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 한복판. 여느 때처럼 사람들로 분주한 거리에 조용한 극장 하나가 불을 밝힌다. 스산한 조명이 드리운 무대, 그 위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들이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익숙한 공간은 낯선 이야기로 채워졌고, 관객은 침묵의 틈에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연극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6월20일~2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우리 곁에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청소노동자, 전환형 인턴, 산재사고 피해자의 유족, 자영업자까지. '로비'에 모인 이들은 스쳐가는 타인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연극의 대상과 방법이 의기투합해서 의미를 더 했을까.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첫 주차에 수어통역을, 둘째 주차에 음성해설을 제공하는 '예술극장 접근성 제작공연'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무엇보다 이렇게 진행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접하길 바라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것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장치 덕분만은 아니다. 창작자의 시선과 태도, 이야기 안에 스며든 윤리적 고민이 공연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작품의 개막을 일주일 앞둔 지난 14일, 이예본 작가와 강윤지 연출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연극은 무엇을 주목하고 있는가?
▲연극《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6월20일~2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우리 곁에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청소노동자, 전환형 인턴, 산재사고 피해자의 유족, 자영업자까지. ‘로비’에 모인 이들은 스쳐가는 타인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작가는 연극이 지향해야 할 태도이자 출발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산재사고 기사나 유족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느꼈던 공허함, 무지에서 생기는 죄책감의 감정을 덮거나 떨쳐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껴안는 방식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노동의 구체성이다. 청소노동자, 전환형 인턴, 자영업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배경으로 머물지 않는다.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극중 모든 인물은 다시 만날 수 있는 존재로 설계했다.
연극은 단지 시·청각 장애를 고려한 공연을 넘어서 접근성을 공연 전반에 관통시켰다. 강윤지 연출은 "접근성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출발해야 하며, 기획단계에서부터 연습 과정, 무대 디자인 등을 사전에 고려했다"고 말했다. 여기엔 자막디자이너와 청각적 정보를 시각적 정보로 전환하는 데 주력했고, 수어팀과 대사를 번역하는 과정까지 말이다.
작가도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도, 수어 통역의 손짓을 따라가는 관객도 이 이야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단다. 실제로 관객 누구도 뒤쳐지지 않도록 단순한 포용을 넘어 '같이 존재하는 감각'을 관객에게 제안한다.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들
▲시나브로가슴에 구조의 구조(2023, 안무 이재영) 관객과의 대화. 실시간 문자통역과 수어통역이 함께 했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연출은 서사적 태도에 깊이 공감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실제 청소노동자들이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도록 지원하기 위해 관련 기사와 책을 탐독했다. 심지어 노동현장을 직접 찾아서 노동조합 관계자와 마주 앉아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렇듯 작품을 쓰고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끊임없이 '현실'이라는 단어를 되새겼다.
"극장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무대 위의 모든 발화가 가볍지 않기를 바랍니다" (강윤지 연출)
두 제작진은 다양한 현장 자료에 의존하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리서치에 머물지 않도록 유의했다. 작가는 노동지 기자와 노동조합 지회장을 만났을뿐 아니라 관련 저자들의 북토크 현장에도 직접 찾아가 숨겨진 에피소드를 들었다.
"처음엔 이미 극이 구성된 상태에서 인터뷰나 조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오히려 더 구체적인 지점을 묻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이 어느 정도 형성된 이후에 진행한 인터뷰였기에, 구체적으로 인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예본 작가)
연출 역시 '회사가 사라졌다', '현장의 힘',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같은 책들을 함께 읽고 연구하며, 공동의 시선을 만들었다. 특히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함께한 노동조합 관계자를 직접 만나서 극 중 캐릭터들이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조율해나갔다. 이 작품은 기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접근성 공연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창작자들의 인식이었다.
연극이 지향하는 바, 기억에서 실천으로
▲“서울 대학로 한복판. 여느 때처럼 사람들로 분주한 거리에 조용한 극장 하나가 불을 밝힌다. 스산한 조명이 드리운 무대, 그 위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들이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익숙한 공간은 낯선 이야기로 채워졌고, 관객은 침묵의 틈에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작가는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가 단지 하나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고, 관객의 일상에 남아 감각이 이어지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를 쓴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쓰는 행위가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신호가 되면 좋겠어요. 예술가가 현실을 다룰 때 느끼는 책임감에 대해서도 피해자는 지금도 존재하는 현실이고, 이 이야기를 허투루 다룰 수 없다는 무게가 늘 따라붙거든요." (이예본 작가)
지난 낭독극으로 처음 무대를 올렸던 당시에는 최대한 가볍게 표현하려 했던 것과 달리, 지금의 무대는 감정과 분노의 온도차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상처를 다시 헤집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매 순간 있었지만, 그럼에도 머무르고 쓰는 선택을 이어갔다. 그는 인터뷰 중 "그 감정들을 떨쳐내려 하지 않고, 충분히 앓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바라는 건 대단한 변화가 아니다. 단지 이 극장에서 시작된 공감이 관객의 일상에 스며들기를, 누군가의 손을 잡게 하는 용기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잊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강 연출은 "이야기 속의 현실을 좀 더 날카롭게 벼르고 싶다"고 말하고, 이 작가는 "함께 기억하자는 마음이 공연 이후에도 남았으면 한다"고 마음을 드러냈다.
연극은 무대 위에서 우리가 놓쳤던 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 손은 청소노동자의 손일 수도 있고, 어딘가에 있을 나 자신의 손일 수도 있다.
"당신은 오늘, 누군가의 손을 잡았습니까?"
연극이 묻는 질문에 조용히 대답한다.
"당신이 잡지 못한 그 손, 우리는 놓지 않겠습니다."
| 《로비: 기어코 그 손을 잡고》 공연정보 |
기간: 2025년 6월 20일(금)~29일(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132석 규모)
공연 시간: 평일(화~금) 오후 8시 / 주말(토·일) 오후 3시 / 월요일 휴관
소요 시간: 약 90분
관람 등급: 만 7세 이상
티켓: 전석 35,000원
접근성 정보: 전 회차 한국어 자막, 수어 통역 제공 / 휠체어석 구비 /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 도우미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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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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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올린 노동자의 삶 "극장은 현실과 연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