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을 좋아한다. 이 걸출한 작가는 오로지 세상에 그 하나만이 쓸 법한 문장으로, 저만이 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낸다. 고작 100페이지 남짓의 짤막한 책으로 읽는 이를 관통한다. 너무도 담담하게, 슬픔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집어낼 줄 아는 키건의 글이 지금껏 수많은 이를 움직여냈으리라고 확신한다.
모든 좋은 이야기가 좋은 영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지만, 결코 적잖은 좋은 글이 좋은 영화가 되고는 한다. 키건의 소설 또한 마찬가지여서, 여러 제작자가 그녀의 작품을 탐내어 왔다. 세계적 배우인 킬리언 머피도 그중 하나다. 그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감동을 받아 직접 동명 영화를 제작했단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한 이 작품은 좋은 소설이 좋은 영화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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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건의 소설은 유달리 영화와 합이 좋다.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여백을 많이 두기를 택하는 그녀의 글쓰기 방식이 감독의 독자적 해석이 싹틀 여지를 두고 있어서다. 그저 이야기를 영상화하기 급급한 일부 소설 원작 영화와 달리, 키건의 작품은 영상과 연기 등에 있어 새로운 도전의 장을 제공한다. 그녀의 소설이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하도록 이끌 듯이, 감독과 배우에게도 표현의 여지를 충실히 두어서다.
키건 소설의 열풍, 다시 영화로
▲말없는 소녀스틸컷
슈아픽처스
슈아픽처스가 재개봉 배급한 <말없는 소녀>는 키건의 소설 가운데 가장 먼저 영화화된 작품이다. 2023년 개봉 당시 1만 관객을 겨우 넘긴 영화를 2년 만에 다시 배급하기로 결정한 데는, 한국 서점과 극장에서 키건의 작품이 이례적 인기를 구가한 덕이 크다.
앞서 언급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지난해 개봉 당시 관객수 6만 명을 넘어서며 예술영화 흥행선을 여유롭게 넘겼다. 소설 또한 그 인기가 선풍적이어서 출간 이후 베스트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앉은 자리에서 한 권 전부를 뚝딱 읽어낼 수 있는 얇은 분량은 문학은 물론, 글자 자체도 읽기 버거워하는 이가 크게 늘어난 한국 서점가에서 도리어 소구력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때문인지 키건의 전작에 대한 관심 또한 일어나 <맡겨진 소녀>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영화 <말없는 소녀>는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 소설 원제 'foster'는 설정이기도 한 위탁양육을 뜻하는 단어인데, 한국 출간 당시 딱딱한 원제 대신, 보다 문학적이며 친근한 '맡겨진 소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영화 또한 같은 고민을 한 모양으로, 제작진은 제목을 'The Quiet Girl'이라 붙였고, 이를 한국에선 '말없는 소녀'로 번역해 내놓았다. 여기까지가 소설 <맡겨진 소녀>가 영화 <말없는 소녀>가 된 배경이다.
이렇게 잔잔한 영화의 매력
▲말없는 소녀스틸컷
슈아픽처스
<말없는 소녀>는 소설의 걸음을 그대로 따라 밟는다. 주인공인 소녀 코오트(캐서린 클린치 분)가 여름방학 동안 어머니의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져 나는 한 철을 다루었다. 영화는 소녀가 가족들과 보내는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데, 단 몇 장면만으로도 소녀의 집안사정이며 처한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세심한 연출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코오트는 다섯 자매 중 넷째 딸이다. 엄마는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인데 자식들 뒤치다꺼리를 하랴 집안일을 하랴 몸 하나가 부족한 삶을 산다. 자연히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 곳곳에 생겨나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영화는 어느 날 아침 풍경을 비추며 시작하는데, 다른 자매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코오트의 모습을, 또 런닝만 거친 아버지의 등장과 함께 아이들이 아무도 입을 벙긋하지 않는 광경을 보여준다. 그날따라 엄마는 점심 도시락을 잊은 듯, 아이들은 빈 도시락통에 마른 빵 몇 조각만 챙겨 학교로 향한다.
