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 스틸컷
넷플릭스
03.
"전파는 어디에도 가. 받아줄 사람만 있으면. 기지 안테나 시설 복구하는 대로 전화도 가능할 거고, 아! 물론 20분 딜레이는 있겠지만."
영화가 전반에 걸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가 아니다. 가령, 개발과 성장으로 인해 점차 잊혀 가는 대상을 소재로 하여 관객들의 감상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용도 말이다. 이 작품에서 디지털과 대비되는 아날로그 소리는 두 인물의 공간적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중요해진다. (안타깝게도 공학적으로 명확히 설명할 능력은 없으나) 의도적으로도 확실히 그렇게 이용되고 있다.
난영이 탑승한 화성 탐사선이 발사되는 장면에서 소통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내면은 탐사선 이륙음으로부터 제이의 아날로그 연주곡으로 점차 바뀌는 것이 대표적이다. 화성에서 단독 탐사에 나선 난영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하는 것 역시 디지털이 아닌 제이의 아날로그 소리. 이를 다시 풀어서 해석한다면, 함께일 수 없는 존재를 아날로그적 매개 속에 담긴 사랑과 온기를 통해 외로움과 고독으로부터 구원해 낸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고민했던 지점은 기술과 발전, 감정과 인간성이 우리의 연결성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두 인물의 사적인 감정이 완성된 레이어를 한 겹 더 놓는다면,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게 된 두 인물 사이의 거리를 감정적으로 좁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물음이 될 거고.
04.
"나는 언제 돌아올 줄도 모르는 사람 가슴에 품고 하늘만 보면서 못 살아. 그렇게…"
전면에 내세워지는 건 아니지만, 사랑, 조금 더 보편적으로는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할 서로 간의 신뢰와 상대의 결정을 존중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한지원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중심에 놓이게 되는 인물은 난영의 아버지다. 화성 탐사를 떠난 아내의 결정을 존중했을 뿐만 아니라, 돌아오지 못할 그를 기다리며 평생을 하늘만 바라봤다던 그의 모습은 난영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극 중에서 '매일 하늘만 보니까 비가 오는 건 기가 막히게 맞혔나 봐.'라고 난영이 회상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는 엄마의 흔적을 찾겠다며 오래전 난영이 우주 과학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치매로 인해 이제는 딸과의 관계조차 가물거리는 그는, 날이 좋을 때면 잊지 않고 안테나를 들고나와 화성으로 소리를 보낸다.
제이의 이야기에서도 같은 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밴드 생활을 같이했던 동료들로부터 잃은 신뢰, 솔직하게 처음부터 화성 탐사대에 지원했던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난영에 대한 실망과 같은 부분이다. 특히 난영과 다투게 되는 지점에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관계가 더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미리 이 사실을 알게 되었더라도 그런 난영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기 확신을 제이는 아직 가질 수 없으니까.
어린 시절 세상의 전부와도 같던 어머니의 자리. 반드시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기억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을 난영의 신뢰는 또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우산을 나누어 쓴 사람이 제이라고 고백하는 유언 영상 속 난영의 말을 곱씹어 보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 스틸컷넷플릭스
05.
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극본에만 2년, 제작에 다시 또 2년이 넘게 30-40명도 넘는 팀원들과 함께 매달렸다. 심지어 목소리 연기를 맡은 김태리, 홍경 배우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표정과 동선, 행동을 더 현실감 있게 구현하기 위해 중요한 장면을 실제로 연기해 실사 촬영까지 했다고 한다. 국내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문 시도다. 영화 속 내러티브가 갖고 있는 레이어를 한 겹씩 벗겨내면 낼수록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감정과 인간성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말미에서 난영은 멀리 떠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떠나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떠나온 바로 그 자리에 언제나 있었던 게 있다고 말이다. 누군가에 해당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그 '존재'가 도망치거나 스스로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것. '진심'이다. 이 별에 꼭 필요한, 어떤 기술적 발전으로도 당신이라는 '존재'가 아니면 전해줄 수 없는 것.
"당분간 우리 서로 닿지 않더라도 잊지 마. 우주 어딘가에 항상 너를 응원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거."
그리고 이 영화의 진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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