 노릇이다. <퀴어>는 그렇게 만든 이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지는 영화다.
<작품정보>
퀴어
Queer
2024|이탈리아, 미국|드라마, 로맨스, 시대극
2025.06.20. 개봉|137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드류 스타키 외
원작 윌리엄 S. 버로스 - 소설 《퀴어》
수입/배급 ㈜누리픽쳐스
▲<퀴어> 포스터㈜누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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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