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챙이> 스틸
봄베씨네, 에이치필름
대책 없이 충돌과 봉합을 반복하던, 이제 세 사람이 뭉친 일행은 틈만 나면 다투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낼 운명이다. 위기와 화해가 순환하듯 연속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호준과 감독의 자존심 싸움은 희진의 개입으로 1차 휴전, 결국엔 영화를 향한 꿈과 열정으로 잠정적인 화해로 향한다. 늘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던 감독이 먼저 손을 내미는 건 대수롭지 않게 보여도 거대한 전환점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공감하는 '첫 마음', 영화를 향한 꿈이 만병통치약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Magic Hour 순간이 찾아온다. 마법 같은 찰나라는 표현은 영화를 보고 나면 충분히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자본주의 시장 질서 안에서 독립영화인의 순정은 어디까지 지킬 수 있을까? 실체를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휴대전화 음성으로만 그 거대한 존재감을 각인하게 만드는 존재들이 있다. 아무리 혼을 바쳐 연기해도, 수명을 갈아 넣을 각오로 연출하고자 해도 그 존재들의 고개 까딱, 손가락 흔들 몇 번이면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질 덧없는 운명 앞에서 세 사람은 각자의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들 각자가 택한 길은 역시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할 성질의 것이다.
아마 <잔챙이>가 개봉하면서 이어질 GV(관객과의 대화)가 무척 재미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통상적인 형태의 토크 말고, 감독과 배우, 제작에 참여한 이들과 그들의 사정을 자기 일처럼 꿰뚫는 이들이 한곳에 모인다면 그야말로 '천일야화'를 써도 모자랄 듯하다. 이 '바닥'에 발을 담근 이라면 구구절절 심금을 울리고, 때로는 자기 경험을 반추하며 미운 상대를 저주하며 몸서리칠 테니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다면 반드시 놓치지 말길 권한다.
무엇보다 감독이 할 말이 산더미일 테다. 크레디트 보면 나오지만 불굴의 의지로 애써 완성한 작고 소박한 영화에 사연이 적을 리 없고, 극중 언급되는 호준에게 과거의 영광이자 현재의 압박이 되고만 그 작품 제목은 바로 <잔챙이> 감독의 꽤 시간이 지난 단편 제목 그대로이니 말이다. 게다가 호준 역의 배우는 실제로도 영화 속 '호사마'처럼 제법 인지도 있는 낚시 유튜브 채널 운영자였으니, 그야말로 영화와 현실이 서로 개입하고 간섭하며 융합하는 장관을 목격할 법하다.
결국엔 '을'들이 서로 내가 조금 더 위라고 하찮게 다투는 우리 일상이 영화판, 그리고 <잔챙이> 속 낚시터로 고스란히 압축된다. 성공하려면 '노력'과 '재능'은 필수, 여기에 '운'과 '타이밍'까지 따라야 한다. 참 살기 힘들다. 저수지의 물고기가 낚시꾼이 유혹하는 떡밥에 달려들듯 우리 삶도 그런 환상을 쫓다 저물어간다. 우리 시대 문화예술인들, 다르게 살기에 도전하는 이들이 주변에서 말려도 포기하지 못하는 어떤 '꿈'과 '떡밥'은 판박이다. 남 눈치 보며 우루루 허깨비 따르듯 내달리기보다 강태공의 인내와 지혜를 배울 필요를 영화는 역설한다. '꿈꾸는 자들'이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만든 영화, 그 자체인 <잔챙이>는 익숙한 함정을 용케 피해가며 진심어린 변주를 기어이 완성한다.
<작품정보>
잔챙이
SMALL FRY
2023|한국|드라마, 블랙코미디, 스포츠
2025.06.18. 개봉|94분|12세 관람가
감독 박중하
각본 박중하, 김호원
프로듀서 김호원
주연 김호원, 임채영, 성환
촬영/음악/편집 박중하
조명 이효길
제작/배급 봄베씨네, 에이치필름
배급 봄베씨네, 에이치필름
2023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김호원), 멕시코 시네테카 개봉지원상
▲<잔챙이> 포스터봄베씨네, 에이치필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