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팝엔터테인먼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친구와 함께 상경한 청년 '귀도'는 가진 건 없지만 순수하고 명랑한 천성을 지녔다. 우연히 그의 품에 뛰어든 운명의 상대 '도라'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여러 번 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사랑의 결실로 이어지기에 이른다. 남부럽지 않은 조건의 도라는 귀도와 맺어진 덕분에 가족과 의절하지만, 몇 해가 지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조슈에'도 무럭무럭 자라며 화해의 기미가 싹트기 시작한다. 도시에 정착해 작은 서점도 열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이니 귀도로선 인생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하지만 세상은 이 가족을 가만두지 않는다. 아들이 5살 되는 생일날, 귀도 부자는 유대인으로 체포당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만다. '순혈' 이탈리아인인 도라는 무사했으나 가족과 떨어질 수 없기에 돌아올 기약이 없음을 앎면서도 함께 열차에 오른다. 그렇게 이 가족의 수용소 생활이 시작된다. 참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귀도는 아들에게 실상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한 몸 가누기도 힘겨운 상황이건만, 조슈에에게 이 모든 게 몇 달 전부터 공들여 준비한 거대한 '게임'이라 둘러댄다.

자식을 안심하도록 만들기 위한 아빠의 노력은 계속된다. 위기가 번번이 찾아오고, 어린 아들의 눈에도 이곳이 여행지로 보일 리 만무하지만, 귀도의 헌신에 감화된 주변 수용자들도 막장구를 치며 위태로운 연극은 용케 들통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작정 실제의 참상을 숨길 순 없는 노릇이다. 이 모든 고초가 게임에서 우승해 조슈에가 꿈꾸는 진짜 '탱크'를 받기 위한 대가라며 귀도는 목숨 건 도박을 감행한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대표작과 28년 후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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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스틸㈜팝엔터테인먼트

<인생은 아름다워>가 재개봉을 맞이한다. 20세기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문제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무수하게 많지만, 대중적으로 기억되는 대표작으로 <쉰들러 리스트> (1993, 스티븐 스필버그), <피아니스트> (2002, 로만 폴란스키)와 함께 본 작품을 꼽는 데엔 별 이견이 없을 테다. 그만큼 큰 사랑과 함께 알기 쉽게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소개하는 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물론 홀로코스트 문제를 미디어가 다룰 때 감성에 호소하는 편향 관련 비판에서 위의 3편은 대중의 인지도와 비례해 일정한 비판을 받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종의 음모론, 유대계 자본이 강세인 할리우드에서 잊을만하면 '현실의 필요', 미국의 친 이스라엘 정책을 요구할 때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선보이는 신파극의 궁극이라 평가절하되곤 하는 <쉰들러 리스트>만큼은 아닐지언정, <인생은 아름다워> 또한 그런 지적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앞에 열거한 대중적 작업에서 출발해 해당 사안에 관심이 생겨 관련 작품을 챙겨본 이들에겐 처음의 감흥이 대개 퇴색되곤 한다. 그저 막연하게 전쟁 시기에 일어날 법한 비극적 학살로 간주했던 홀로코스트가 지닌 가공할 공포에 전율하고 나면, <인생은 아름다워>가 애써 순화해 우화적으로 풍자하려는 극중 유대인 차별과 학살이 너무 밋밋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테다. 물론 그게 해당 영화의 잘못은 아니다. 워낙 인간성 자체를 의심케 하는 극단적 현상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현세에 강림한 지옥의 실상을 접하고 나면, 도저히 마음 편하게 귀도 가족의 눈물겨운 상황극을 편하게 볼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언급한 3편 중 <쉰들러 리스트>는 스필버그가 반쯤 의도적으로, 반쯤은 감독의 스타일상 극한의 스펙터클 경도로 인해 확실히 자신이 속한 민족의 비극을 시각적으로 전시한다는 혐의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와 이 작품, <인생은 아름다워>는 조금 다른 결을 드러낸다. 오스카 쉰들러의 실화를 각색했다지만 간접 경험에 머문 스필버그와는 달리, 본인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데다 실존 인물의 사연을 극화한 <피아니스트>의 근접 감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역시 아버지가 강제수용소 생존자로 어릴 적 내내 전쟁 당시 고생담을 듣곤 했다. 즉슨, 작품 속 조슈에의 회상은 바로 감독 본인의 추억에서 비롯됐다.

대중을 상대로 한 상업 극영화는 작가의 의지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다큐멘터리나 실험영화와 다른 문법을 취하게 마련이다. 좀 더 친근하고 익숙한 경로로 공감대를 획득하고, 인류 보편의 가족애,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누는 이분법 구도 등이 활용되는 기제다. 그러다 보니 실제 현실에서 발생한 복잡다단한 이면을 생략하거나 놓치곤 한다. 홀로코스트 관련 작품을 두루 접하며 감식안이 발달하면 필연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접하며 느꼈던 감동과 뭉클함이 다소 빛바랜 느낌은 그런 어쩔 수 없는 근본 문제로부터 비롯된다. 이를 억지로 부정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나 알렝 레네의 <밤과 안개>를 두 눈 부릅뜨고 볼 순 없다. 근래 국내 극장가에서 작은 화제가 되기도 한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해가 갈수록 다양하고 새로운 각도로 조명한 홀로코스트 관련 문제작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런 변천사를 직시하며 비교하는 게 오히려 영화 감상과 사안 이해에 타당하다는 유연성을 발휘하면 족할 일이다.

