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늦은 오후, 대학로의 익숙한 로터리를 지나며 골목길 끝에 위치한 작은 극장을 찾았다. 고요한 저녁 햇살이 깃든 거리, 한 걸음 비켜선 듯한 곳에 자리한 연우소극장은 낯익은 번화로와는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의 고문이자 극단 노을의 오세곤 연출의 초청으로 찾은 자리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극장이 시야에 들어설수록 나의 발걸음은 점차 긴장과 설렘으로 차올랐다.

지하의 계단을 따라 아담한 극장 안의 무대는 마치 의례를 준비한 제단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검은색, 흰색 등 다섯 가지 색의 통천이 벽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동양 철학에서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는 오방색(五方色)이었고, <하녀들(Les Bonnes)>이라는 서양 원작을 '지금, 여기' 한국의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는 장치로 꼭 필요한 존재로 보였다.

길게 내려앉은 통천에는 꽃, 쇠사슬, 거울, 전화기 등리 매달려 있었고, 바로 옆에는 원색을 자랑하는 하이힐과 화려한 드레스, 정체불명의 악세사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장식은 요란했지만 그 화려함은 어딘지 섬뜩했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극했다. 마치 극장에 들어선 이들을은 '욕망의 방'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모방과 연기, 그리고 제의의 반복

 공연이 열리는 첫날인 지난 10일 늦은 오후에 연극 <하녀들>이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이 열리는 첫날인 지난 10일 늦은 오후에 연극 <하녀들>이 공연을 시작했다.필립리

프랑스의 장 쥐네(Jean Genet, 1910~1986)의 <하녀들>은 실존했던 파팽 자매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건이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의 시놉시스 기획 단계부터 참고했다고 밝혀진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여하튼 두 하녀가 마님을 죽인 이 충격적인 사건에서, 쥐네는 폭력보다 더 심오한 모방의 욕망과 권력의 환상을 포착해낸다.

극은 클레르와 솔랑주라는 두 하녀의 매일 밤 반복되는 역할극으로 시작된다. 누가 마님을 맡을지, 누가 하녀가 될지를 정하고, 그들은 연기처럼 살인을 상상한다. 그러나 그 의식은 매번 실패로 끝난다. 마님이 돌아오면, 그들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 반복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자아를 무너뜨리는 의례이며, 감정을 벼리는 제의(ritual)다.

하녀 역의 배우들이 수행하는 이 연극적 의례는 정교하고 집요하며, 의도적으로 반복된다. 배우 박지우(클레르 역)는 언어의 칼날을 쥐고 연극을 선도한다. 말의 끝에서 언제나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의 가장자리다. 윤이솜(솔랑주 역)은 그 반대다. 억눌린 분노, 억제된 감정이 조용히 끓어오르다 어느 순간 폭발한다. 중간에 등장하는 이지혜(마님 역)는 단 몇 마디의 대사와 정적인 시선만으로도 하녀들의 욕망을 산산이 깨뜨린다.

배우들의 복장이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원작으로 제작되어 단순히 유럽풍 의상을 상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고유의 한복의 선을 닮은 의상들이 하녀들의 몸을 감싼다. 절제된 곡선, 겹쳐진 천의 구성, 그 아래에 숨겨진 분열된 자아가 표출된다. 그렇게 의상은 말 없이도 연극이 말하는 주제를 감싸는 효과를 냈다.

찻잔 그리고 상여 행차를 연상하는 징 울림

이 연극에서 무대는 그 자체가 언어다. 찻잔, 거울, 의자, 드레스, 꽃 등까지. 단조로운 오브제들은 각각의 상징을 지닌다. 찻잔은 일상의 위선을, 거울은 자아의 분열을, 쇠사슬에 얽힌 의자는 욕망의 장소이자 파괴의 종착지로. 특히 찻잔 속의 띠욀 차는 차인지, 독약인지, 하녀들의 분노인지 여럿을 가늠하게 만든다. 그 차가 흔들리는 순간, 극 안의 감정선도 함께 흔들린다.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 극장을 가로지르는 묵직한 소리-징(鉦)-이 반복된다. 한국 전통 장례의 상여 행차에서 죽음을 알리는 의례적 징의 울림처럼. 그것은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다. 배우들의 고통스러운 반복, 극의 점층적 구성, 공간의 상징들을 모두 포개어 이 연극을 하나의 '제의'로 완성시키는 종지부로 이보더 더 좋은 수단이 있을까.

징 소리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울려 퍼졌고, 무대는 단숨에 '무(無)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객석도 조용했다. 누구도 박수를 먼저 치지 않았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공연 후 극장을 나서며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연기하는가

 공연의 마지막 피날레 장면
공연의 마지막 피날레 장면필립리

극단 노을의 오세곤 연출은 오랜 시간 희곡 번역자이자 교육자, 연출가로 활동해온 실천가다. 그의 연출은 배우 중심이다. 언어의 깊이를 이해하되, 말보다는 '호흡'으로 전달되는 것을 신뢰한다. 그는 이렇게 배우들의 입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대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처럼 전달돼야 한다."

이번 <하녀들>(6월 10일~15일, 대학로 연우소극장) 무대는 그 신념의 결실이다. 지난 2020년 이후 여러 번의 반복과 교정을 거쳐온 이번 연극을 통해 배우들은 과장하지 않았고, 설명하지 않았으며, 감정을 쌓아 올리는데 주력했다. 무대는 마치 조율된 실내악처럼 느껴졌다. 언어의 선율, 감정의 리듬, 공간의 여백이 조화를 이뤘다.

장 쥐네의 희곡은 분명 프랑스의 것이지만, 이 연극은 전통과 현대, 타자성과 주체성, 죽음과 연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분명 관객들은 아래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설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누구를, 무엇을 모방하고 있는가"
"그 욕망은 과연 내 것인가, 타인의 것인가."

 연극 하녀들 포스터
연극 하녀들 포스터극단 노을



덧붙이는 글 극단 노을의 연극 <하녀들>은 제46회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으로 선정됐으며, 6월 29일 일본 오사카,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연극 하녀들 극단노을 오세곤 연우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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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과 한겨레(2016~2023)에서 매주 문화예술 소식을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와 현장 예술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썼다. 현재는 공연·전시를 보며 글을 쓰며,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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