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스틸
미디어나무㈜
하지만 엄연히 대마초 합법화 논쟁은 '소수의견'에 그친다. 영화에 등장해 인터뷰를 진행한 이 상당수가 전과 후로 실정법 규제에 법정과 감옥 신세를 진다. 어떤 이는 지금도 영어의 몸이, 어떤 이는 지쳐 한국을 떠나기도 한다. '마약과의 전쟁'이 더는 먼 외국 문제, 할리우드 영화 단골 소재로만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 피부로 와 닿는 재앙이 된 실정에서 대마초 비범죄화/합법화는 요원하게만 다가온다.
물론 대마초 관련 논쟁은 일단 결정이 이뤄질 경우, 그 효과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원래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심사숙고가 필요한 문제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숱하게 볼 수 있듯, 반대 여론 역시 근거와 사례를 차고 넘치도록 갖춘 상태다. 대마초만 왜 유독 합법화가 되어야 하는지, 대마초와 유사한 중독성 약한 천연 재료도 전부 허용되어야 하는지 논점은 방대하기만 하다.
영화에선 약물로서의 대마초를 긍정하고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활동하는 개인과 단체의 활동은 물론, 전통적으로 '삼'이라 불리며 유용한 작물로 활용하던 전통 복원론자, 남북간 긴장 완화를 위한 평화운동 입장에서 조성에 많은 품과 시간이 소요되는 식림의 대안으로 대마초를 남북한 공히 활용하자는 의견, 심지어 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촌 산업 활성화라는 경제적 요건에 주목한 동향까지 폭넓게 소개된다. 그러다 보니 미리 쟁점에 관해 입장을 갖지 못한 관객은 한꺼번에 쏟아지는 정보량 때문에 다소 정리에 시간이 걸릴 수 있겠다.
물론 <풀>은 어떤 시사쟁점에 관해 결론을 내려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일방적으로 정부에 의해, 거창하게는 '체제'의 입장에서 배제시킨 대마초에 최소한의 변론 기회를 제시한 것에 가깝다고 보면 볼 테다. 어떤 주장은 과도한 논리 비약으로, 혹은 정치적 의도로 대마초의 가능성만 과대평가한 것으로 보일 구석도 엿보인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 왔던, 한국 사회의 과도한 중앙집권적 편향과 주입식 이데올로기에 대한 '막대 구부리기'로서 <풀>은 '용감한 영화'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준비를 마치고 관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자극적인 표현이나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극장 개봉작 중 드물게 이 다큐멘터리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으로 개봉예정이다. 우리에겐 이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국가의 통제가 그림자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언뜻 과장으로 보이던 대마초 금지의 진짜 의도란 주장, 시민을 자원으로 보고 통제하던 체제 속성을 곱씹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작품정보>
풀
Pull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5.06.18. 개봉|89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이수정
출연 권용현, 천호균, 보리, 이명현, 강병석, 빌스택스, 김도
배급 미디어나무㈜
제작·공동배급 생의 한가운데
▲<풀> 포스터미디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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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