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 스틸
영화사 진진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장편 영화의 시작이 단편의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동명의 단편 영화가 시작이었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2015)가 대표적이다. 첫 시작은 주연인 앤드류가 스튜디오 밴드에 처음 들어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과정을 짧게 그려낸 영상에 불과했다. 이 단편 작품이 선댄스 영화제를 시작으로 호평을 받으며 적극적인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되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장편 영화가 되었다.
얼마 전 국내에 개봉해 큰 화제를 모았던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2024) 또한 감독의 전작인 단편 영화 < 리얼리티+ >와 세계관을 비롯해, 많은 부분이 공유되고 있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인물의 형상을 바꿀 수 있다는 아이디어부터 인물의 척추를 따라 꿰맨 자국의 이미지까지 여러 측면에서 그렇다. 두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가 하는 문제는 다른 곳에 놓여 있다. 다만 같은 감독의 서로 다른 두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일성 혹은 연결성은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02.
최근 국내에서도 1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소라 네오 감독의 장편 연출작 <해피엔드>(2025) 역시 비슷한 구석이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일본 작곡가이자 음악가인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인 그는 이 작품으로 장편 극영화를 시작하게 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2017), <류이치 사카모토 : 에이싱크>(2018),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2023) 등 다큐멘터리 쪽에 관심을 두어온 이후 첫 데뷔작이다. 이전에 극영화 연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차례 단편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었는데, 그중 2022년에 공개한 <슈가 글래스 보틀>이 첫 장편인 <해피엔드>와 여러 지점에서 맞닿아 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영화 <슈가 글래스 보틀>은 장편 <해피엔드>의 각본이 먼저 완성된 이후 연출 계획을 가졌던 작품이라고 한다. 두 작품 모두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유타와 코우(두 작품에서 배역을 맡은 배우는 모두 다르다.)의 관계성을 먼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일종의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특정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에 시도하게 되는 여러 작업을 통칭하는 말이다. 실제로는 두 인물의 관계 외에도 여러 지점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이 극 중에 등장하고 있는 점만 봐도 알 수 있게 된다. 중심인물인 코우와 그의 어머니가 존재하는 공간인 식당 또한 개념적으로 많은 부분 닮아 있다.
03.
영화 <슈가 글래스 보틀>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코우(기무라 번 분)와 유타(아사카 겐테쓰 분)다. 두 사람은 연극부에서 훔친 가짜 맥주병(슈가 글래스 보틀)으로 서로의 머리를 내리치며 내일 학교에서 벌일 깜짝쇼를 준비 중이다. 영화 <해피엔드>로 보자면, 밤늦게 친구들과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이 교장의 자동차를 학교 한가운데 수직으로 세우기 직전의 시점처럼 여겨진다. 여기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며 노숙 중인 데코 할아버지(나카무라 시윤 분)가 합류한다. 학교의 난장까지 동행하지는 않겠지만, 세 사람은 남은 맥주병을 깨며 궁극적으로 누군가를 속이게 될 장면을 연습한다.
데코 할아버지의 등장 전까지는 단순히 두 학생의 장난처럼만 보이던 프레임의 자리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한다. 길거리 곳곳에 설치된 '오버패스'라고 쓰인 알 수 없는 간판과 밤거리를 배회하며 순찰하는 듯한 경찰견 로봇이 세 사람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디스토피아적이면서도 사뭇 기계적인 세계관이 그림자처럼 번져가기 시작한다. 코우와 유타의 첫 모습이 단순히 다음 날의 장난을 준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대목들이다.
극의 전환은 코우의 엄마인 후쿠코가 운영하는 가게 내부 신에서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앞서 잠시 스쳐 지나갔던 '오버패스'라는 이름의 상업 지구를 만들기 위해 주변 상가를 모두 사들이고, 가족의 가게마저 강압적인 태도로 빼앗고자 하는 한 부동산 중개업자와의 대립에 이르러서다. 장난기 넘치던 코우도 이 지점에서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낸다. 엄마의 공간을 없애려는 남자에 대한 화와 더불어 데코 할아버지와 같은 원주민들이 모두 쫓겨난 이유가 바로 지금 언급되고 있는 재개발 사업 때문임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슈가 글래스 보틀> 메인 포스터CGV아트하우스
04.
"인간은 때가 되면 어차피 다 죽어요."
다시 말하면, 이 영화 <슈가 글래스 보틀>은 폐쇄 회로와 경찰견 로봇 등의 근미래적 감시 시스템을 배경으로 감시 사회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활용하면서 재개발과 부동산의 위협 속에서 사라져가는 도시의 공간,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의 상업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작품으로도 읽힌다. 특히 시대적 배경은 미래 도시를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시선은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업화에 두면서 일종의 은유적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
엄마 후쿠코의 가게에서 협박을 일삼던 남자를 대상으로 일종의 계획된 쇼를 벌이며 그를 쫓아내던 코우와 유타의 모습에도 중요한 의미 하나가 놓인다. 짧은 코미디를 차용한 듯한 두 사람의 장난이 (영화의 처음에서 맥주병을 깨며 놀던 장면과도 이어진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저항으로까지 서사의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인물들이 가진 상실감과 무력함, 분노와 같은 감정 시각적으로 표현됨으로써 '감정의 외면화'가 시도된다. 물론 서사 속에서는 작은 성과에 불과하다. 겨우 육교 한 편에 마련될 수 있었던 데코 할아버지의 노숙 공간은 그사이 철거되고, 곧 경찰견 로봇이 나타나 두 사람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어딘가로 전송한다. 아마 도시 계획에 해당하는 '오버패스'에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05.
이제 감독의 장편 영화 <해피엔드>가 다시 떠오른다. 이 작품이 장난처럼 시작된 행위를 통해 분노와 상실의 감정을 터뜨리는 '소리 없는 저항'에 해당한다면, 〈해피엔드〉는 성장의 경계에 선 청춘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정치적 분열,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관계의 균열을 조용히 응시하는 쪽에 속한다. 두 작품 모두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상징적인 행위나 이미지로 전달하고자 하는데, 이는 네오 소라 감독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쪽이 아닌, 그것이 형성되는 구조와 맥락에 천착하는 창작자라는 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두 작품은 유사한 감정적 궤도 안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파동인지도 모르겠다. <슈가 글래스 보틀>이 감정의 가능성과 저항의 시작을 보여주는 도입부라면, <해피엔드>는 그 감정이 관계 안에서 어떻게 분열되고, 또 어떻게 재조립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장편적 확장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감독에게도 관객에게도 반드시 필요했던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두 영화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정확히 이어지고 있다. '진짜 해피엔드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 앞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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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