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66일> 스틸컷
영화 <366일> 스틸컷(주)디스테이션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도쿄에 있는 이 사람에게 이걸 전해주고 와."

미우(카미시라이시 모카 분)의 생일은 4년마다 한 번 돌아온다. 2월 29일, 윤년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날에 태어났기에 어떤 누구의 생일보다 더 기뻐해야 하지만 그녀는 지금 파리한 얼굴로 고향인 오키나와의 호스티스 병실에 머물고 있다. 현재의 시설로 옮겨질 때까지만 해도 이번 생일은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준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남편 류세이(나카지마 유토)와 딸 히마리(이나가키 쿠루미 분)는 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다시 또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다음 생일은 맞을 수 있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딸에게 엄마의 생일을 특별하게 축하해주자고 제안한다.

신조 다케히코 감독의 신작 < 366일 >은 20년이라는 시간을 가로질러 중단된 시간과 관계 속에서 사랑이 어떻게 기억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이다. 극의 중심이 되는 것은 병원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가까워지는 미우와 미나토(아카소 에이지 분)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을 큰 틀로, 2003년 오키나와에서 시작된 관계의 시작부터 현재로 거슬러 올라오는 형식으로 그려진다. <너를 사랑하고 있어>(2006),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2010), <깨끗하고 연약한>(2014) 등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순애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청춘 멜로를 만들어 온 감독의 스타일을 이번 작품 속에서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다.

02.
첫 장편 영화였던 <너를 사랑하고 있어>에서 카메라가 극의 메타포로 활용되었던 것처럼 신조 다케히코 감독은 작품마다 하나 이상의 중요한 물성 혹은 장치를 마련해 두는 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윤년마다 돌아오는 2월 29일, 타이틀로도 활용되고 있는 366번째 날과 MD 플레이어가(Mini__Dist Player, 이하 MD) 두 인물 사이를 잇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당연하게도 두 설정은 모두 감정의 환기를 더 애틋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366일은 4년마다 한 번 돌아온다는 점과 때마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MD라는 물성은 직접 녹음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다.

두 매개는 활용적 측면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쓰이는 모습이다. 미우의 생일, 미나토의 졸업식, 두 사람이 정식으로 교제하게 되는 날, 그리고 각자의 마지막 MD를 제작하는 날까지 극의 중요한 순간은 대부분 366일의 날로 설정되고 있다. (4년에 한 번 돌아올 뿐인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 MD의 경우에는 실제로도 1992년 일본의 소니(Sony)가 카세트테이프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제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실질적인 활용은 줄었겠으나, 시대적 상황을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극 중 두 인물의 공통된 서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으로도 보인다.

 영화 <366일> 스틸컷
영화 <366일> 스틸컷(주)디스테이션

03.
"지금의 일상을 지키는 것도 내겐 중요한 일이야."

서사에 중심을 두자면 이 작품은 크게 네 지점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막은 미우(1학년)와 미나토(3학년)의 만남이 시작되고 먼저 도쿄로 진학하게 되는 그로 인해 잠시 헤어지게 되는 지점까지가 해당되고, 2막에서는 2년 후 그를 따라 같은 대학에 입학하며 두 사람이 함께 동거하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방적인 이별을 선언하는 미나토와 그와 헤어진 미우가 고향인 오키나와로 돌아오게 되기까지가 3막. 마지막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마지막 4막에 해당한다.

조금 장황하지만 이렇게 굳이 4막으로 나눠본 이유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생애 주기와 닮아 있다고 여겨져서다.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 자체가 사랑의 여러 지점에 대한 것임은 분명 틀림이 없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시간선마저 분주하게 옮겨가며 인물들이 가지게 될 각자의 입장 또한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정형된 하나의 커다란 막(Act) 각각은 만남 – 사랑 – 이별 – 후애(後愛)의 과정에 속하며 극의 전체 내용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처럼 구조화하고 있다.

