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후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25일(현지시간)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 후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 손흥민이 최근 경질된 앤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에게 작별의 헌사를 전했다.

손흥민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 클럽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첫날부터 우리를 믿었고,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최고의 밤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이어 손흥민은 "당신은 내게 주장이라는 역할을 맡겼다. 내 커리어에서 가장 큰 영광 중 하나였다"면서 "당신의 리더십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배운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특권이었다. 나는 당신 덕분에 더 나은 선수이자, 더 나은 사람이 됐다. 당신은 토트넘 홋스퍼의 전설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2023년 6월 스코틀랜드 셀틱을 떠나 토트넘 홋스퍼의 지휘봉을 잡았다. 손흥민이 토트넘에 입단한 이후 맞이한 5번째 감독이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사상 최초의 호주 출신 감독이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주제 무리뉴, 안토니오 콘테 등 쟁쟁한 전임 감독들에 비해 떨어지는 이름값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여론이 우세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2시즌간 토트넘을 지휘하며 공식전 101경기에서 47승 14무 40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첫 시즌에는 5위라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아들었으나, 2년차인 2024-25시즌 PL에서 17위(11승 5무 22패·승점 38)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이는 2부리그로 강등된 하위권 3팀을 제외하고, 1부 잔류팀 중에는 단연 꼴찌였다.

또한 22패는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리그 최다 패배(22패)였고, 승점 역시 1976-1977시즌 이후 48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었을 만큼 각종 불명예 기록을 경신했다. 자국 컵대회인 잉글랜드축구협회(FA) 컵에는 32강, 카라바오컵에서는 4강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토트넘 지휘봉을 잡고 마지막 경기에서 구단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지난 5월 22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고 토트넘에 무려 17년만에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토트넘이 유럽대항전 우승은 현 UEL의 전신인 1983-84 UEFA컵 우승 이후 무려 41년 만의 성과였다.

시작은 악연이었지만... 손흥민에 주장 맡긴 '은인'

손흥민에게도 포스테코글루 감독과의 인연은 매우 특별했다. 사실 첫 만남은 악연에 가까웠다. 2015년 호주 AFC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은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의 에이스로, 포스테코글루는 호주 대표팀의 감독으로서 결승전에서 서로 적으로 만났다.

손흥민은 결승전에서 종료 직전 극적의 동점골을 넣으며 맹활약했으나, 결국 연장 접전 끝에 1-2로 호주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손흥민의 커리어 첫 메이저대회 준우승이자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질 '무관 징크스'의 시작이었다. 손흥민은 2016-17시즌 프리미어리그, 2018-19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2020-21시즌 카라바오컵(리그컵)까지 준우승만 4번이나 기록하는 아픔을 겪었다.

2024-25시즌 유로파리그(UEL) 우승은 손흥민에게도 커리어 통산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손흥민은 2010년대 후반 구단의 황금기를 함께했던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얀 베르통언, 델레 알리, 위고 요리스 등 쟁쟁한 동료들이 하나둘씩 은퇴하거나 팀을 떠나는 동안에도 토트넘에 남아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운명의 장난처럼 과거 손흥민의 우승도전을 가로막으며 눈물을 흘리게 했던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정확히 10년 만에 손흥민에게 따라붙던 '무관의 저주' 꼬리표를 풀어주면서 이번엔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해준 은인으로 거듭났다.

더구나 우승의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손흥민이 토트넘의 '주장'으로서 영원히 역사에 남을 우승 세리머니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2023년 부임하면서 손흥민을 '토트넘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인 주장'으로 선임했다.

손흥민이 비록 토트넘의 레전드이자 고참급이기는 했지만, 자국 국적도 아닌 외국인 선수에게 주장직을 맡긴다는 것은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손흥민은 포스테코글루 감독 체제에서 2시즌간 주장직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바뀌는 사령탑, 손흥민의 미래는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매번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2023-24시즌 후반기부터 토트넘의 성적 하락과 더불어 '세트피스에서의 잦은 실점'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손흥민과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공개적으로 이견을 드러내며 불화설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올시즌을 앞두고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손흥민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 파문이 불거졌을 때는,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피해자인 손흥민보다 가해자인 벤탄쿠르를 더 옹호하는 듯한 태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고비에 처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포스테코글루 2년차인 2024-25시즌 부상과 하락세, 이적설 등으로 손흥민의 팀내 입지가 흔들리는 고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에 대한 지지와 믿음을 잃지 않았다.

손흥민 역시 그런 감독의 신뢰에, 묵묵한 희생과 헌신으로 보답했다. 손흥민은 2024-25시즌 노쇠화 우려 속에서도 11골 12도움을 기록하며 분전했다. 또한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는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으나, 후반에 교체 투입되며 꿈에 그리던 우승 확정의 순간을 그라운드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승 세리머니에서는 토트넘 선수단 중 가장 먼저 우승 트로피를 받아들고 동료들과 함께 환호하며, 커리어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만끽했다. 손흥민을 EPL로 처음 영입한 포체티노 감독, 아시아 최초의 EPL 득점왕에 등극하는 순간을 함께했던 콘테 감독을 넘어, 손흥민의 축구 인생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은사로 남게 되는 순간이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유로파리그 우승 축하 퍼레이드 당시 "좋은 드라마는 시즌 2보다 3이 더 좋다"는 발언을 통해 다음 시즌에도 토트넘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토트넘 구단은 고심끝에 포스테코글루와의 결별을 선택했다. 토트넘 구단은 "유로파리그 우승은 클럽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지만, 단지 그 영광에만 매몰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면서 "이 결정은 우리에게 고심 끝에 내린 선택 중 하나였으며, 향후 성공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고 경질 이유를 밝혔다.

그럼에도 손흥민은 떠나는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토트넘의 레전드'로 예우하며 존경심을 전했다. 손흥민은 그동안 토트넘을 거쳐간 전임 감독들에게도 예의상 감사 인사를 전한 바 있지만, 이 정도로까지 최상의 극찬을 보낸 것은 포스테코글루가 처음이다. 그만큼 축구인생의 가장 특별한 순간을 열어준 스승에 대한 남다른 존경과 헌사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또한 손흥민 외에도 매디슨, 미키 판더펜, 굴리엘모 비카리오, 도미닉 솔란케 등 팀의 주축 선수들도 일제히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향해 감사의 메시지를 올렸다는 사실은, 선수단 내에 감독에 대한 지지 여론이 컸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비록 리그에서는 부진했다고 하지만, 17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선물한 감독을 경질한 토트넘 구단의 결정에을 두고 팬들의 여론도 엇갈리고 있다.

BBC 등 영국 주요언론들은 브렌트퍼드의 토마스 프랭크 감독 등을 포스테코글루의 후임으로 거론하고 있다. 손흥민도 어느덧 토트넘과의 계약만료가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손흥민을 주장으로 처음 선임하고 신뢰했던 포스테코글루 감독마저 팀을 떠나게 되면서, 향후 손흥민의 토트넘 잔류 여부와 팀내 입지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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