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질과 데이지> 스틸컷
영화 <바질과 데이지> 스틸컷인디그라운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저는 오늘 엄마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왔어요."

노해(심해인 분)는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성당을 찾는다. 엄마 해욱(박희은 분)의 죄를 대신 용서받기 위해서다. 오래 편찮으셨던 아빠가 세상을 먼저 떠나고 3년 전부터 단둘이 살고 있는 그는 최근 낯선 상황을 마주했다. 엄마가 핸드폰 속에서 처음 만난 낯선 이모인 소영(강지원 분)을 두고 사랑하는 애인이라며 소개한 일이다. 이 장면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낯설었으면 신부님을 찾아와 대신 그 죄를 고백하기까지 한 것일까. 마르가리타인 자신의 세례명을 마르게리따라고 잘못 소개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신실한 신자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그가 지금 성당을 찾았다는 건 그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하느님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는데, 그래서는 안되는 게 아니냐고 묻는 노해다.

영화 <바질과 데이지>는 두 여성의 사랑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다. 그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껏 규범적으로 인정해 왔던 사랑의 경계와 아직까지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을 오롯이 지켜내지 못하는 법적 사회적 테두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극 중 노해는 그 경계에 선 인물로 사회가 가르쳐 준 틀에서 벗어난 사랑의 모습과 의미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한 대상이 된다.

02.
엄마의 충격적인 선언 이후, 영화는 딸 노해와 연인 소영을 마주하게 만들기 위해 운전면허라는 소재를 활용한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소녀가 경험하게 될 작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시련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운전면허 시험에서 떨어지게 되는 그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연인이 때마침 택시 기사라는 설정. 엄마 해욱은 아직 면허를 딴지 1년도 되지 않아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까지도 모든 것이 두 사람의 만남을 종용한다. 하지만 결국 그 자리에서 노해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훨씬 더 직접적인 실체, 엄마의 연인이 여성이라는 것과 두 사람이 아직은 '불편한' 스킨십을 나눈다는 사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는 대상이 동성이라는 것만으로도 편견이 덕지덕지 붙을 판에 엄마가 선택한 소영이라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부정적인 인상만 남겨지기 시작한다. 운전 연수를 빌미로 나란히 안게 된 자리에서 그는 엄마와 진지하게 만나는 게 아니라며 선을 그어온다. 전화만 걸려 와도 소녀처럼 설레던 엄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너무 딸바보라 자신의 결혼 상대로는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꺼낸다. 그뿐일까? 심지어 다혈질이기까지 한 그녀는 운전을 가르치는 내내 지나친 간섭도 서슴없이 해오고 다른 운전자에게 삿대질하는 좋지 못한 모습까지 보인다.

엄마의 동성 연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딸의 심리와 소영이라는 개별적인 인물에게 느끼는 부정적인 인상이 같은 자리에서 하나의 레이어처럼 쌓도록 만드는 이 지점은 '감정적 강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노해가 느끼게 될 부정적인 감정이 어떤 이유로 생기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동일한 방향으로 유사한 경험이 더해질 때 해당되는 감정이 강화되며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장면이 바로 그렇다. 두 가지 상황의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서, 노해가 소영을 좋아할 수 없게 되는 이유가 모호해진다. 엄마의 연인이 여성이라는 것 때문인지 그저 좋지 못한 사람이어서인지.

 영화 <바질과 데이지> 스틸컷
영화 <바질과 데이지>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3.
"보호해 주지 못하는 관계자는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해요. 서로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요. 이거 잘못된 거잖아요."

앞서 이야기했던 이 모호함은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이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하면서 노해를 한 번 더 어려움에 빠뜨린다. 차 사고로 인해 엄마의 맹장이 터지게 되면서 수술 동의서가 바로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유일한 관계자에 해당하는 소영은 딸 노해가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어떤 측면에서도 보호자의 역할을 할 수 없어서다. 일련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노해는 이 사고가 운전을 강행했던 엄마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소영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는데, 이 또한 그가 엄마의 동성 연인이라는 점이 이유가 된다. 그것은 분명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영화의 깊숙한 곳에 놓인 모호한 불편함은 해욱과 소영 사이에 놓인 노해의 시선을 통해 '서로 사랑하는 일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미움받거나 소외당하는 이유가 정말 그 자체로 잘못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가닿는다. 여기에 대해 영화가 보여주는 대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사랑에 대해선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같이 있으면 좋다는 해욱의 말이다.

04.
"가장 문제인 건 네가 겁을 먹고 있다는 거야. 학원에서 가르쳐 주는 공식 같은 거 말고 시선을 넓혀야 해."

두 번째 만남에서 노해의 주차 연습을 도와주던 소영은 시범을 선보이며 운전하는 동안에 겁을 먹지 않고 시선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중적인 의미가 담긴 말이다. 이 표현에서 운전을 사랑으로 치환한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규격에서 벗어나 시선을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서로를 보호할 수 없고 지켜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모양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다시 첫 장면인 고해성사의 자리로 되돌아가야겠다. 노해의 고백과 질문 앞에 놓인 신부는 어떻게 적혀 있는가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해가 자신의 세례명을 마르가리타가 아니라 마르게리따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그 가치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어떤 모습이든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해도 엄마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이제 비로소 명확히 할 수 있게 된다. 소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 이전에, 그가 책임지지 못한 사고에 대해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속에 그에 대한 미움이 차올랐던 것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낀다. 다가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노해가 놓인 모든 자리,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과 엄마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 역시 모두 그랬다. 소영에게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남을 청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 반짝인다. 단순히 엄마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 형태나 종류와는 조금도 상관없이.
덧붙이는 글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유통 배급 환경 개선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는 2025년 3월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4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90편(장편 22편, 단편 68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일곱 번째 큐레이션인 '어느 가족들'은 6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바질과데이지 여성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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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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