04.
"나는 이제 너와 함께 있을 수 없어. 헤어지자."

지난 작품들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애틋함을 유발해 왔던 신조 다케히코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인물 사이의 인지 차를 활용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의 거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이별을 통보하는 미나토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혼자가 되는 미유의 관계가 해당된다. 미나토의 이별 사유는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시간으로도 한참 이후에나 제시된다.

인물이 처음 태도를 바꾸는 지점에서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또한 이러한 형식 때문이다. 이 공백은 잠시 감춰져 있던 진실을 두 인물 사이의 인지 사이에 홀딩(Holding)시킴으로써 이별을 통해 일으켜지는 슬픔이나 비애와 같은 감정을 최대한으로 고조시키게 된다. 다소 고전적이라 할 수 있으나 이미 많은 작품에서 그 효과만큼은 검증이 된 방식이기도 하다.

의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극 중 두 인물인 미나토와 미유가 사실 많은 부분 닮은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가 한참 진행되고 난 뒤에야 눈에 보이는 부분이기도 한데, 두 사람은 성격은 물론 행위적으로도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다. 처음은 미나토의 졸업식에서 서로를 찾아갔다가 타인과 함께인 장면을 보고 조용히 돌아서던 두 번의 장면이다. 각자의 곁에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인물을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둔감함도 그렇다. (미유에게는 소꿉친구 류세이가 있고 미나토에게는 대학 동문인 카스미(타마시로 티마 분)가 있다.)

관계의 마지막 자리에서 결정적인 내용을 상대에게 말하지 않는 모습은 또 어떻고. 심지어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같은 날 상대방을 위한 MD를 녹음하게 되는 점까지도 마주하도록 설계된다. 이런 부분을 두고 쉽게는 운명이라고도 부르곤 하지만, 어쩐지 이 영화 속에서만큼은 그만큼 닮아 있는 두 사람이 서로 같은 극이어서 끝내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자석과도 같은 모습처럼 여겨진다. 이 차이는 관계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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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단순히 두 인물이 사랑 외에도 서브플롯을 잘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꽤 여러 지점의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아가는 일과 개인의 꿈을 실현시키는 일 사이의 고민(미우), 자신의 병을 알리고 연인을 곁에 두는 일과 투병 사실을 감추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헤어져 주는 일(미나토)에 대한 고민이 여기에 속한다. 미우의 소꿉친구인 류세이에게도 고민 하나가 놓이는데,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까지 친구라는 기존의 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그렇지 않고 계속 친구의 자리를 지켜줄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물론 외사랑의 경우다.

그중 가장 깊이 있게 다뤄지는 것은 아무래도 미나토가 가지게 되는 딜레마다. 그는 영화 초반부에서 어머니의 오랜 투병 생활을 지키며 자신의 꿈인 검도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 시간이 얼마나 어둡고 짙은 슬픔과 절망에 해당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자 미유에게 알리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두 사람은 이제 완전히 다른,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06.
"당신이 선택한 길이 늘 행복하길 바랄게."

다시 현재로 돌아온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딸 히마리를 통해 미유의 마지막 생일이 어떻게 채워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액자 속에서 그려졌던 두 사람의 관계와 곁에서 진심을 당해 자리를 지켜왔던 류세이의 서사가 갈무리되는 자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이해와 용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점과 그중에서도 특히 미우라는 인물이 사랑의 상실을 스스로 통과하며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 366일 >에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면 그건 거짓이 아닐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마저 드는 평범함이 시대에 조금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신조 다케히코 감독의 작품을 오래 지켜봐 온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그동안 그가 만들어 왔던 청춘 로맨스 물의 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풍광과 두 인물의 사랑을 오롯이 꺼내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한 감정선은 충분한 공력이 주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구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다소 구태의연하더라도 세대가 지나도 변치 않는 로맨스의 정수와도 같은 것.
영화 366일 신조타케히코 아카소에이지 카미시라이시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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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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