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수라처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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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여성들은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거나 이혼을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이혼 여성에게 경제적 자립은 불가능할 뿐더러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그 감정을 억누르고,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하는 '아수라'가 돼야만 했다.
네 자매는 이런 억압적 현실 속에서도 각자 나름의 삶을 이어간다. 장녀 츠나코는 남편과 사별하고 꽃꽂이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고, 차녀 마키코는 샐러리맨 남편과 중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이지만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불안에 떤다. 삼녀 타키코는 면치레하며 남성에게 마음이 전혀 없는 척하는 결벽증 환자로 아버지의 외도를 발견하는 탐정과 사랑에 빠진다. 막내 사키코는 가족에게도 비밀로 하며 부잡스러운 무명 복서와 동거를 한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며 살아가는 각자만의 생존방식을 보이며 살아간다. 단, 한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삼녀 타키코는 네 자매 중 가장 독립적이면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벗어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 사서로서 지적 독립성이 있는 직업을 가졌으며, 결혼이라는 제도적 압박에 저항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고 외면했을 때,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행동력을 가진 현대적 여성상을 가리킨다.
물론 후에 카츠마타(마츠다 류헤이 분)와 결혼을 하긴 하나, 다른 자매들과 달리 가부장적 질서라기보다는 그녀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에 빠지고, 오히려 카츠마타가 타키코의 집으로 들어와 사는 등 상대적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 결국 <아수라처럼>은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여성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타키코처럼 현대적이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려는 독립적인 캐릭터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들만의 저항
무엇보다 <아수라처럼>은 자매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도, 괴로워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마음, "내 동생은 나만 괴롭힐 수 있다"는 식의 모순된 애정까지. 이처럼 갈등과 애착이 뒤엉킨 인간 군상을 통해 아수라의 여러 얼굴처럼 다면적인 여성상을 그려낸다.
가족과 결핍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2006년 개봉한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이었다. 미워하고 질투해도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밀고 끌며 나아가는 모습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다루는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연기력으로는 단연 아오이 유우를 꼽을 수 있겠는데, 공부만 해온 따분한 사람을 그대로 복사해냈다고 할 정도로 디테일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유명 배우들이 펼치는 앙상블과 마츠다 류헤이의 어딘가 어벙한 연기도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특히 칼같이 똑부러지는 타키코와 우유부단한 카츠마타의 대비가 이 커플을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불륜을 당하고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여성, 유부남과 관계를 맺는 여성의 모습이 비판받을 수 있지만, 이는 시대적 맥락을 간과한 해석이다. 당시 여성들에게 이혼은 사회적·경제적 죽음과 다름없었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 또한 극도로 제한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생존하며 저항했던 것이다.
<아수라처럼>은 이러한 여성들의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단순히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유부남과 관계를 맺는 장녀의 복잡한 욕망이나 독립적 자아를 실현하려는 타키코 같은 인물들을 통해 오히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이야기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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