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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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關稅)는 상품이 수출과 수입으로 국경을 통과할 때 물리는 세금을 의미한다. 관세가 한번 오르면 소비자는 구입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기업은 매출이 하락하면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집권한 이후 미국이 일으킨 '관세전쟁'은 현재 전 세계를 흔들어 놓고 있는 상황이다.

관세는 어떻게 세계사를 뒤흔들며 세계 경제의 화약고로 떠오르게 됐을까. 1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트럼프 관세전쟁, 관세는 어떻게 세계사를 바꿨나' 편이 그려졌다.

관세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500년경 고대 4대문명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서아시아)와 이집트 문명 등에서는 최초의 관세가 생겨난 기록이 존재한다. 여기서 고대의 관세는 이동을 위해 관문 등을 통과할 때 내는 '통행세'의 개념에 가까웠다.

현대적인 관세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국가는 로마 제국이다. 서기 2세기경 로마 제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영토를 점령하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속주들과 무역이 활발해졌다. 로마는 항구와 속주 경계 등에 세관을 두고 본격적인 국가 통치 수단으로 관세를 적극 활용했다. 세관을 지나는 수입품에 대해서는 2.5%에서 최대 12.5%까지 표준화된 세율을 정하고 징수했다. 이러한 관세를 포르토리움(Portorium)이라 불렀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자주쓰는 인터넷 포털(Portal, 출입구)의 어원이기도 하다.

로마제국의 쇠퇴 이후 한동안 약화된 관세는, 유럽이 중앙집권적인 절대왕정 국가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왕권 강화의 핵심 정책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중상주의(국가의 부를 증대하기 위해 무역을 통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정책)을 추구했고, 각 국가들은 자국의 재산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관세 정책을 잇달아 도입했다. 이때부터 관세는 더이상 단순한 세금을 넘어 '국가 경제 전략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은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며 식민지 무역으로 번성한 국가였다. 스페인은 금과 은, 커피, 담배 사탕수수 등 식민지에 착취한 고가의 상품들을 전량 자국으로만 수입했고, 여기에 관세를 붙여 유럽에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수익을 누렸다.

스페인 이후로 여러 나라들이 관세를 국가 핵심 정책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무역 전쟁이 심화되기 시작한다. 네덜란드는 유럽 내륙과 해양을 잇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다. 네덜란드가 해상무역시장을 장악하자, 영국은 1651년 네덜란드 견제를 위한 극단적 보호무역정책인 '항해조례'를 제정한다. 이로 인하여 1652년부터 양국간에 시작된 '영란전쟁'은 관세로 시작된 세계 최초의 무역전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748년 영국은 이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네덜란드를 꺾고 해상무역 패권을 장악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역패권을 기반으로 영국은 19세기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세계 패권국인 대영제국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미국은 관세를 내세운 극단적 보호무역의 명과 암을 극명하게 보여준 나라로 꼽힌다. 19세기 후반들어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미국은 영국에 맞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강력한 보호무역과 고관세 정책을 도입했다. 25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하원의원 시절이던 1890년 '매킨리 관세법'을 발표하며 외국 상품에 50%의 고관세를 부과하고, 자국내 철강, 주식, 방직 등 핵심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주도했다. '관세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매킨리는 트럼프가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로 꼽은 인물이기도 하다.

1929년 미국에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인 '대공황'이 닥치면서 이듬해 미국 정부는 더욱 강력해진 극단적 보호무역의 결정판인 '스무트 홀리 관세법'을 도입한다. 2만여개가 넘는 수입 상품에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조치로서, 관세 수익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는 유럽 국가들의 보복관세와 무역전쟁을 유발하며 오히려 미국 기업과 농민들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1929년부터 1934년까지 세계무역규모는 66%나 감소하며 세계경제의 위기를 불러왔다. 결국 미국의 고관세 정책은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킨 악수가 되면서, 스무트 홀리 관세법은 오늘날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재앙적인 경제정책'이라는 혹평을 받는다.

관세 없애 패권국된 미국, 이번엔 관세 늘린다?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한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막강한 경제력과 생산력을 앞세워 세계 패권국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전후 1947년에는 GATT(다자간 무역협정)을 제정해 관세정벽과 수출입 제한을 줄이면서 국제자유무역을 촉진하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스무트 홀리 관세법 이후 약 100년 만에 다시 미국에서 고관세 보호무역의 칼을 빼든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집권 2기를 맞이해 2025년 4월 2일 전세계에 '관세 전쟁'을 선포한다.

