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아내를 향해 '불량품'이라는 막말을 수시로 내뱉고, 훈련소 조교처럼 끊임없는 지적과 훈계를 일삼는 남편. 무너진 자존감 속에 스스로를 향한 원망과 우울감만 남은 아내, 이 부부의 숨겨진 속사정에는 어떤 아픈 사연이 있었을까.

9일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에서는 '살림·육아·멘탈 훈련소, 조교부부'편이 그려졌다. 권오욱·최지혜 부부는 삼남매를 키우고 있는 30대 부부였다. 아내는 이미 2년전에 사연을 신청했지만 부부싸움과 화해를 반복하며 막상 출연을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부부의 일상이 영상으로 공개됐다. 먼저 아내는 남편이 1년 365일 빠짐없이 술을 마신다고 폭로하며 알코올 중독을 의심했다. 남편은 가족들이 모두 함께하는 아침식사 자리부터 소주 한 병을 다 비웠고, 술을 따르면서도 손을 벌벌 떠는 모습이 포착했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까지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다며 알코올 중독을 부정했다.

상명하복에 가까운 관계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 조교부부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조교부부MBC



부부의 가장 큰 문제는, 상명하복에 가까운 남편과 아내의 수직적인 갑을관계였다. 남편은 마치 상사가 부하직원을 통제하듯, 아내에게 일방적인 지시와 간섭, 감독을 일삼았다. 남편은 냉장고를 열어 유통기한이 하루라도 지난 음식물이 발견되면 아내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알고보니 아내가 과거에 유통기한이 음식을 아이에게 잘못 먹여서 탈이 났던 사건이 있었다. 또한 아내가 출산 후 새벽 수유에 잠을 설치던 시기에도, 남편은 힘들어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오히려 잔소리를 퍼부었다.

남편은 아내의 살림 실력과 노력이 부족하다며 답답해했고 "이 정도면 성인 ADHD 아니냐"고 의심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아내는 아이 셋을 돌보면서 남편의 요구까지 최대한 수용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에도, 반복되는 남편의 지적과 간섭에 점점 주눅이 들었다.

또한 남편은 가족이 함께 외식을 나온 자리에서도, 음식주문에서부터 아이들을 돌보는 것까지 모두 아내에게 지시했다. 정작 남편은 아내의 사소한 말실수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았다. 결국 아내는 식사시간에 마음 편하게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남편은 작은 실수도 용납해주지 않는다. 그럴수록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은 "아내와 짧은 대화마다 소통이 안되는 게 쌓이고 쌓여서 답답하다"며 아내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급기야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아내에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분주한 사이, 막내가 아빠의 술잔을 입에 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남편은 음식 주문 등, 자신이 할수 있는 일도 굳이 아내에게 떠넘기고 지시하는 이유에 대하여 "성격상 할말을 잘 못하는 아내의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하여 시작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본래 아내의 성격은 그렇지 않았으나 출산 이후부터 갑자기 소극적이고 내향적으로 변했다고.

오은영은 "남편이 처음에는 소극적인 아내를 위하여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아내가 아이 셋을 낳고 육아에 정신없을 만큼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남편은 조교같은 훈련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남편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아내를 지시하고 부려먹는 느낌으로 보인다"고 남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육아와 살림 현장은 별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난무한다. 아내가 일부러 아이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에게 '너 어디 잘하고 있나 보자'하는 식으로 혼을 낸다. 아내는 감시받는 느낌을 받고 더 주눅이 든다"면서 "아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성인 ADHD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변한 원인은 바로 '결혼 생활'에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부부의 아픔

사실 이 부부에게는 공통의 아픔이 있었다. 부부의 8세 첫째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다. 첫째는 문을 열고 나가서 실종된 적도 있어서 부모의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남편이 없을 때 아내는 통제 불가능하고 어디로 갈지 예측할수 없이 첫째를 혼자 보살피느라 하루종일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진땀을 흘렸다. 노력만으로 안되는 현실에 벅찬 아내는 눈물을 쏟아냈다.

부부는 첫째의 교육문제로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첫째를 특수학교에 보내자고 제안했지만, 시큰둥한 남편은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적응하기 위해서는 일반학교를 다녀야한다며 일축했다.

