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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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종이책이 약 8만 종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 책들을 모두 선택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접할 수가 없다. 계속 기다려야 하고, 그 기다림도 헛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오디오북을 만들면서도,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즐긴 책이 '아무도 관심없는 책이 아니기를' 바랐다. 비장애인인 독자들도 '좋아하는 책을 먼저 들었다'는 뿌듯함이 있어야 '듣는 소설' 프로젝트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 앞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1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아래 <유퀴즈>)에서는 출판사 대표로 돌아온 '글맛 아는 배우' 박정민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동주>, <밀수> 등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박정민은, 최근 출판사 대표로 변신한 근황을 전했다. 최근 들어 박정민이 '연기활동 중단'을 선언했다는 소식까지 나오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정작 박정민은 "제 입에서 '중단'이니 '안식년'이니, 이런 단어가 나온 적이 없다. '한 1년 쉬려고요'라고 했을 뿐인데 '돌연 중단', '은퇴'라는 오보가 나오더라"면서 "그때 연예기사 1등 했다. 주변에서도 놀라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한다. 황정민 선배도 '쉬지 마'라고 하더라. 저는 아무 일 없다. 그저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박정민은 왜 갑자기 연기활동 휴식을 결정했을까.

"어느 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제가 너무 기시감이 드는 표정을 짓고 있더라. '어디 영화에서 본 표정인데?' 너무 갑작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한테 더 나올 게 없는 건가? 왜 내가 일상에서 영화에서의 표정을 짓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하는 나'의 얼굴을, 우연히 일상에서 마주한 그 1분의 순간이 박정민에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절치부심한 다음에 다시 시작해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박정민은 잠시 연기 활동에 쉼표를 선언했다.

출판사 대표 박정민의 고민

하지만 안식년이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박정민은 배우 활동만 잠시 중단했을 뿐, 출판사 대표 업무부터 유튜브 출연까지 오히려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박정민은 "제가 한 회사의 대표로 작가님의 작품도 홍보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로 제안이 들어오는 건 다 해보고 있다"며 "<유퀴즈> 출연에 맞춰 신간 인쇄를 늘렸다. 서점에도 제가 <유퀴즈>에 나간다는 소식을 알리며 책이 몇 부 더 나갈 것 같은지 문의했다. 너무 궁색한데 어쩔 수 없다"며 출판사 대표 역할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박정민은 2019년 자신의 집에서 동네 책방을 열면서 책과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다. 서울에 처음 집을 매매한 박정민은 문득 '동네 사람들이 언제든 와서 읽을 수 있게 책을 깔아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책방을 열게 됐다.

하지만 그때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진열도 하고 추천도 해야 하는 책방 사장님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면서 "이걸 부업으로 한다는 게 기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후 책방을 접고 본격적으로 출판사 '무제'를 개설하게 된다.

출판사 이름을 하필 '무제'(제목없음)로 지은 이유에 대해 박정민은 "자꾸 뭔가 의미를 넣으려고 하니까 간지럽더라. 마침 같은 이름의 출판사가 없었다"며 "주변에서는 출판사 이름 좀 바꾸라고 이야기한다. 유튜브에 치면 지드래곤의 노래 '무제'만 뜬다"고 했다.

한편 박정민은 최근 출판업계의 고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저희 출판사에서 이번에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하루에 얼마나 나갔는지 확인해보니 전국에서 300-500부밖에 안됐더라. 영화에서는 하루에 300명 본 거면 완전 박살났다고 하는데, 책 시장이 진짜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박정민은 출판사 대표로 배우 시절보다 오히려 더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출근해 하루종일 컴퓨터를 하고 다른 업체들과 업무전화를 주고 받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가 있다고.

처음엔 혼자 시작했던 박정민은 생각보다 엄청난 업무량을 깨닫고 부랴부랴 직원 한 명을 이사로 섭외해 현재 2인 출판사로 운영중이다. 공교롭게도 대표인 박정민과 이사 모두 출판사를 다녀본 적이 없는 초보 출판러였다. 박정민은 "서로 하겠지 하고 둘이서 미루다가 누락된 업무가 너무 많다"며 웃음을 지었다.

무제의 세번째 신간인 소설 <첫 여름 완주>는 김금희 작가의 작품으로, 특이하게도 '듣는 소설'을 표방하며 종이책이나 전자책보다 오디오북을 먼저 제작했다. 이는 박정민이 아버지와 같이 눈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시각장애인 분들은 베스트셀러 소식을 듣고 기다리시는데, 그 책이 오디오북으로 나올지 안나올지도 불확실하다. 그래서 오디오북을 먼저 들려드리면 그분들을 위한 선물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박정민은 작가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취지를 설명했고, 김금희 작가도 흔쾌히 수락했다. 또한 염정아, 최양락 등 선후배 연예인 15명도 '재능기부'로 오디오북에 함께 참여해줬다.

소외된 것을 위하여

박정민이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것과, 오디오북을 통한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모두 아버지에게서 비롯됐다. 박정민의 아버지는 원래 시력에 장애가 있었다. 최근에는 안타까운 사고로 하필 눈을 다치며 그나마 남아있던 시력마저 완전히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영화 촬영 중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박정민은 "아버지가 속상해하는 걸 보면서 제가 더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한편으로 아버지의 모습은 박정민에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됐다. "예전에는 '나는 장애인의 아들이야'라는 아주 못된 동정 같은 게 제 자신에게 있었던 것 같다. 정작 한평생 불편하게 살았던 건 우리 아버지인데. 제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게 너무 수치스럽고 꼴보기 싫었다."

깨달음을 얻은 박정민은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무언가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고. 책을 읽을 수 없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자기가 만든 책을 선물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박정민이 내린 결론이 오디오북 제작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버지가 책을 버리지 않으시더라. 회사 다니느라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눈도 안좋으셨는데도 아버지는 '책은 버리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출판사에서 첫 책이 나오고, 아버지에게 어떻게 책을 선물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오디오북을 만들어서 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좋아했던 박정민의 아버지는, 이제 아들의 목소리로 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내 출판계의 사정상, 모든 신간들이 오디오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설사 제작된 오디오북이라도 장애인도서관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박정민은 "시각장애인들도 인기 있는 책을 보통 사람들처럼 동등하게 접할 수 있는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정민은 언론에 보낸 장문의 이메일을 통해 "소외된 것을 위하여'라는 저희 출판사의 모토를 지켜나가며 세상에 필요한 책을 꾸준히 만들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듣는 소설'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으로 본업인 배우 활동의 공백기가 생기는 데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내가 그때 일이 있을까 하는 불안함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오만한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소속사에서는 쉬라고 하는데,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제가 달라고 하고 있다"며 배우 활동 복귀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박정민은 "처음 참가하는 서울국제도서전을 사고 없이 잘 치르는 게 고민이다. 7월에는 25년 정도 생각하고 있던 비염 수술을 할 계획이다. 그동안 무서워서 안했는데, 방송에서 미리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놓으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박정민은 "생각해보니 출판사 이름도 '책임감'으로 할 걸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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