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노시환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다시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
15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한화가 10-5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시즌 41승 1무27패를 기록한 한화는 지난 5월 13일 이후 33일 만에 LG를 끌어내리고 선두로 복귀했다.
한화와 LG의 주말 3연전은 '미리 보는 2025 한국시리즈'로 불릴 만큼 야구 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1위와 2위팀 간 맞대결이고, 3연전 직전까지 양팀의 승차는 0.5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13일 첫 경기가 비로 무산되고, 14일 경기는 연장접전 끝에 2-2 무승부로 끝나면서, 한화 입장에서는 소문난 잔치가 먹을 것 없이 흐지부지되는 듯 했다.
그리고 3연전의 마지막 경기, 한화는 차세대 에이스 문동주를 선발로 올렸으나 3.2이닝 6피안타 4실점으로 크게 흔들리며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강판당했다. 한화는 4회초까지 LG에 0-4로 끌려가며 위기에 몰리는 듯 했다.
침묵하던 한화 타선은 4회말부터 드디어 반격에 나섰다. LG 수비진의 실책이 이어진 틈을 타 단숨에 4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어 5회말에는 노시환의 적시 2루타로 한화가 마침내 5-4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런데 비라는 또다른 변수가 찾아왔다. 갑자기 거세진 빗줄기로 인해 경기가 중단됐다. 자칫 흐름이 꺾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한화 타선의 집중력은 들리지 않았다.
무려 1시간 44분의 기다림 끝에 경기가 재개됐다. 그리고 한화는 5-4 1사 1루에서 재개된 공격에서 채은성과 이도윤, 최재훈, 이원석이 연달아 적시타를 때려내며 점수차를 벌렸다. 4회 4점에 이어 5회에만 5점으로 2이닝 동안에만 9득점의 빅이닝을 만들어낸 한화가 승기를 잡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김경문 감독의 믿음이 통했다
특히 이날 경기의 최대 히어로는 단연 노시환이었다. 5회말 LG 두 번째 투수 이지강을 상대로 좌익선상으로 날아가는 역전 결승 2루타를 날린 데 이어, 8회말에는 정우영을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우중간 솔로 홈런(시즌 13호)까지 터뜨리는 만점 활약을 펼쳤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노시환의 존재감은 돋보였다. 7회초에는 문성주의 까다로운 강습 직선 타구를 잘 잡아내는 등 안정된 수비를 선보였다. 이날 3타수 2안타 2타점 3득점 2볼넷의 맹활약으로 한화의 1위 등극을 이끌었다.
아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노시환은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한화 부동의 4번타자 겸 3루수인 그는 5월 중순 이후 한동안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며 우려를 자아냈다.
4월 타율 3할대(.303)에서 5월에는 2할 6리에 그쳤고, 6월에는 한때 1할대까지 추락할 만큼 타격 침체가 길어졌다. 특히 부진이 정점을 찍은 5월 14일부터 6월 9일까지 23경기에서 타율이 .113에 그쳤다. 이 기간 KBO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급기야 지난 8일 광주 KIA전에서는 수비 실책으로 끝내기 점수를 헌납하며 패배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노시환을 감싸안았다. 김 감독은 "노시환이 잘해줬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잘못한 것 하나 가지고 너무 몰아붙이면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김 감독은" 젊었을 때 야구를 너무 잘해 놓으면 기대치라는 게 붙는다. 노시환이 어렸을 때 홈런왕을 하니까 팬들은 항상 그 정도는 해야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다. 어린 나이에 팀의 주축이 된 노시환은 항상 그런 부담감을 안고 싸워야했다"면서 팬들에게 비난보다 격려와 응원을 당부했다.
그는 수비 실책에 대해서도 별다른 질책을 하지 않았다며 "지금은 책임을 따지기보다 기다려주는 게 더 중요하다. 언젠기 노시환은 다시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김 감독은 변함없이 노시환의 주전 기용을 유지했다.
'1위팀'4번타자'에게 놓인 과제
김 감독의 신뢰에 부응하듯, 노시환은 지난 주를 기점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10일부터 15일까지 5경기 연속 안타를 포함해 19타수 7안타(타율 .368) 2홈런 5타점 4볼넷으로 반등했다. 아직 타격감이 완벽하게 살아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타이밍과 밸런스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노시환의 시즌 타율은 아직 2할 3푼 4리에 불과하지만, 13홈런(공동 4위), 46타점(공동 6위)을 기록해 한화 타자 중에서는 단연 팀내 1위다. 득점권 타율은 .293으로 저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 방씩 때려준 경우가 많았다. 당장 타격감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해도 현재 한화 중심타선에선 노시환의 존재 유무에 따라 상대 마운드에 주는 무게감이 전혀 달라진다. 김 감독이 노시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던 것이다.
노시환은 LG전 승리 직후 "팀이 1위를 해서 가장 기쁘다. 부진이 길었던 만큼 이제 잘할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이 계속 1위를 지킬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 역시 " 4-5회에 타자들이 집중력 있는 플레이를 펼쳐주며 역전에 성공했다.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빅이닝을 만들면서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했다.
한 팀을 이끌어가는 슈퍼스타에게는 명예만큼이나 책임과 부담도 따라붙는다. 노시환 이전에 한화를 대표하는 선배 거포였던 김태균이나 장종훈 같은 레전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김경문 감독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예선 내내 부진하던 이승엽을 끝까지 국가대표팀 4번타자로 밀어붙이는 '믿음의 야구'로 일본전 역전홈런과 금메달의 대반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올해 7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과 26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노리는 한화에게 당장 노시환을 대체할 타자는 없다. 노시환 급의 타자를 외부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그는 이제 리그 꼴찌팀이 아닌 '리그 1위팀의 4번타자'다. 기대치와 압박감을 스스로 극복해내야 하는 현실에 놓였다. 앞으로 남은 경기들은 그가 최고의 타자로 성장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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