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의 노래> 스틸컷
영화 <태양의 노래> 스틸컷(주)바이포엠스튜디오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희귀 질환 XP 증후군을 앓고 있는 미솔(정지소)은 낮에는 특수한 창문으로 태양을 가린 채 제한된 일상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낮 집 앞에 과일을 팔러 온 청년 민준(차학연)에게 한눈에 반해 마음을 졸이던 중 친구 옥경(권한솔)의 도움으로 직진 플러팅을 시작하게 된다.

늘 창문 너머로 지켜만 보던 미솔은 용기 내 민준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후 연인으로 발전한다. 일몰부터 일출 사이 밤중에만 만날 수 있는 신비한 매력에 빠진 민준은 미솔의 뛰어난 재능을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개하자고 설득한다.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의 재능을 가졌지만 드러내기 꺼리던 미솔도 민준의 응원 덕에 세상과 소통하며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깊어지는 감정과는 다르게 야속하게만 빛나는 태양은 예정된 이별을 예고하고, 두 사람은 이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일 채비를 마친다.

한국적 감성으로 리메이크

코이즈미 노리히로의 소설 <태양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두 번째 리메이크를 맞았다. 일본 원작 실사 <태양의 노래>(2007)는 일본 특유의 느낌이 짙고 10대로 설정돼 풋풋함이 강하다. 실제 뮤지션 YUI를 캐스팅했으며 OST를 직접 작사 작곡해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미국 리메이크작 <미드나잇 선>(2018)은 10년째 짝사랑했다는 요소와 두 배우의 비주얼에 중점을 두며 화려하게 재탄생됐다. 한국 버전은 20대로 연령을 높이면서 꿈을 향한 목표와 직업적 관념이 뚜렷하게 생겼다. 진한 로맨스와 감동, 코미디의 밸런스가 적절하게 배치됐다. 개그 요소를 가미해 진지한 분위기를 환기한다. 유머 코드가 맞는다면 소소하게 미소지을 포인트가 곳곳에 포진돼 있다.

<태양의 노래>는 청춘 로맨스가 중심이지만 음악도 하나의 캐릭터로 작용한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음악감독을 맡아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청춘의 사랑과 꿈, 대사와 맞닿아 있는 가사뿐만 아니라, 섬세한 감정을 세공한 음역은 정지소의 가창으로 빛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였던 만큼 대부분의 노래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청아한 매력을 뽐낸다. 촬영일은 다르지만 최근 개봉한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에서 악령이 빙의된 소녀를 연기해 충격을 안겼던 모습과는 달리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무엇보다도 차학연이 맡은 민준 캐릭터가 흥미롭다. 민준은 단순히 청년 과일 트럭 주인이 아니라, 배우 지망생이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장사를 하고 있지만,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을 대변한다. 특히 민준이 처음으로 대사 있는 캐릭터를 맡아 전파를 타게 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안타깝게도 사극톤을 극복하지 못한 치명적인 발연기가 큰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 <태양의 노래> 스틸
영화 <태양의 노래> 스틸(주)바이포엠스튜디오

뮤지션을 꿈꾸는 미솔과 연결되는 직종이라 무리 없이 둘의 관계가 스며든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키워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준비하며 한 걸음씩 준비하는 긍정의 기운, 단단한 삶의 의지는 미솔을 조금씩 세상 밖으로 움직이게 한다.

영화는 20대를 지나고 있는 청춘에게 위로를 건넨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미솔은 시한부 뮤지션이란 꼬리표를 떼고 더 멋진 음악을 세상에 남긴다. 노래할 때만큼은 아픈 사람인 걸 잊고 살아 있음을 느낀다. 태양을 피해야 하지만 노란 해바라기를 상징처럼 품고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노래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또 다른 환우에게 희망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고무된다. 난생처음 누군가를 사랑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받는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된다.

정지소와 차학연이란 배우 자체의 청량함이 그 시절을 지나왔던 세대에게는 흐뭇함을, 그 시절을 겪고 있는 세대에게는 잠시 쉬어갈 시간을 채워준다. 차가운 세상도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응원으로 조금씩 데워지는 온기의 나눔을 믿고 있는 듯, 영화는 한줄기 희망에 무게감을 더한다.
태양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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