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 뮤지컬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어쩌면 해피엔딩>이 8일(현지시간) 토니상에서 6관왕을 달성했다. 미국에서 매년 시상하는 토니상은 연극·뮤지컬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이런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뮤지컬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 무대 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올해 작품들 가운데 가장 많은 상을 거머쥐었다.

비록 수상의 영예를 누리진 못했지만, 편곡상과 의상 디자인상, 조명 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까지 4개 부문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비유될 정도로 대단한 시상식을 그야말로 석권한 셈이다. 한국 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주고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공연계 역시 축제 분위기다.

축하와 격려를 이어가되 한국 뮤지컬의 저력을 더 키우기 위해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연의 메카로 꼽히는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만큼 브로드웨이의 탄탄한 기반을 참고해 우리도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에 이어 한국 뮤지컬계에 '또 다른 해피엔딩'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다.

뮤지컬 시장의 양극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ending)이 8일(현지시간) 미국의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의 뮤지컬 작품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ending)이 8일(현지시간) 미국의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의 뮤지컬 작품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 연합뉴스

최근 뮤지컬 시장은 데이터 상으로는 호황이다. 뮤지컬은 지난해 티켓 판매액 4651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도 티켓 판매액 133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우수한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서 발간한 '2025년 1분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 건수와 공연 회차는 대폭 증가한 데 반해 티켓 예매 수는 소폭 증가해 시장의 호황은 공급의 양적 증가로 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이미 검증된 소수 작품이 시장 전체를 견인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고전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올해 1분기에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한 두 작품은 <알라딘>과 <지킬 앤 하이드>로 두 작품은 시장에서 이미 검증됐고 장기 공연을 진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극장 뮤지컬은 3개월가량 공연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알라딘>과 <지킬 앤 하이드>는 6~7개월에 걸쳐 장기 공연을 했다. 이는 잘 팔리는 작품을 오래 공연하는 안정적인 운영 방식이기도 하다.

참신한 작품 발굴 보다 안정적인 작품을 택하는 건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작품별 편차가 심해 제작사 입장에서 수익 창출이 확실한 안정적인 작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면서 "새로운 작품이나 묵혀뒀던 작품을 도전하려 해도 현장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아 안정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5년 1분기 뮤지컬 티켓판매액 상위 10개 공연 목록
2025년 1분기 뮤지컬 티켓판매액 상위 10개 공연 목록KOPIS(공연예술통합전산망)

그의 말처럼 최근 대극장 뮤지컬계는 창작보다는 라이선스를, 초연으로 도전하기보다는 검증된 작품을 다시 올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KOPIS에서 발표한 올해 1분기 티켓 판매액이 가장 우수한 뮤지컬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알라딘>과 <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만 처음 선보인 초연이고, 나머지는 모두 시장에서 검증을 마친 후 다시 공연된 작품들이다. 그마저도 <알라딘>은 세계 각국에서 성공하며 검증을 마친 라이선스 뮤지컬이니, 순수 창작 초연은 <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가 유일하다.

중소극장 공연에서도 작품별 편차는 명확하다. 대극장에 비해 창작 뮤지컬이 상대적으로 많이 시도되긴 하지만, 현장 분위기가 여유롭지 않은 만큼 창작 초연보다는 이전에 공연된 창작 뮤지컬을 다시 올리는 식이다. 재정 상황이 넉넉하지 않은 창작진이나 소규모 제작사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발굴해 무대에 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주제나 기법을 사용한 작품의 경우 더욱 시도되기 어렵다.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 갖춰져야

 뮤지컬 <알라딘> 공연 사진
뮤지컬 <알라딘> 공연 사진에스앤코

그렇기에 브로드웨이의 오프 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의 500석 이하 소규모 극장)라는 구조는 눈여겨볼만 하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는 보다 실험적이고 독특한 작품이 공연되고,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수정과 보완을 거쳐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할 수 있다. 오프 브로드웨이보다 더 실험적인 시도를 펼치는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도 존재한다.

이처럼 실험과 수정, 보완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브로드웨이와 달리 한국 뮤지컬 시장은 당장 이런 여유가 없다. 결국 금전 문제 등 현실적 제약 탓에 검증된 작품을 올리게 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기존 작품을 나아지게 수정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뮤지컬 콘텐츠의 동력이 떨어지고, 성장이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제2의 '어쩌면 해피엔딩'이 나오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 한 소규모 제작사 관계자는 "많은 작품이 재정이 열악해 공연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나 재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해도 그 문이 너무 좁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작품 가운데 정부나 지자체, 각종 재단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 많다. 토니상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

토니상 수상을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지원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발 빠르게 지원 강화를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페이스북을 통해 토니상 수상을 축하하며 "정부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K문화강국위원회'를 직속으로 설치하며 관심을 보여온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정책·제도적 실천까지 이루어지길 바란다.

'뮤지컬 강국' 위해서는...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에 올랐다.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에 올랐다.연합뉴스 / 로이터

진정한 '뮤지컬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뮤지컬의 대중화가 가장 큰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제작사와 창작진 등 문화예술계 종사자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관객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20~23세 청년을 대상으로 20만 원을 포인트로 지급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서울시의 정책인 '서울청년문화패스'가 관객 지원책의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대상이 제한적이고 기한이 일시적이기에 뮤지컬의 대중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서울청년문화패스를 이용한 한 관객은 "덕분에 뮤지컬에 관심과 흥미가 생겼지만, 티켓 가격이 비싸 자주 즐기기엔 부담스럽다. 포인트로 직접 지원해 주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뮤지컬을 즐길 수 있도록 제휴와 협력을 통해 다양한 할인 프로모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다양한 지원책을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작품의 문턱도 낮아질 필요도 있다. 대중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대극장 뮤지컬과 달리, 중소극장 뮤지컬은 무거운 주제나 마니악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 많다. 현재 대학로 중소극장은 마니아와 재관람 관객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됐고, 중소극장이 밀집한 대학로는 마니아들만의 공간이 됐다. 소위 말하는 '입문자'가 뮤지컬을 즐기기에는 문턱이 높은 곳이 된 셈이다.

결국 다양한 작품이 무대에 올라야 하면서 중소극장에서 대중적 작품을 공연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그뿐만 아니라 공연장이라는 공간 역시 대중화를 위해 개선될 필요가 있다. 장시간 앉아서 관람해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극장 환경은 관람 선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좌석이 불편 또는 협소하거나, 이외 편의시설이 미흡한 극장 환경으로는 관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 장애인, 노약자 등 문화 취약계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극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학로 일대에 대극장을 추가로 마련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극장과 중소극장이 어우러진 브로드웨이와 달리 대학로는 중소극장 중심이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나 두산아트센터 정도가 대학로에서 그나마 큰 극장이다. 두 극장에서는 비교적 대중적인 작품이 공연되기도 하지만, 대학로라는 공간의 대중화를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니아와 입문자, 뮤지컬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어야 대학로가 브로드웨이처럼 활기 넘치는 '공연의 메카'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수도권 관객들의 공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을 단 한 번의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는 없다. 기반을 탄탄히 구축하고, 한국 뮤지컬의 앞날을 진지하게 모색해 또 다른 해피엔딩을 꿈꿔야 한다. 과제는 많고, 과제를 이행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하지만 많은 뮤지컬이 시련과 고난을 거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것처럼, 우리도 해피엔딩을 위해 조금씩 한 발을 내디딜 때다.
공연 뮤지컬 토니상 어쩌면해피엔딩 창작뮤지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