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66일>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03.
"지금의 일상을 지키는 것도 내겐 중요한 일이야."
서사에 중심을 두자면 이 작품은 크게 네 지점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막은 미우(1학년)와 미나토(3학년)의 만남이 시작되고 먼저 도쿄로 진학하게 되는 그로 인해 잠시 헤어지게 되는 지점까지가 해당되고, 2막에서는 2년 후 그를 따라 같은 대학에 입학하며 두 사람이 함께 동거하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방적인 이별을 선언하는 미나토와 그와 헤어진 미우가 고향인 오키나와로 돌아오게 되기까지가 3막. 마지막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마지막 4막에 해당한다.
조금 장황하지만 이렇게 굳이 4막으로 나눠본 이유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생애 주기와 닮아 있다고 여겨져서다.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 자체가 사랑의 여러 지점에 대한 것임은 분명 틀림이 없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시간선마저 분주하게 옮겨가며 인물들이 가지게 될 각자의 입장 또한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정형된 하나의 커다란 막(Act) 각각은 만남 – 사랑 – 이별 – 후애(後愛)의 과정에 속하며 극의 전체 내용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처럼 구조화하고 있다.
04.
"나는 이제 너와 함께 있을 수 없어. 헤어지자."
지난 작품들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애틋함을 유발해 왔던 신조 다케히코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인물 사이의 인지 차를 활용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의 거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이별을 통보하는 미나토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혼자가 되는 미유의 관계가 해당된다. 미나토의 이별 사유는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시간으로도 한참 이후에나 제시된다.
인물이 처음 태도를 바꾸는 지점에서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또한 이러한 형식 때문이다. 이 공백은 잠시 감춰져 있던 진실을 두 인물 사이의 인지 사이에 홀딩(Holding)시킴으로써 이별을 통해 일으켜지는 슬픔이나 비애와 같은 감정을 최대한으로 고조시키게 된다. 다소 고전적이라 할 수 있으나 이미 많은 작품에서 그 효과만큼은 검증이 된 방식이기도 하다.
의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극 중 두 인물인 미나토와 미유가 사실 많은 부분 닮은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가 한참 진행되고 난 뒤에야 눈에 보이는 부분이기도 한데, 두 사람은 성격은 물론 행위적으로도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다. 처음은 미나토의 졸업식에서 서로를 찾아갔다가 타인과 함께인 장면을 보고 조용히 돌아서던 두 번의 장면이다. 각자의 곁에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인물을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둔감함도 그렇다. (미유에게는 소꿉친구 류세이가 있고 미나토에게는 대학 동문인 카스미(타마시로 티마 분)가 있다.)
관계의 마지막 자리에서 결정적인 내용을 상대에게 말하지 않는 모습은 또 어떻고. 심지어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같은 날 상대방을 위한 MD를 녹음하게 되는 점까지도 마주하도록 설계된다. 이런 부분을 두고 쉽게는 운명이라고도 부르곤 하지만, 어쩐지 이 영화 속에서만큼은 그만큼 닮아 있는 두 사람이 서로 같은 극이어서 끝내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자석과도 같은 모습처럼 여겨진다. 이 차이는 관계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같다.
▲영화 <366일> 스틸컷(주)디스테이션
05.
단순히 두 인물이 사랑 외에도 서브플롯을 잘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꽤 여러 지점의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아가는 일과 개인의 꿈을 실현시키는 일 사이의 고민(미우), 자신의 병을 알리고 연인을 곁에 두는 일과 투병 사실을 감추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헤어져 주는 일(미나토)에 대한 고민이 여기에 속한다. 미우의 소꿉친구인 류세이에게도 고민 하나가 놓이는데,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까지 친구라는 기존의 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그렇지 않고 계속 친구의 자리를 지켜줄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물론 외사랑의 경우다.
그중 가장 깊이 있게 다뤄지는 것은 아무래도 미나토가 가지게 되는 딜레마다. 그는 영화 초반부에서 어머니의 오랜 투병 생활을 지키며 자신의 꿈인 검도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 시간이 얼마나 어둡고 짙은 슬픔과 절망에 해당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자 미유에게 알리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두 사람은 이제 완전히 다른,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06.
"당신이 선택한 길이 늘 행복하길 바랄게."
다시 현재로 돌아온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딸 히마리를 통해 미유의 마지막 생일이 어떻게 채워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액자 속에서 그려졌던 두 사람의 관계와 곁에서 진심을 당해 자리를 지켜왔던 류세이의 서사가 갈무리되는 자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이해와 용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점과 그중에서도 특히 미우라는 인물이 사랑의 상실을 스스로 통과하며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 366일 >에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면 그건 거짓이 아닐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마저 드는 평범함이 시대에 조금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신조 다케히코 감독의 작품을 오래 지켜봐 온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그동안 그가 만들어 왔던 청춘 로맨스 물의 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풍광과 두 인물의 사랑을 오롯이 꺼내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한 감정선은 충분한 공력이 주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구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다소 구태의연하더라도 세대가 지나도 변치 않는 로맨스의 정수와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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