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대로 꿈만 같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국내 창작 뮤지컬 중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입성 후 뉴욕 비평가 협회 어워즈부터 토니상까지 3개월가량 시상식 기간을 소화한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역들 말이다. 국내 창작 뮤지컬 사상 첫 토니상, 그것도 최고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비롯 6개 부문을 석권한 박천휴 작가는 "작품을 처음 쓰기 시작한 2014년부터 계속 다듬으며 완성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려 애쓴 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같다"고 털어놨다.
토니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8일 이후 박천휴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온갖 감정이 요동쳤을 시상식 기간을 지난 박천휴 작가는 "수상 이후 한 명의 창작자로서 생활이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며 "지난 10년 동안 긴 마라톤 같았던 서울과 뉴욕에서의 <어쩌면 해피엔딩> 작업 여정을 좀 더 뿌듯하게 마무리한 것 같아 기쁘다"는 소회를 전했다.
"제가 받은 가장 큰 칭찬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의 박천휴 작가.
NHN링크
2015년 초연 이후 해당 작품은 대학로 소극장을 중심으로 국내 관객과 만나왔다. 공동 각본가이자 작곡가 윌 애런슨과 미국 무대 진출을 위한 각색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왔고, 토니상 수상 경험이 있는 마이클 아던이 연출자로 합류하며 2020년 첫 미국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 건 그로부터 4년 뒤였다. 1000석 규모인 뉴욕 벨라스코 시어터에서 공개된 직후 작품은 급속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한국 무대와 규모가 다른 만큼 연출과 무대의 큰 변화가 있었다. 국내 버전은 무대전환이 거의 없었지만, 브로드웨이 버전에선 무대전환이 매우 많다. 배우나 오케스트라 악기 숫자도 늘었고, 암시적으로만 보여줬던 장면을 브로드웨이 공연 때는 직접 묘사하기도 했다. 그 반대로 축약된 대사나 노래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들이었다.
뉴욕에서 먼 도시에 사는 한 미국 관객이 있었다. 혼자 뉴욕에 휴가 와서 10개의 공연을 예매했다더라. <어쩌면 해피엔딩>이 5번째였는데, 보는 내내 집에 있는 아내가 그리웠고 함께 손 잡고 이 공연을 보고 싶었다더라. 그 길로 남은 5개 표를 팔고, 여정을 바꿔 집에 돌아가 아내를 봤다고 하더라. 그리고 발렌타인데이 선물로 아내와 함께 다시 뉴욕에 와서 공연을 봤다고 했다. 제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었다."
해당 관객을 포함, <어쩌면 해피엔딩>의 인기는 작품에 등장하는 반딧불이를 자처해 입소문을 퍼뜨린 관객들이 자발성 덕이었다. 이렇게 강렬하게 관객들 마음을 산 이유가 곧 그가 가장 잘 알고, 친숙한 주변 이야기를 풀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5살 미국 뉴욕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주변인 정서를 체감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윌 애런슨도 유학 시기에 알게된 친구다. 두 사람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작곡과 작사를 함께 하며 17년 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제게 가장 친숙한 세상과 정서를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성인이 되어 미국에 갔기에 아직도 영어를 쓸 때 한국 액센트가 나오곤 한다. 뉴욕에 있으면서 한국인 정체성을 훨씬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 윌과 함께 만든 <일 테노레>의 1930년대, <고스트 베이커리>의 1970년대 배경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겐 친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질감의 세상을, 해외 관객들에겐 낯설지만 묘하게 공감되는 세상을 선보이고 싶었다.
윌을 두고 한국에선 작곡가로 부르지만 미국에선 둘 다 작가(writer)로 호칭한다. 음표와 활자를 구분하지 않고 우린 계속 쓰는 사람들이었다. 제가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함께 이야길 짓고 음악의 정서와 질감을 정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정서가 비슷한 면이 많다. 서로의 예술관을 존경하기도 하고. 그래서 각자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작업한다. 그래서인지 성장도 거의 매 순간 함께하고 있다."
"의미있는 작품 한국 관객에 선보이고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의 박천휴 작가와 공동 집필 및 음악 작업에 참여한 윌 애런슨 작곡가.NHN링크
작가로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됐지만, 그는 변함 없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일 테노레>와 <고스트 베이커리>의 한국 재공연을 추진하고 싶다며 TV 드라마 시리즈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제 연출 데뷔작이었던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처럼 한국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한국 관객분들에게 선보이는 일도 계속하고 싶다. 어떤 이야기,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의지가 계속되는 한 꾸준히 작업하는 창작자이고 싶다. 제 인생에서 서울과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이제 50 대 50이 되어가는데, 두 문화를 오가는 창작자로서 조금은 다른 관점이되, 많은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길 만들고 싶다."
오는 10월 30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박천휴 작가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 초연 10주년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소감과 함께 또다른 한국 창작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길 전했다.
"10주년 공연은 극장이 조금 더 큰 무대로 바뀌면서 시각적인 요소들에 필요한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그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공연장에 맞춰 자연스럽게 작품을 다듬을 것이다. 과거에 함께 했던 배우분들이 이번 무대에 다시 오를 수도 있다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가지고 있다. 지금껏 응원해주신 관객분들에게 행복한 공연이 되도록 애쓰겠다.
사실 공연을 만드는 일은 평균적으로 5년 이상은 걸리는,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긴 시간 매달려야 하는 일이다. 반면, 창작자에 대한 대우는 다른 분야보다 훨씬 취약한 게 현실이다. 빠른 성공을 원한다면 뛰어들기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다. 한국 뮤지컬이 산업화 한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교과서 같은 사례가 충분하지 않기도 하다. 창작진들이 쉽게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진심으로 이야기와 음악을 써서, 진정성 있는 제작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해야 버틸 수 있는 과정같다. 저 또한 계속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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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작품 보고 아내 떠올라..." '어쩌면 해피엔딩' 작가가 꼽은 최고의 칭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