홀로코스트 역사 고증 찾기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팝엔터테인먼트

홀로코스트는 전대미문의 인종청소 학살극이지만, 워낙 거대한 규모와 범위 탓에 그 양상은 지역별로, 당사자의 체험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벌어진 지옥도,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나 트레블링카 같은 '절멸수용소' 체험과 비교하면 <인생은 아름다워> 속의 풍경은 상대적으로 온건해 보일 지경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나쁜 쪽으로 한계를 초월한 나치독일의 인간성 상실 탓이다.

이 영화 속 배경은 이탈리아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나치독일의 동맹국으로 2차 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전했지만, 초중반까진 엄연히 동맹국 지위를 가졌던 만큼 전반부에서 드러나듯 일정하게 유대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건 동일한데도 극단적 절멸 정책에 이르진 않았다. 물론 이는 이탈리아 파시즘이 나치보다 그나마 낫다기보다는, 정책의 집요함과 극단주의에서 '한 끝' 차이란 정도에 가깝다. 도라가 부모의 강요로 유력자 자제와 억지 결혼에 내몰릴 위기에 등장한 파티 케이크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탈리아는 독일이 자국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을 때 동유럽과 아프리카 식민지 침략과 학살에 매진하던 참인 것이다. UN 전신인 국제연맹 탈퇴와 고립을 불사하고 에티오피아를 무단 침략해 점령한 기념으로 등장한 오리엔탈리즘 극치인 '에티오피아 케이크'와 장식된 타조알이 소리 없는 증인 역할을 수행한다.

귀도가 상경할 결심을 하게 만든 호텔 고참 매니저 삼촌의 애마는 유대인을 공격하는 폭도들에게 테러를 당한다. 전쟁이 격화하고 나치의 영향력이 이탈리아 내에 증가하면서 몇해 전 독일에서 그랬던 판박이로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 유대인 가게에 모멸적 표식이 붙는 것 또한 매한가지다.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이 있다기보단, 독일의 명령에 따르기 싫다는 '꼬장'에 가깝던 이탈리아의 차별화된 태도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영화 속에선 그저 도라와 귀도의 로맨틱한 만남으로 스치고 흘러가지만, 도라의 동료 교사가 만찬장에서 독일 교육의 우수성을 예찬하며 예시로 드는 일화는 끔찍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나치독일은 유대인뿐 아니라 '열등인종'은 사회에 쓸모가 없다며 체계적으로 제거한바, 자국민 중에도 장애인이나 반체제 인사, 동성애자가 그 대상이었다.

재정 절약을 위해 장애인을 멸종시키면 얼마의 예산을 아낄 수 있는지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로 제시되고, 7살 아이가 척척 푼다는 교사의 호들갑은 이미 이탈리아 내에 나치즘의 왜곡된 우생학이 퍼져 있음을 증명한다. 영화 곳곳에 보물상자처럼 현실 역사의 잔혹함을 증언하는 장치가 감춰져 있다. 영화 속 숨바꼭질은 귀도와 조슈에만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지의 낙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팝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영화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극단적 고증으로 전면화하는 대신, 전대미문의 참상에 저항하는 가족애와 인간 의지의 저항력을 강조하는 데 집중한다. 물론 이는 극히 드문 사례다. 인간이란 너무나 나약하고 자기중심 속성을 인지한 이들에겐 주인공 가족의 태도는 비현실적으로 비칠 정도다. 자기 목숨 부지할 기약도, 당장 내일이 어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처지에 목숨 걸고 연극을 벌이는 게 가당찮은 일일까.

하지만 감독이자 주연이기도 한 로베르토 베니니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사실주의 극화로 만들 의도가 아니었다. 그는 전쟁과 학살이란 현세의 지옥 속에서 이게 과연 맞는 일인지 예언자처럼 항변하고자 한다. '현실'에 순응하며 그저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일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자식의 안위를 넘어 인간성의 상실을 막으려는 필사의 사투가 얼핏 코미디로 보이는 전개 속에 깃들어 있다. 공포에 맞서는 유머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이 영화 속 귀도는 그걸 외줄 탄 서커스 광대처럼 목숨 걸고 감행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영화 전반부는 끊임없는 개그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그들의 운명을 알기에 지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기억과 무관하게 중반 이후 귀도의 필사적인 연극과 함께 조슈에가 제발 참혹한 현실을 깨닫지 않기를 소망하며, 강자로 군림하던 주인공의 수수께끼 상대 레싱 박사가 은연중에 드러낸 균열의 포착을 하나의 풍경화처럼 조망하게 된다면, <인생은 아름다워>는 단순한 신파극을 초월하는 고전으로 두고두고 남을 테다.

<작품정보>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è bella
Life Is Beautiful
1997|이탈리아|코미디, 드라마
2025.06.11. (재)개봉|116분|전체관람가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출연 로베르토 베니니, 니콜레타 브라스키 외
수입 ㈜팝엔터테인먼트, 비됴알바
배급 ㈜팝엔터테인먼트

1998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1999 아카데미시상식 남우주연상, 외국어영화상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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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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