무려 185개국을 대상으로 한 트럼프의 일방적인 상호관세 발표는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특히 상호관세는 2024년 기준으로 미국에 무역 적자를 안긴 나라들에게 집중됐고, 대상국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수입품 관세율을 단순계산법으로 책정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 정부의 허술한 관세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는 정계 입문전부터 미국 정부의 오랜 관행인 자유무역과 동맹 중심 정책 기조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해왔다. 또한 트럼프는 2025년 2월 '보수정치행동회의' 연설에서는 "내가 사전에서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관세'다. 우리가 부유했던 시기에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외국이 우리의 일자리와 돈,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라고 주장하며 고관세가 미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확고한 신념을 드러냈다.

또한 트럼프는 이 연설에서 미국이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시기로 '1870년부터 1913년까지'를 콕 집어 거론했는데, 이는 그의 정치적 롤모델인 매킨리(1897-1901) 대통령의 집권기 및 정치활동 시기와 겹친다. "관세를 마치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매킨리와 트럼프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언급한 시대는 미국사에서는 도금시대(Gilded Age)로 불리우며 미국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전한 시대였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미국은 소득세 없이도 관세가 주요 국가 재원이 될 수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 시기 미국의 성장이 관세법만이 아니라 이민자 유입, 천연자원 개발, 서부개척, 기술 혁신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이 당시의 경제 구조는 현대와는 여러 모로 상황이 달랐기에, 그때와 같은 관세정책을 지금도 적용할 수 있을지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과연 트럼프가 이처럼 무모한 관세전쟁으로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트럼프는 '러스트벨트'로 불리우는 미국 북동부 지역과 백인 제조업 노동자 계층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값싼 외국의 수입품을 막으면 미국 제조업도 회생할 수 있다는 게 대선에서 지지층을 설득한 트럼프의 논리였다. 2026년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강경한 관세정책 드라이브를 밀어붙이는 이면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계산이 숨겨져 있다는 평가다.

'재정 확보' 역시 트럼프 관세정책의 중요한 명분이다. 미국은 현재 2024년 기준 국가부채가 36조 달러로 불과 9년 사이에 두 배나 증가했다. 방만한 정부운영으로 재정 지출을 증가하는데 세금 수입은 부족해지고 있다는 게 미국의 고민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2기 출범과 동시에 자문기구인 정부효율부를 신설하여 공무원의 대규모 인력감축과 구조조정을 단행하는가 하면,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는 국가들에 집중적인 고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의 위협' 역시 이유로 거론된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중국은 미국에 위협적인 국가'라고 평가하며 중국의 잠재력을 경계한 바 있다. 중국과의 막대한 '무역 적자'는 미국내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반도체, 인공지능, 통신장비 등 미래 핵심산업과 직결되는 첨단 기술력 역시 발전을 거듭하며 '기술산업패권'에서 미국의 아성에 근접하고있는 실정이다.

역사는 트럼프 관세정책 어떻게 평가할까

트럼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FBI(연방수사국)이 최근 공개한 주요 산업스파이(핵심 기술 탈취) 혐의 도주자 18명 중 절반에 이르는 9명이 중국인이었다. 또한 트럼프는 미국에서 대유행한 동영상 사이트 '틱톡'을 겨냥해 '중국이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틱톡의 미국 퇴출을 추진했다. 미국에게 중국은 무역 상대를 넘어 이제 '중요한 기술과 안보를 겨루는 위협적인 경쟁자'라는 게 트럼프의 대중 인식이다.

양국은 서로 관세를 무기로 지금도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관세에 대응해 중국은 미국의 중국산 수입 비중이 높은 희토류의 자원 무기화로 맞서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한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서는 트럼프로 인한 반미감정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적대국만이 아니라 기존의 전통적인 우방이나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트럼프발 관세정책의 효과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관세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폭등하면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게 되고, 상품 원가의 급증과 기업 이익의 하락로 법인세 수입까지 덩달아 감소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관세만으로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재정적자)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분석한다.

"관세로 국가가 부유해진다는 건, 사람이 양동이에 들어가 스스로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의 격언이다. 2025년 3월 실시한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의 정책으로 경제 상황이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취임 전보다 훨씬 증가하며 악화된 미국내 민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관세폭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사회와 경제 역시 그 여파가 눈앞으로 다가오며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과연 훗날의 역사는 트럼프가 일으킨 관세전쟁을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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