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데스 도그> 스틸컷
영화 <러브 데스 도그> 스틸컷인디그라운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지난 2023년에 열린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의 새로운 선택 부문과 이듬해에 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24 본선 경쟁 섹션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실험영화가 하나 있다. 권동현, 권세정 감독이 연출한 <러브 데스 도그>(2023)라는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에서 인간과 개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두 감독이 자료 조사 과정에서 '전남 해남 우수영의 진돗개'(1914)라는 유리건판 사진을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동물에 관한 아카이브를 마주하게 된 것 자체가 생경했는데, 사진을 찍은 주체와 배경 등을 쫓는 과정에서 찾은 3만 8천여 장의 사진을 정리하고자 생각한 것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일종의 아카이브 영화의 형태로 완성됐다. 과거에 완성된 푸티지 영상과 사진 자료를 기반으로 두 감독이 조사하고 구조화한 내용을 활자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축견단속규칙'이라는 영상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틸 사진과 글로만 채워지고 있고, 그마저도 후반부에 등장하는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를 제외하고는 스틸컷이 전환되는 지점에서의 효과음 정도만 존재할 뿐이다. 아카이브 영화의 근본적인 목적은 산재되어 있는 자료로부터 통일된 하나의 의미를 찾고, 현재로부터 어떤 가치를 획득할 수 있도록 재가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가장 간소하면서도 정확한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02.
"도리이 류조의 조사 기록에 포함된 개가 찍힌 이 유리건판 사진은 마치 평범한 일상의 기록처럼 보인다. 도리이 류조 혹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에 관한 인류학 조사에서 이 개는 어쩌다 사진에 담기게 되었을까?"

1914년 조선인들의 신체를 조사하고 기록했다는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의 이야기에서부터 이 작품의 설명이 시작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당시 일제와 조선총독부는 조선과 일본 민족이 같은 뿌리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혀 내선일체 사상을 강화하고자 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조선의 관습과 풍습, 유물과 지역 풍경, 심지어는 노동과 동물에까지 같은 방식으로 적용해 남긴 것이 유리건판 사진과 같은 사료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첫 번째 물음이 '조선에 관한 인류학 조사 사료에 어떤 이유로 개에 대한 내용과 사진이 담기게 된 것일까?' 하는 부분. 이 질문은 여전히 식민지 상태였던 20여 년 후, 경성제국대학 식물학과 교수 모리 다메조의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선 반도'의 진돗개가 '일본 본토'의 아키타 견과 유전학적으로 연결된다며 도리이 류조의 사상을 이어받아 내선일체를 뒷받침하는 생물학적 근거로 제시한 일이다.

 영화 <러브 데스 도그> 스틸컷
영화 <러브 데스 도그>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3.
"이들의 사진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사물을 동등하게 다루는 듯 보인다. 동등하게 낮은 곳에 위치시킨다."

이제 영화는 이미지와 사상을 연결하며 의미를 확장시켜 나간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조선인들의 인권을 박탈하고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고자 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 개의 위치 또한 함께 복속시키며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의 관계, 인간과 개가 함께 지내는 방식이 정립되었는가를 확인하고자 함이다.

1903년 오사카에서 열린 내국권업박랍회 학술 인류관에서 다른 인종과 함께 조선인 여성 두 명이 전시되고, 1907년의 도쿄권업박람회 수정관에서 학술적 목적과 무관하게 조선인 남녀 한 쌍이 전시된 사실을 근거로 내세우는 것 또한 억압과 전시, 권리의 말살과 박탈과 같은 내용이 분명히 존재했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자료가 될 것이다. (분명히 사료가 존재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시되는 사진 자료 가운데 전시된 조선인의 사진만 유일하게 제외되어 있는 부분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 영상의 구조가 아카이브와 설명의 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동등하게 낮은 곳에 위치시킨다'라는 영화의 표현이 중요하다.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조선인의 자유와 권리는 이미 박탈당한 상황에서 이제 개라는 대상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이 아닌 관리와 사유의 대상이 되어왔는지 보고자 한다.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연결시켜 동일한 단어 위에 위치시킴으로써 몽타주에 내재된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개항기 일본에서 서구의 애완견을 접하면서 일본의 개조차 야만적인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 배경이 시작점이 된다.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광견병을 '문명의 치욕'이라고 여기며 매개가 되는 종(種) 또한 방역과 단속의 대상으로 관리하고자 한 일이다.

04.
1909년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통감부에 의해 공표된 축견단속규칙이나 경무부 위생경찰에 의해 관할된 조선에서의 위생 업무. 1944년 전쟁 막바지에 군복이 부족해지자 군견과 경찰견, 천연기념물을 제외한 모든 개를 헌납 또는 공출받아 가죽을 벗기라는 지시 등은 이제 더 이상 개가 인간과 영역을 공유하는 동물이 아니라 특정 인간에게 귀속되는 대상임을 의미하게 된다. 자유롭게 오가며 그 자체로 존재했던 근대 이전의 동물이 더 이상 아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당시 대다수의 조선인은 일제의 이런 명령과 행위에 단속 자체를 외세의 폭력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불쾌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위생 교육을 강화하고 보건 시설을 확충하며 전쟁 자원으로서 조선총독부의 관리를 받았던 조선인들의 처지와 개라는 종의 영역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다시, 동등하게 낮은 곳에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현시대의 모습. 우리가 개를 소유하고 관리하며, 등록하기까지 하는 문화와 제도에는 그래서 물음이 남는다. 과거 개에 관한 단속 규칙 자체가 개의 존재 조건을 특정 인간의 소유 및 인간의 관점에서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했음에도) 처분할 수 있는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방식이 충분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과거 조선인들이 박물관 안에 전시되는 일이 그저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영화 <러브 데스 도그> 스틸컷
영화 <러브 데스 도그> 스틸컷인디그라운드

어떤 문제 제기는 현재의 규칙이나 제도, 모습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러브 데스 도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작업은 단순히 아카이빙 자료를 펼치고 살피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대상에 의미를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일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의 물음에까지 가닿을 수 있게 만들어서다. 이미 어딘가에 종속되어 있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풀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장면에 일시적으로나마 낯설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덧붙이는 글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유통 배급 환경 개선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는 2025년 3월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4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90편(장편 22편, 단편 68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여덟 번째 큐레이션인 '해체의 생태학'은 6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러브데스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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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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