열 살쯤이나 되었을까 싶은 코오트다. 말수 적은 이 아이는 따로 친구도 없는 듯, 애들이 다 먹고 자리를 비운 교실에서 홀로 남아 점심을 먹는다. 마른빵에 목이 마른 듯 옆자리를 가만히 보던 코오트가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다른 이의 컵과 우유를 집어 따라 마시려 한다. 그때 마침 나타나 부주의하게 코오트의 책상을 치고 지나는 아이가 있고, 우유는 그대로 엎질러져 소녀의 옷을 적신다.
영화는 이와 같이 단 몇 장면 만으로 코오트가 놓인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부모의 관심이 닿지 않는 일상, 풍족하지 못한 환경 같은 것들이 주절주절 설명 없이 몇 개의 장면으로 효과적으로 다가든다. 키건의 장기이기도 한 이 같은 묘사가 영상으로 더욱 그 힘을 발하는 와중,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녀는 아버지의 차에 태워져 먼 친척에게 보내진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알지 못하는 코오트는 태어나 단 한 번, 그마저도 제게는 기억 없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낯선 부부에게 맡겨진다. 이곳에서 다정한 아줌마와 제게 곁을 주지 않는 아저씨 사이에서 돌아갈 기약 없는 나날을 지내게 되는 것이다. 앞서 그러했듯, 영화는 이번에도 일상 속 순간을 세심한 관심으로 포착하여 코오트와 그녀를 맡은 부부의 관계를, 그 아래 자리한 감정과 사연을 차츰 한 꺼풀씩 벗겨가며 풀어낸다.
거창하지도 희망차지도 않다, 다만 진실할 뿐
▲말없는 소녀스틸컷슈아픽처스
<말없는 소녀>는 거창하진 않지만 진솔한 영화다.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소소한 이야기임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를 드러낸다. 보살핌 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그들에게 주어져 마땅한 애정에 대하여, 어른들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이 영화가 말한다. <말없는 소녀>는 그대로 아이의 성장기인 동시에 코오트를 맡은 부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과 맺는 관계와 그 아래 깃든 감정, 교감하고 극복하는 이야기가 하나하나 처연하고 아름답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일찍이 어떠한 아름다움도 피어난 적 없는 황무지에서 태동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듯, <말없는 소녀> 또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필요했을 귀한 것의 태어남을 보인다.
다만 이 영화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반드시 다가설 고난과 추락을 앞둔 채 끝을 맺었듯이, <말없는 소녀> 또한 필연적 상실과 단절을 예비하고 있다. 소녀가 여름방학 동안 먼 친척에게 맡겨져 아름다운 한 철을 지냈다 해도, 그 부모며 제 집이 처한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 또한 가장 아름다운 순간 끝을 맺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 아름다움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얼마 버텨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코오트의 한 때는 문학적이고 영화적인 이례적 한 때란 것을,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다는 것을 독자, 또 관객에게 알도록 하는 것, 어쩌면 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는 바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말없는 소녀>가 아름다운 이야기인 건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진실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숱한 부조리한 상황들, 방치되는 아이와 방임하고 학대하는 어른들이 존재한다 해도, 가끔은 그를 구하려는 노력이 있는 것이다. 코오트가 먼 친척 부부에게 받은 애정과 가르침은 아이를 전보다 나은 존재로 만든다. 그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맺어진 관계, 일어난 감정, 또 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먼 친척 부부에게도 마찬가지, 그들에게 코오트가 전한 마음 또한 그러하다.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이 세상의 못된 것들 사이에서 그래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건, 좋은 건 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희미한 믿음뿐이 아닐까. 나는 그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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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말수 적은 넷째 딸의 삶, 모든 아이가 사랑받아야 하는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