또한 남편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막말에 가까운 시니컬하고 공격적인 표현들을 마구 쏟아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팩트폭행자'라고 표현했다. 남편은 아픈 첫째 아들을 '바보'라고 칭하는가하면, 과도한 음주로 인한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 앞에서 "죽는게 희망사항이다. 죽으면 오히려 잘된 것"이라고 자조섞인 비아냥을 늘어놓았다.

오은영은 "남편은 문제 해결만을 중시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는 게 서툴다"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와중에도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에 그럴 수 있겠다고 공감하는 게 인간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오은영은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바보'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남편의 숨겨진 속내에 주목했다. 오은영은 "남편은 첫째의 장애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해결을 중시하는 남편에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논하는 상황이 불편한 것"이라면서 "남편의 무심한 말 속에서는 깊은 좌절감이 느껴진다"고 진단했다. 그러자 남편은 "무서웠다. 아이를 잃어버렸을때, 영영 못찾을까봐, 내가 할수 있는게 없으니까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껴졌다"며 그간 감춰놨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한편 아내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내는 아픈 첫째를 포함하여 세 아이를 돌보면서 점점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드러냈다. 아내가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첫째가 또다시 혼자 집을 나갈뻔한 아찔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의지할 곳 없는 아내가 남편에게 한계라고 호소했음에도, 남편은 그저 핑계라고 일축하며 "우는 걸 안 좋아한다" "나약한 모습이 싫다"고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거친 말에 상처를 받았던 내용을 자신의 휴대폰 메모장에 하나 둘씩 기록했다. 처음에는 남편의 언행만 기록했으나 점점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이 늘어났다.

심지어 남편 앞에서는 마냥 착하고 소심해보였던 아내는, 집밖에서도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길에서 마주친 주민에게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심리검사에서 아내는 "죽음을 자주 생각한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을 가장 힘들고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을 "남편과 아이들"로 꼽았다.

술에 취한 남편은 아내의 마음에 공감해주기는 커녕, 막말을 퍼부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아내를 향해, 남편은 "양아치냐?" "그럼 죽어" "그게 불량품이지"라며 비난과 조롱으로 일관했다. 남편은 아이 엄마로서 그 정도의 힘든 상황은 견뎌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처받은 아내는 "남편에게 공감은 못 받더라도, 조금만 다정하게 온화하게 대해주면 덜 상처받을 것 같다"며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정작 남편은 자신이 만취하여 했던 언행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출산과 육아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치료까지 받았지만 셋째를 임신하게 되면서 약 복용도 중단했다. 남편은 아내의 우울증이 호전된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아내의 상태에 대한 걱정보다는 비난으로 일관했던 것. 남편도 자신의 술에 취한 모습과, 아내의 속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오은영은 우울증을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는 남편에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가지고 있는 편견과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하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걸 의지로 극복할수 있을까?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배경, 상황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질병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아내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본인의 잣대만 내세웠고, 아내는 마음이 아픈 와중에 기댈 곳 없이 벼랑으로 몰려야 했던 것. 오은영은 "만약 그때 남편이 아내의 상태에 좀 더 관심을 두고 물어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굉장히 아쉽다. 아내는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게 용할만큼 우울감이 심각하다. 그 시작은 남편의 술 문제에서부터 일파만파로 번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처럼 일방적인 소통단절에 무시를 당하면서도 아내가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내는 "남편의 속마음과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살았다. 앞으로도 남편과 같이 잘 살아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남편도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부부를 위한 최종 힐링리포트가 내려졌다. 오은영은 먼저 남편에게 "아내에 대한 막말과 무시를 금지할 것"과 "술을 끊고 그 에너지를 아내와 자녀들에게 쏟을 것"을 주문했다. 이어서 부부 공통으로 "첫째를 위하여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하여 공부할 것"을 제안하며 체계적인 치료와 관리를 위한 팁들을 전했다.

남편은 금주를 약속하며 아내에게 "당신 생각을 많이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더 잘해보겠다"며 진심어린 사과를 전했다. 그토록 바래왔던 남편의 따뜻한 말에 아내도 눈물을 쏟아냈다. 아내는 "내 마음을 알아줘서 너무 고맙다. 서로 노력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자"고 화답했다. 오은영은 촬영을 마친 후에도 끝까지 부부를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을 전하여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오은영리포트 결혼지옥 조교부부 솔루션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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