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MVP 출신 두경민이 사실상 은퇴 위기에 몰렸다. 지난 시즌 두경민의 소속팀인 경남 창원 LG 세이커스는 최근 KBL(한국농구연맹)에 가드 두경민의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
두경민은 웨이버 공시 후 2주 간인 오는 23일 오후 6시까지 다른 팀의 영입 의향서를 받지 못하면 다시 원소속 구단인 LG와 거취를 협의해야 한다. 만일 두경민을 원하는 팀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이대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두경민은 2010년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듀얼가드 중 한 명이다. 대학시절 동기인 김종규(안양 정관장)-김민구(은퇴)와 경희대 '빅3'로 명성을 떨치며 대학농구를 석권했다. 2013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전체 3번으로 원주 DB에 지명되어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정점이었던 2017-2018시즌에는 커리어하이인 16.4점 3.8어시스트를 올리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까지 수상했다. 이는 신인드래프트 당시 두경민보다 지명순위가 높았던 경희대 빅3 동기 김종규(1순위)와 김민구(2순위)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후 두경민의 농구인생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2021년 트레이드를 통해 대구 한국가스공사로 이적했으나 1년 만에 DB로 다시 복귀했다. DB 2기에서는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며 서서히 주전경쟁에서 밀려났다. 2023-24시즌을 마치고 두경민은 DB에 트레이드를 요청하고, 이관희(현 서울 삼성)와 유니폼을 맞바꾸며 창원 LG로 이적했다.
그러나 창원에서도 두경민은 좀처럼 팀에 녹아들지 못했다. LG는 우승을 위한 퍼즐로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두경민을 영입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꾸준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24-25시즌 두경민은 정규리그 14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15분24초를 뛰면서 6.9득점 3.1어시스트에 그쳤다.
급기야 4강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아예 전력에서 배제됐다. 정작 LG는 두경민이 자리를 비우는 기간동안, 영건 양준석이 크게 성장하며 주전 가드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또한 챔피언결정전에서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정규리그 1위 SK를 격침시키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며 두경민의 빈 자리를 무색케 했다.
두경민은 KBL 정규리그 통산 351경기 평균 11.9점 3.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올해 34세로 어느덧 베테랑이 됐지만, 아직 노쇠화를 걱정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다. 리그에는 동기 김종규를 비롯해 김선형, 이정현, 이관희 등 두경민보다 더 나이가 많음에도 여전히 팀의 주축으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도 많다. 그런데 정규리그 MVP 경력까지 지닌 두경민이 이른 나이에 '저니맨'으로 전락하며 은퇴 기로에까지 내몰린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특이하게도 두경민은 실력 문제보다 경기 외적으로 구설수에 휘말린 경우가 유독 많았다. 개성이 강하거나 기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선수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지만, 두경민처럼 그야말로 가는 팀마다 트러블에 휩싸인 경우는 한국 선수 중에선 정말로 드물다.
MVP를 차지했던 2017-18시즌에는 당시 이상범 감독 및 팀원과의 불화설, 스포츠계 관행에 어긋난 플레이오프 기간 중 결혼식 추진, 경기 중 태업 의혹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이상범 감독은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던 두경민을 한동안 전력에서 배제하는 강수까지 두면서 "두경민이 팀분위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선수 한 명보다는 팀이 더 중요하다"며 간접적으로 두경민을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두경민은 팀에 사과하고 백의종군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2021-22시즌 가스공사 시절에는 외국인 선수 앤드류 니콜슨(현 서울 삼성)과의 불화설이 주목받았다. 당시 두 선수는 경기중 공개적으로 날카롭게 언쟁을 벌였고, 두경민이 니콜슨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도 패스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몇 년 뒤 니콜슨은 한 인터뷰를 통해 두경민을 언급하며 당시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니콜슨은 "한국 선수들은 다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 그런데 두경민만 달랐다. 지금도 그때 나한테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 경기를 하다보면 동료들 간에 마찰이 있기도 하지만 두경민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면서 사실상 불화가 심각했었음을 털어놓았다.
이후 원주 DB 2기와 창원 LG 시절에도 두경민은 농구관과 역할 문제를 놓고 코칭스태프와 지속적으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LG 이적 직후 원주 원정 경기에서는 두경민이 공을 잡을 때마다 DB 팬들로부터 엄청난 야유를 듣기도 했다. DB 팬들은 팀과 갈등을 빚으며 좋지 않은 모양새로 떠난 두경민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조상현 LG 감독은 야심차게 영입한 두경민이 점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기여도가 떨어지자, 지난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과감하게 두경민의 엔트리 제외를 결정했다. 당시 조 감독은 "두경민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열심히 준비를 잘하고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고 뼈있는 언급을 남기기도 했다.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아예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두경민은 벤치에서도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일찌감치 선수단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후에도 두경민과 LG 사이에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양측은 결국 웨이버 공시 형식을 통해 불과 1년 만에 결별하게 됐다.
현재 두경민의 향후 거취는 불투명하다. 가뜩이나 최근 몇년간 부상이 잦았던데다가, 베테랑임에도 팀워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자주 물의를 일으켰던 선수를 선뜻 원할 만한 구단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하필 올시즌 이적시장에서 '가드 대이동'이 워낙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다음 시즌 전력보강을 노리는 하위권 팀들도 이미 가드 자원은 대부분 넘쳐나는 상황이라는 것도 새 팀을 찾기에 불리한 대목이다.
친정팀 LG 역시 이미 지난 시즌 챔피언의 한을 풀며 젊은 선수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상황이라 굳이 두경민이 다시 돌아갈 자리가 없다. 다음 시즌 선수 등록 마감일은 오는 30일까지다. 트러블메이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반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과연 위기의 두경민에게 명예회복을 위한 라스트 찬스는 주어질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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